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진씨(40)는 올 추석에 고향에 내려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심신이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착잡하고 심란하다. 얼마 전 아버지가 전립선암 3기 판정을 받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석만 되면 마음이 심란할 것 같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지난해 추석 때 ‘소변 누기가 힘들다’는 아버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탓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모시고 갔으면 어땠을까. 이씨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라고 돌이켰다.

어디 이씨뿐인가. 병세에 관한 부모님의 말 한마디를 놓친 탓에, 겉으로 드러난 부모님의 병세를 눈치 채지 못한 탓에 뒤늦게 땅을 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 추석에는 이씨 같은 우를 범하지 말자. 그러려면 부모님께 건강 상태를 여쭙고, 부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불편한 곳이 없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물론 섣부른 진단이나 추측은 금물이다. 또 미약한 증세에 호들갑을 떨어서도 곤란하다.

암, 그까이 거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의학 상식이 있다. ‘암은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암에 걸리고, 여성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 드문 것은 ‘나와 내 부모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확실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암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식습관을 바꾸거나 술과 담배를 자제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부모님의 암 검진이다.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건강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건강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다행히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쑥 올라간다.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5백여 명의 암 환자를 발견했지만, 그 중에서 세상을 뜬 사람은 아직 열 명이 채 안 된다. 조기에 발견한 덕이다.

술과 담배를 오랫동안 즐겨온 부모님, 정년퇴직한 지 얼마 안 된 부모님, 외로움을 타는 부모님, 배우자를 여의고 혼자 남은 부모님, 늘 이런저런 질환을 호소하는 부모님, 식습관이 안 좋은 부모님이 계시면 추석이 끝난 뒤에라도 꼭 암 검진실로 모시고 가기 바란다.

일러스트 박성남
깜빡깜빡,  아버지의 건망증

혹시 아버지가 손녀의 이름을 까먹거나 일의 순서를 뒤죽박죽 바꾸어버린다면 건망증을 의심해야 한다. 노인의 건망증을 처음 접하면 자식들은 치매를 떠올린다. 그러나 건망증의 대부분은 일이 많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서 나타난다. 일시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증세가 반짝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은 금물이다. 원인을 해소해야 건망증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담배나 술을 금하면 뇌 운동이 활발해져 눈에 띄게 효과가 나타난다.

인간의 두뇌는 20대가 넘으면 노화에 들어간다. 두뇌가 노화하면 건망증, 집중력 감소, 수면 리듬 교란 같은 ‘고장’이 일어난다. 두뇌 노화는 직접 질병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노화가 심하면 그만큼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예컨대 집중력이 감소하고, 수면 리듬이 교란되고,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우울 및 불안이 생길 수 있다. 그 정도가 더 심하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물질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 술이나 약물에 중독될 수도 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건망증을 덜어줄 방법은 별로 없다. 편안히 쉬게 해드리고,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하게 도와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아침 산책과 독서 등을 생활화하라고 권하고, 술과 담배를 줄이시라 요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향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면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퀴즈나 퍼즐 맞히기를 해도 좋다.

위험천만한 부모님의 우울증

명절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식사를 안 하시고 두통·복통·위장 장애 등을 호소한다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우울감과 불안감, 절망감과 죄책감, 무기력감과 의욕 상실, 불면과 초조감, 식욕 감소와 체중 감소, 집중력·기억력 저하 등의 증세를 동시에 보여도 마찬가지이다. 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노인 우울증은 노인 열 명당 한 명이 걸릴 정도로 발병률이 높다. 특히 몸담았던 조직에서 막 은퇴했거나, 별안간 가까운 친족이나 친구를 잃은 노인들이 쉽게 걸린다. 만약 초기에 우울증을 잡지 못하면 위험도는 훨씬 커진다. 때문에 여느 질환보다 더 주의 깊게 환자를 관찰해야 한다. 기회를 놓쳐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절망에 사로잡혀 지내거나, 영양실조· 망상·환각·자살 등의 심각한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

노인 우울증에 걸리면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흥미가 없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상 증세를 지적하면 ‘늙으면 잠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늙으면 힘이 없는 게 당연하지’ 라는 식으로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추석 때 부모님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정신과 진료를 권한다. 그 전에 우울증·인지 기능 평가 도구(위)로 부모님의 ‘마음’을 측정해보면 부모님의 ‘상태’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인지 기능 평가 도구   

최근의 기분 상태에 관한 질문입니다. 아래 문항을 읽고 자신의 현재 상태에 해당하는 답에 표시해주십시오.

 

1) 요즈음 들어 활동량이나 의욕이 많이 떨어지셨습니까?
① 예 ② 아니오

2) 지금의 내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십니까?
① 예 ② 아니오

3) 지금 자신의 처지가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느끼십니까?
① 예 ② 아니오

‘예’가 하나 이상일 경우 우울증 가능성이 있어 추가 우울증 검사 필요함

 

인지 기능 정신 건강 위험 요인 평가 도구(환자·보호자 기입식)

인지 기능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래의 각 항목에 대하여, 1년 전과 비교하여, 현재 상태에 해당하는 곳에 표시해주십시오.

1) 자신의 기억력이 친구나 동료들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아니다   ② 가끔(조금) 그렇다  ③ 자주(많이) 그렇다

2) 자신의 기억력이 1년 전에 비해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아니다 ② 가끔(조금) 그렇다   ③ 자주(많이) 그렇다

3) 중요한 일을 하는 데 기억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① 아니다 ② 가끔(조금) 그렇다   ③ 자주(많이) 그렇다

4) 자신의 기억력이 떨어진 것을 남들도 알고 있습니까?
① 아니다 ② 가끔(조금) 그렇다   ③ 자주(많이) 그렇다

5) 잘해오던 일상 일을 하는데 예전보다 서툴러졌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아니다 ② 가끔(조금) 그렇다   ③ 자주(많이) 그렇다

4 ~10점일 경우 인지 기능 장애 가능성이 있어 추가 인지 기능 평가 필요함

※점수 산정 기준
①아니 다: 0점
②가끔(조금) 그렇다 : 1점
③자주(많이) 그렇다 : 2점

일러스트 박성남

욱신욱신, 어머니의 새벽녘 무릎 통증

밤새 송편을 빚은 어머니가 새벽녘에 무릎 통증을 호소한다면 퇴행성무릎관절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퇴행성무릎관절염은 무릎 연골이 손상되어 관절 기능이 퇴화되는 질환으로, 윤활액이 부족하고 혈류량이 감소하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또 여느 관절염과 달리 기온이 낮을수록 뻣뻣하고 시린 증세가 더 심하게 나타난다. 새벽에 증세가 더 심한 이유도 기온과 무릎의 온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골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무릎 통증이 찾아오면 약국에서 패치형 파스를 사다 붙이는데, 병을 키울 뿐 증세 완화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가장 좋은 대응법은 정밀 진단을 받고 치료하는 것이다. 추석 때 갑자기 통증이 찾아온다면 임시변통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취침 전에 진통소염제를 복용해 새벽녘 관절의 온도를 높여준다. 새벽녘에 무릎을 온찜질해도 통증이 가라앉는다. 만약 상태가 심각하다면, 추석 중에라도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일러스트 박성남
안절부절, 작은아버지는 오줌싸개?

제사 지내러 오신 육순의 작은아버지. 그분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목적지는 화장실. 어디 불편하시냐고 묻자 ‘소변이 자주 마렵고, 참기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술 석 잔 뒤에 고백이 이어진다. “가끔 속옷에 실수하는 일도 있어 민망하다.” 그 탓에 하루하루가 뾰족하고 불편하단다.

나이가 들면 소변을 누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더러 오줌이 찔끔 새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른바 요실금이다. 소변이 자주 마렵고, 일단 요의가 느껴지면 참기 힘든 질환도 있다.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은 그런 증세를 요실금으로 오인한다.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추측이다. 전문 의학 용어는 ‘과민성 방광’이다. 과민성 방광은 방광에 조금만 오줌이 고여도 요의를 느낀다. 심한 경우 화장실에 갔다온 지 10분도 안 되어 화장실 문을 밀어젖힌다. 배뇨근이 예민한 탓이다.

과민성 방광이 의심되면 추석이라도 술을 금해야 한다. 또 카페인을 함유한 음식과 신 과일 주스, 탄산음료, 꿀이나 설탕, 매운 음식도 피한다. 지나친 흡연과 스트레스도 방광을 자극한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방광 훈련을 통해 배뇨 간격을 조금씩 늘리거나, 골반 근육을 강화해서 배뇨를 조절한다.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다. 병원에서 약물 치료와 행동 치료를 받는 수밖에….

일러스트 박성남
드르렁 컥컥, 요란한 아버지의 숨소리

아버지가 이부자리에 눕자마자 요란하게 코를 고는가? 문제는 요란한 숨소리는 단잠을 자는 청신호가 아니라,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적신호라는 점이다. 코골이는 나이가 들수록 그 강도가 세진다. 그리고 코를 골다가 ‘커억’ 하며 숨을 멈추는 수면무호흡증도 늘어난다. 이 질환은 피로·고혈압·부정맥·뇌졸중 등의 원인이 되므로, 아버지가 다른 지병을 갖고 있다면 더 조심해야 한다.

코골이의 가장 큰 원인은 비만이다. 몸이 비대해지면 목구멍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코골이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먼저 체중을 줄여야 한다. 당장 추석 전후에 효과를 보려면 잠들기 세 시간 전에 음주나 수면제, 감기약 등은 피한다. 코골이를 더 악화시키는 공범들이다. 아버지의 몸을 옆으로 눕히는 것도 한 방법인데, 밤새 지켜볼 수 없으므로 아버지 등 쪽에 테니스 공을 붙여놓으면 누워 자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테니스 공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심하면 코골이 전문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무탈하다.

일러스트 박성남
덜덜덜, 아버지의 떨리는 손

술을 마시거나 겁에 질리면 손발을 유난히 떠는 사람이 있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인들이 손을 떠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뇌졸중, 파킨슨병, 과음이 그것이다. 단순히 손만 덜덜덜 떨리면 과음이나 피로가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손 떨림 증세가 심해서 수저질을 못하거나, 거동이 눈에 띄게 느려졌으면 다른 이유를 의심해봐야 한다.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은 65세 이상 노인 백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신경퇴행 질환이다. 발병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뇌 속의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하면 나타난다. 발병 초기에는 쉽게 피곤해지고, 눈에 띄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그리고 맥없이 쉬는 상태에서 손이 심하게 떨린다. 병이 진행되면 될수록 발음과 보행이 어려워지며, 표정이 심하게 굳는다. 더 심하면 거동 자체가 불가능해 식사는 물론 화장실 출입도 어려워진다. 현대 의술로는 파킨슨병을 완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초기에 진단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병세를 잡아둘 수 있다. 그렇다고 신문이나 책을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고 파킨슨병으로 오인하면 곤란하다.

도움 말:류태우 교수(서울대병원·가정의학과), 정선주 교수(서울아산병원·신경과), 김원 교수(서울백병원 뇌건강클리닉), 구성열 박사(연세노블병원·예방의학), 오흥영 박사(덕재내과의원)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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