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최근 들어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으로 인한 대량실업의 공포이다.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기계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해왔다. 정신노동까지 가로채지는 못했다. 20세기 들어 발명된 컴퓨터는 정신노동의 일부 영역인 계산 부문에서 인간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계산은, 간단한 사칙연산이든 복잡한 미적분이든 여러 가지 규칙으로 정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런 규칙들을 기계어로 번역해서 소프트웨어에 입력하기만 하면, 해당 기계는 가장 우수한 인간보다 훨씬 능숙한 솜씨로 계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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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2015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GTC(GPU 개발자 콘퍼런스) 행사의 딥러닝 설명 장면.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너무나 쉽게 하는 일들은 대부분 기계에게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인간의 정신 활동에는 규칙으로 만들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단어의 소리와 뜻, 문장구조 등을 규칙화해서 입력해도, 그 기계가 농담이나 비아냥거리는 표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얼굴은 두 개의 눈과 한 개의 코, 입 등으로 구성된다’는 규칙만으로는 철수와 영희는 물론 백인과 황색인도 구별하기 힘들다. 덕분에 정신노동은 법률, 의료, 저널리즘, 통·번역 등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제조업에서도 기획·연구·마케팅 등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데이터 저작권을 기본소득으로 보전

최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의 정신노동을 온전히 따라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계가 규칙화하기 힘든 정신노동까지 스스로 학습해서 흉내 낼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딥러닝에서는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모사한 인공신경망이 활용된다. 이 인공신경망은 인간 모범생들처럼 문제풀이를 하며 학습한다. 예컨대 개발자들은 수많은 종류의 이미지(학습 자료)들을 인공신경망에 제시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찾으라는 문제를 낸다. 기계는 나름의 정답(인간의 얼굴)을 제출할 터인데, 맞히기도 틀리기도 할 것이다. 다만 인공신경망은 결과에 따라 내부 구조를 스스로 교정하면서 정답률을 높여나가는(학습) 능력을 갖췄다. 이런 딥러닝의 활용으로 기계들은 이미 대단히 똑똑해졌다. 이미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이처럼 명석해진 가장 큰 이유는 딥러닝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각종 자료들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이처럼 많은 학습 자료를 기계에 제공하는가? 전 지구상의 인간 유저들이다. 유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바이두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의 서버에 천문학적 규모의 이미지와 문장, 단어, 검색, 거래 기록 등의 데이터를 매일매일 쌓아주고 있다. 구글에서만 하루 12억 개의 검색이 이뤄진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들을 학습하면 할수록 똑똑해진다.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지도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자신의 일자리를 박탈할지 모르는 인공지능에 학습 자료를 제공하면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는 셈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유저들이 생산한 커뮤니케이션(동영상·이미지·검색·거래 기록 등)이 인공지능을 발전시켜 기업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에 주목한다. 인간 유저들이 데이터를 제공해 인공지능을 발전시켜온 만큼 그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인공지능에 따른 기업 이윤이 해당 업체에 독점될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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