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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식 늘린 일본 공적연금, 6개월 새 110조원 날려”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일본 정부가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공적연금의 주식 비중 한도를 25%에서 50%로 대폭 늘린 결과다. 그동안 채권 중심으로 ‘안정성’을 중시하다가 주식 중심으로 ‘수익성’을 도모했는데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리면서 손실을 입은 것이다.

기사를 보는 사람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을 걱정했을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에서도 위험자산의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주식은 2008년 14%였으나 2016년 33%로 올랐고 2021년에는 45% 내외로 늘 예정이다. 위험성이 가장 큰 대체투자는 2008년 4%에서 2016년 12%로 급증했다.

물론 국민연금기금도 적정한 수익을 내야 한다. 문제는 갈수록 수익성 중심이라는 데 있다.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하라고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자산 종류별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을 제시한다(제102조). 정부 역시 이러한 원칙에 따라 위험자산을 확대하고 조직적으로는 기금공사 설립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고수익은 고위험을 동반한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다른 나라 연기금들이 20%대의 손실을 기록할 때 국민연금기금이 그나마 원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채권 비중이 81%에 달했던 덕분이다. 공적 연기금의 운용에서 수익률보다 더 중요한 건 변동성이다. 2004~2013년 기간 국민연금기금의 평균수익률은 6.1%로 일본 3.4%보다 높지만, 미국 7.9%, 캐나다 9.7%, 스웨덴 11.2%보다는 낮다. 반면 수익률 편차는 국민연금기금이 3.5%로 서구 나라의 8~14%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이다. 투자자들이 여유자금으로 운용하는 일반 금융자산과 달리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의 노후 예탁금 성격을 띤다. 수익성뿐 아니라 안정성이 중요하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감안해 공공성도 추구해야 한다. 당시까지는 국민연금기금의 자산 배분이 공적 연기금으로 적정했다는 근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계속 증가해서 국내 채권 중심을 고수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국채는 이미 국내 시장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국내 주식도 유가증권 시장의 7%에 달해 단일 투자기관으로 더 매입하기가 만만치 않다. 결국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고 자산군도 다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채권이냐 주식이냐’ ‘국내냐 해외냐’의 논쟁만큼이나 기금운용 원칙의 재정립과 의사결정 체계의 민주화도 중요하다.

기금운용 원칙으로 제안하는 ‘사회책임투자’

이를 위해 사회책임투자를 기금운용의 기본 원칙으로 정하자. 사회책임투자는 재무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일반 투자와 달리 기업의 환경·사회·지배 구조 등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국민연금기금도 2009년에 ‘유엔 책임투자 원칙’에 가입하고 작년에는 국민연금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했지만 ‘고려할 수 있다’는 수준에 그쳤다. 실제 사회책임투자의 규모는 지난해 약 6조원으로 외부 위탁투자의 하위 유형으로 취급된다. 사회책임투자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투자 흐름이다. 이후 전체 기금운용의 원칙으로 확대하고 관련 지표 개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기금운용 의사결정에 가입자 대표가 주역으로 서야 한다. 현재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 대표가 과반으로 참석한다. 하지만 분기별 회의체여서 실질적 개입이 어렵고 구체적인 투자 결정에는 권한을 지니지 못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삼성그룹 일가의 경영권 계승 프로젝트인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상식에 어긋나는 찬성표를 던져도 별다른 개입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공사화 논의는 중단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여 년간 기금공사 설립을 추진해왔지만 이를 반대하는 야당이 다수인 20대 국회 지형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말자. 국민연금기금의 안정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아예 바꾸자.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인 가입자가 목소리를 내는 게 관건이다. 야당은 사회책임투자가 핵심 원리로 자리 잡고 가입자 대표가 실질적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국민연금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는 가입자 단체들은 가입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도록 공론의 장을 열기 바란다. 이제 국민연금기금은 주인을 만나야 한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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