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본관이 점거되기 며칠 전, 오랜만에 마주 앉은 ㄱ교수의 넋두리에는 무력감이 묻어났다. “대학의 모든 시스템과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이 점수화되었다. 외국인 학생 비율, 학회 발표, 저서나 번역서 출간 등이 모두 점수로 환산되고 있다. 점수는 돈과 연동된다. 연봉제가 도입되고 일정 기간 실적이 안 나오면 월급이 줄어든다. 돈으로 죄는 거다.”

우리 대학 교수 실적 평가에 관한 규정을 찾아보았다. 규정에 딸린 별도의 표가 실적 유형별 점수와 계산식으로 빼곡했다. 논문이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나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등재 저널에 실렸는지, 공동연구에서 교신 저자와 제1저자로 참여한 총인원이 몇 명인지 따위에 따라 배점과 계산법이 달라졌다. 졸업한 제자의 취업률과 지도 학생 수에 따라서도 1점 안팎의 점수가 오르내린다. ㄱ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어쩌고저쩌고 비판하는 교수들도 이런 분위기를 초월하기 힘든데 비판의식이 덜한 교수들은 얼마나 강박관념이 심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점수가 평가로, 평가는 통장 계좌에 찍히는 금액으로 이어지는 ‘기-승-전-돈’의 굴레에서 교육과 연구는 교수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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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30억원짜리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화여대 사태는 본관 점거와 1600명의 경찰 투입, 총장 사퇴 요구라는 극적 요소가 더해지며 전국적 이슈가 되었다. 방송사 메인 뉴스에서 대학 캠퍼스를 생중계하는 보기 드문 광경도 연출됐다. 돈의 논리가 캠퍼스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념이 된 것은 비단 이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대학 풍경은, 통상 최고위 과정이라고 명명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학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대개 특정 분야 사회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데,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공무원, 기업 대표나 임원 같은 ‘최고위’가 아니면 문턱을 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등록금은 학생보다 더 비싼 수백만원대.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기수별 원우회가 구성되고, 선후배 기수 간 만남도 이어진다. 명성 있는 인사를 그 과정의 간판으로 내세우기 위해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모셔오기도 한다.

대학 처지에서는 등록금보다 이들이 내는 발전기금이 더 반갑다. 같은 기수 수강생들이 십시일반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기수 대표인 원우회장이 먼저 쾌척하면 그 액수가 암묵적 상한선이 돼 다른 원우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기도 한다. 한 푼이 아쉬운 대학은 이미 보유한 인적 자원과 교육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총장 명의 수료증과 인맥을 얻고 대학에 따라 동문 자격도 인정해주는 좋은 기회를 ‘최고위’들도 마다하지 않는다.

발전기금 끌어내기 위한 ‘명예박사’

발전기금 기부자에게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이른바 ‘명박’)에 대해선 대학 구성원 대부분이 침묵한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지만 다소 뜬금없다 싶은 명예박사 학위의 주인공은 대부분 발전기금 기부자들이다. 기업 대표님의 큰 결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명박’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출처가 어디든 돈이 있어야 대학이 굴러간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부 시간이 부족한 학생, 비인기 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 신간 도서 구입, 학술지 구독, 지역사회 봉사활동, 학생 동아리 지원에도 돈이 든다. 등록금 인상은 쉽지 않고, 발전기금 수십억원은 주로 상위권 대학에 몰린다. 미래가 불안한데 돈줄 쥔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은 거세진다.

복잡하게 엉킨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대학도, 그 구성원인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부의 개입은 계속될 것이고, 대학을 간판으로 여기는 인식은 견고하다. 사교육과 대입 문제에 밀려 고등교육을 사회 의제로 논하기도 쉽지 않다.

분명한 건, 서로를 탓하기에는 학령인구 감소가 캠퍼스에 가져올 충격에 대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만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이화여대 학생들이 부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가사 한 구절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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