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인 유향(劉向, BC 77~6)은 다방면에 박식한 학자로, 각 분야의 서적을 모아 정리하는 분야에서 출중한 사람이었어. 육사(六邪)라는 항목에는 ‘사악한 신하’의 유형을 6가지로 정리해놓기도 했지.

먼저 녹봉만 기다리며 ‘자리 지키기’나 하는 신하를 구신(具臣)이라 불렀다. 공무원 정원이나 채우고 월급이나 타먹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딱 고만큼의 일 외에는 전혀 손대지 않는 복지부동(伏地不動), 즉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단다. 그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는 병들고 굼떠지겠지.두 번째는 유신(諛臣)이다. 임금에게 ‘당신의 말과 행동은 모두 옳고, 언제나 참 잘하고 있다’고 추어주면서 그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야. 하나 예를 들어줄까? 송나라 문제가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영 잡히지 않았어. 문제가 ‘에이 오늘 운이 없구나’ 시무룩하고 있으니 왕경이라는 신하가 이렇게 말해. “낚시하는 이가 너무나 마음이 맑고 청렴하여 미끼 따위를 탐하는 물고기가 물지 않는 것입니다.” 가히 예술의 경지가 느껴지지 않니?

160902이정현-연합04.jpg
ⓒ연합뉴스9월2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의 연설을 비난하며 국회 본청 의장실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다음으로 유향은 겉으로 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기 일쑤고, 원칙적인 절차와 상벌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간신(姦臣)이라고 불렀다. 명석하고 언변도 뛰어나지만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해쳐서 나라를 어지럽히는 이들에게는 참신(讒臣)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 아빠가, 간신과 참신의 성격을 골고루 갖춘 사람으로 들고 싶은 사람은 당나라 현종 때의 이임보(李林甫)야.당나라 현종은 한때 ‘개원(開元:당 현종의 연호)의 다스림’으로 불리던 태평성세를 연 유능한 임금이었다. 그러나 장구령이란 꼬장꼬장하고 강직한 재상에게 넌더리가 나서 말 잘하고 수완 좋아 보이는 이임보를 재상으로 발탁하면서 발길이 꼬이게 된다.

이임보는 공개된 장소에서는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곤 했지만,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든 곤경에 빠뜨려 해치는 무서운 인간이었지. 일도 열심히 했어. 그가 밤늦도록 서재에 앉아 뭔가를 궁리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수군거렸지. “내일은 또 누가 저 손에 죽게 될까?”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그 시커먼 속엔 상대의 목줄을 노리는 칼을 숨기고 있었던 이임보 때문에 한자성어 하나가 만들어진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 배 속에는 칼.’이임보가 가장 신경을 쓴 대목은 바로 언로를 통제하는 일이었어. 이임보는 황제에게 올라가는 모든 상소를 차단해서 정보를 독점하지. 누군가 목숨 걸고 상소를 올리자 그 상소가 황제에게 닿기 전, ‘요망한 소리를 한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죽여버리기도 했다. 상대방의 약점을 귀신같이 파헤쳐 되레 그를 공격하는 능력에서도 발군이었고….

중국 전한시대 유향.jpg
중국 전한 시대 학자 유향.
이 간신이 재상을 해먹는 동안 총명했던 황제는 “10년 동안 천하에 큰 변고가 없었다. 나는 높은 곳에서 무위(無爲)의 정치를 행하며 (즉 놀고먹으며) 이임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데 어떻겠나?”라고 물을 정도로 갑갑한 아둔패기로 전락하고 말았지.
마지막으로 유향은 나머지 간신의 두 유형으로 권세를 갖고 당파를 지어 자기 세력을 더욱 쌓아 위세를 높이려는 적신(賊臣), 지금까지 이야기한 사악함을 골고루 갖춰 임금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이런 임금의 잘못을 제 나라는 물론 외국에까지 퍼지게 해서 나라를 망치는 망국신(亡國臣)을 들고 있다. 이 두 가지 유형을 모두 갖춘 인물로는 명나라 시대의 환관인 왕진이 떠오르는구나.

왕진은 어릴 때 제위에 오른 황제 영종의 스승이었지만 그 지위를 최악으로 악용했다. 영종의 무조건적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쯤 될 정보기관 동창(東廠)을 동원해서 반대파들의 죄악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무자비한 숙청을 벌였어. 심지어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욕보이는 일을 밥 먹듯이 했으니 알 만하지? 몽골의 오이라트 부가 쳐들어오자 왕진은 황제에게 5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전쟁터로 나가라고 권했다. 왕진을 스승으로 모시던 영종은 두말없이 그를 따랐지. 그 결과는 어땠을까? 명나라 군대가 몽골군의 포위 공격으로 전멸하고, 황제 영종은 몽골군에게 사로잡혔다. 중국 역사상 유명한 ‘토목보(土木堡)의 변’이었지. 그나마 왕진은 죗값을 치렀어. 분노한 한 무장이 왕진의 머리를 박살내 죽였으니까 말이야.

‘육사 따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유향이 분류한 육사(六邪)가 존재할까? 글쎄, 네게 ‘단언컨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려니 입이 좀 근질거리는구나. 복지부동하는 구신(具臣) 같은 이들이야 어느 나라에든 있는 법이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리 과한 것도 없는 국회의장의 연설을 두고 “국회의장이 대통령 외교안보 일정에 재를 뿌리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반국가적 처사”라며 펄펄 뛰는 여당 대변인을 보니, 아부쟁이 유신(諛臣)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 경호관의 멱살을 잡으며 충성을 과시하는 여당 의원 역시 ‘유신’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날이면 날마다 고향에 내려가 코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다닌 덕분에, ‘미안해서 찍어주는’ 표로 국회의원, 나아가서 오늘날에는 여당 대표까지 된 분이 과거 음습하게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고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봤네”라면서 ‘협조’를 구하는 행태를 떠올리면 참신(讒臣)을 연상하지 않긴 어려워. ‘간신’과 관련해서는, 2014년에 발생한 황당한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로 장관을 불러 “아무개 국장, 과장이 나쁜 사람들이다”라며 사실상 경질을 지시했다는 폭로가 있었어. 국장이나 과장이라면 대통령은커녕 장관과도 까마득한 일선 공무원이야. 대통령이 이런 공무원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와서 직접 거론했다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기 일쑤고 원칙적인 절차와 상벌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간신들이 주변에 득실거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밖에.

정부 공식 직제인 감찰관이 권력 핵심부 인사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상황에서 수사 의뢰된 사람의 문제를 들추기는커녕,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며 국기를 흔들었네 어쩌네 소란 피우는 이들의 꼬락서니 앞에서, 아빠는 ‘우리나라에 적신(賊臣) 따윈 없어’라고 말할 자신이 없어지는구나. 마지막으로 망국신(亡國臣)들은 대개 나라를 망치는 군주들과 요즘 말로 ‘케미’를 이룰 때 그 존재감이 배가된다. 제 권력을 유지하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에만 도가 텄을 뿐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능했던 왕진이 영종을 등에 업고 나라를 말아먹었듯이.

더욱이 수상한 땅 거래부터 아들의 군 복무 의혹까지 온갖 의혹이 불거져도 굳건한 세력가, 음주운전에 뺑소니 의혹까지 걸머진 경찰청장, 1년에 수억원의 생활비를 쓰는 처지에 ‘무소유’의 자유로움을 찬미하는 기이한 장관까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인사가 서슴없이 행해지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덜렁 감투들을 쓰고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면 ‘망국신’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는 착각에 휩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부디 이 모두가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본 모든 일들은 한여름 밤의 악몽이었을 뿐, 우리나라엔 육사 따위 없다고 껄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