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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사촌 동생과 친하게 지냈다. 내가 외동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과는 참 각별했다. 같이 놀고, 같이 여행 다니고, 서로의 인생에 중요한 시간에도 함께했다. 그런 동생이 2008년, 스물다섯 나이에 사고로 황망하게 죽었다. 아직도 그날 새벽 4시에 그 녀석의 여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기억한다. “오빠, 우리 오빠 죽었어. 빨리 좀 와줘.”

사람이 온종일 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정사진은 내가 카메라 연습한다고 그 녀석을 동네 놀이터에 세워놓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만 보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할머니께는 너무 놀라실까 봐 알리지도 못한 장례식이었다. 장례를 치른 첫날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 부스스 일어났는데 배가 고팠다. 식구들이 차려준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누군가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살겠다고 밥을 먹고 있는 내가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 없었다.

그런 기억 때문이었을까.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던 대목은 광주도청을 마지막 밤까지 지키다 죽은 동호의 어머니가 하는 독백이었다. “목숨이 쇠심줄 같아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매끼 밥을 삼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그 녀석이 죽은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작은어머니는 웃다가도 종종 정색을 하시며 말한다. “내가 미쳤나 보다. 재성아. 내가 이렇게 지금 웃고 있다.”

팽목항 옆 진도 실내체육관이 언론에 비춰질 때마다 저 사람들 밥은 먹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먹고 있겠지. 하지만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얼마나 치욕스러울까. 자식이 지척의 바다에 가라앉아 덜덜 떨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이지만, 밥을 먹는다. 그 밥을 삼키며 부모들은 얼마나 통곡을 했을까. 그 누가 대신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고통이다.

ⓒ시사IN 이명익지난 8월25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더불어민주당 당사 5층을 점거하고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 부모들 앞에서 사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냉정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건넬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들 금방 다 꺼낼 거고, 어떻게 죽었는지 틀림없이 밝혀낼 거고, 이렇게 만든 놈들 다 책임 지울 거고 그렇게 다 할 거니까, 아이들 좋은 곳에 갔을 테니까 걱정 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자 어서 밥 먹으라고. 통곡하여 먹은 밥 게워내는 부모들 손에 수저 다시 쥐여주는 것이 사회의 구실이다.

세월호 특조위 문 닫을 생각만 하는 대통령과 여당

자식 잃은 부모들이 스무 날을 굶었다. 정부·여당의 조직적인 방해 속에서 겨우 출범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법으로 정한 임기조차 부당하게 빼앗긴 채 종료될 위기에 처하자 부모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을 벌였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14년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드는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세월호 유족들은 밥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유족 옆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해야 할 사회는 보이지 않는다. ‘산 사람도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기운만이 느껴진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새누리당 동의 없이 세월호 특조위의 임기를 연장할 방안은 없다고 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진실이나 위로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세월호 특조위 문 닫을 생각만 하고 있다.

ⓒ박영희 그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손에서 수저마저 뺏는 사회는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대통령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를 쓰자고 말하지만, 정말 이러면 벌 받는다. 제발, 말씀해주시라. 걱정 말라고, 밥 잘 드시라고, 사회가 다 밝히겠다고. 정부 주장에 따른다면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한(보고서 작성 기한)은 9월30일이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시사IN〉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번 호로 ‘까칠거칠’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임재성 (평화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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