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친구랑 야구 보러 가도 돼?” 지난 여름방학 때 윤희가 통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집에서 서울 고척 돔구장은 택시 기본요금 거리다. 아무리 가깝다고는 해도 ‘아빠 야구 보러 가자’가 아니라 다녀올게라니, 섭섭함이 앞섰다. 아빠만 찾던 녀석이 이제 친구를 찾는구나. 그러다 보니 누구랑 가는지 궁금했다. “근데 누구랑?”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다른 팀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랑 간단다.

“걔는 다른 팀인데 이번에 같이 가고 다음에는 걔네 팀 경기할 때 같이 가주는 조건이야.”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윤희를 보내고 집에 멍하니 있자니 처음 둘이 야구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났다. 3년 전 윤희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목동 야구장을 찾은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 윤희는 야구가 뭔지 몰랐고 나 또한 응원하는 팀이 오랜 부진에 빠져 있어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있었다. 그해 응원하던 팀이 상위권을 질주하면서 식었던 관심이 다시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향기로운 미끼를 준비하고 윤희를 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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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제공
“김~윤(무엇인가 꾈 때는 살짝 이름을 길게 부른다).” “우리 야구 보러 갈래?” “야구? 그게 뭔데? 내가 가서 뭐해?” “윤희 좋아하는 것 좀 사서 가자. 치킨도 먹고~.” “치킨?”

그 당시 우리 둘 사이에는 치킨에 대한 약속이 있었다. 치킨은 한 달에 꼭 한 번만 먹기로 한 것이다. 치킨 먹은 지 한 달이 안 지났는데, 미끼를 던지니 덥석 물었다. “그럼 가지 뭐.”

얼린 물과 과일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목동 구장을 찾았다. 이날의 주인공인 치킨은 닭강정이었다. 마트에서 닭 순살(또는 닭날개)을 사다가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간이 배도록 한 시간 정도 둔다. 오븐을 170℃로 예열하고 20분 정도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진다.

굽는 동안 양념 소스를 준비한다. 고추장·케첩·꿀·다진 마늘을 넣고 기름에 볶는다. 여기에 꿀을 조금 넣으면 단맛이 좋아지면서 광택까지 난다. 약한 불에 살살 볶아야 한다. 강한 불에 볶으면 쓴맛이 나는 데다 한눈파는 사이에 타버린다. 오븐에서 구워진 닭고기를 꺼내 소스와 함께 볶으면 맛있는 닭강정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아빠 나도 옷, 모자, 응원 풍선”

야구장에 들어서자마자 윤희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아빠 나도 옷, 모자, 응원 풍선.” 아차, 먹을거리를 챙기느라 옷이나 모자를 준비하지 못했다. 주변 관중 모두 빨갛고 흰 유니폼에 응원 풍선까지 흔들고 있는데 우리만 치킨 조각을 손에 들고 있었다(야구팬이라면 대충 어느 팀인지 눈치 채실 듯. 맞다. 기아타이거즈 팬이다). 응원 풍선만 사서 안겨주니 응원 구호를 대충 따라 한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됐다.

“왜 저 사람은 저 뒤에 서 있어?”(외야수) “저 사람은 왜 치다가 들어와?”(삼진) “우린 언제 공격해?”(수비 중)….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를 질문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귀찮은 티를 조금이라도 내면 다음번 야구장 나들이는 물 건너간다. 차근차근 답해주니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공격과 수비가 바뀌면 질문은 무한 반복이다. 그렇게 치킨으로 꾄 윤희도 이제 규칙 정도는 안다. 팀에 좋아하는 선수도 생겼다. 요즈음 야구에 관한 대화 수준은 이렇다. “아빠, 우리 이렇게 지면 가을야구 할 수 있을까?” 저녁에 밖에서 일 보고 있으면 “우리 이기고 있어~”란 메시지도 날아온다.

둘이 밥상머리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아이 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부녀 사이에 할 이야기냐는 반응이다. 상관없다. 아빠와 딸 사이에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 중요하다. 곧 들이닥칠 사춘기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 하나가 더 생겼다고 믿는다. 그러면 된 거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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