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으로부터, 나아가 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동료들에게) 사랑받는다’ ‘(자녀에게) 존경받는다’ 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사회에서 가장 큰 인정받기는 결국, 자신의 활동(으로 만든 제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혼자서 혹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팔려서 돈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사회적 인정이다. 이처럼 돈과 바꿀 수 있는 활동을 보통 노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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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기본소득은 가사노동에 대해서도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노동이다. 그러나 사람은 노동 외에도 살아가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잡담을 나누거나 팀 회의 등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든 식당에서 팔기 위해서든 요리를 하며, 부모로서든 보육원 교사로서든 아이들을 돌보고, 야유회에서든 직업 가수로든 노래를 부르며, 집에서 파손된 책꽂이를 수선하든 건설 현장에서 일하든 근육을 사용한다. 이런 활동 가운데 노동(회사의 팀 회의, 식당 요리사, 보육원 교사,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돈을 받지만, 다른 활동(잡담, 가족을 위한 요리, 자녀 돌보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노동은 인간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동하지 못하면, 즉 돈과 바꿀 수 있는 활동을 하지 못하면 시장경제 사회에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동료나 자녀로부터도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우리는 노동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반드시 돈을 받는 활동이어야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업 주부가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빨래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해당 가정뿐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도 필수이고 가치 있는 활동이다. 따로 돈을 받지는 못한다. 전업 주부들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기도 하는, 노동 중심 사회의 최다 피해자이다.

기본소득은, 그 실현 가능성 여부를 차치하고, 이런 노동 중심 사회에 대한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의 저자인 바티스트 밀롱도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존재 그 자체를 위한 돈’이다.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모든 인간(활동)에 대해 가치(돈)를 부여하겠다는 함의를 갖기 때문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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