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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에 관한 견해는 크게 봐서 둘로 나뉜다. 하나는 파국, 다른 하나는 개혁. 양자 모두 인정하는 현상은 이른바 ‘시장화’다.

만일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되는 배급제가 사회주의의 필수 요소라면 북한 경제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군과 당의 상층부, 인구로 봐서 대략 15%만 온전한 의미의 배급을 누린다. 나머지는 시장에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국가 소유인 공장의 가동률은 2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장기 침체와 위기의 언저리에 있는 한국의 설비가동률이 7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북한 경제는 가히 파국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일각에서 말하는, 또는 간절히 원하는 정권 붕괴와는 거리가 멀다. 199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의 ‘고난의 행군’ 시대에는 성장이 뒷걸음쳤지만 지난 몇 년간 북한 경제는 비록 1% 내외라 해도 분명 성장하고 있다.

북한은 장사꾼의 나라다. 북한의 당과 군은 국가가 소유한 설비와 무역권(와크라고 불리는 무역할 권리)을 임대한 수입으로 소득을 올린다. 외국의 북한 식당도 유력한 외화벌이 수단이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돈을 번 ‘돈주’(신흥 부르주아)들은 국유 시설과 무역권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전역의 시장을 연결하고 교통망도 만들어냈다. 일반 주민들은 이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고 있다. 박완서의 〈나목〉에 나오는 상황, 즉 전쟁 직후 우리가 시장통에서 꾸역꾸역 살아냈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북한 경제가 조만간 비약을 이룰 가능성은 없다. 북한은 기술경제적 잠김(lock-in), 사회문화적 잠김 현상에 깊이 빠져 있다. 이른바 ‘주체철-주체섬유-주체비료’라는 전기 과소비의 낡은 기술은 ‘자력갱생’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유일사상이 세상을 지배하는 한 사회·문화적 잠김은 더욱더 심각해진다. 모든 물질적 유인이 주체사상이라는 사회규범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된다면 북한 경제가 세계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천리마 운동으로 시작해서 지금도 잊을 만하면 시작하는 100일 투쟁, 1000일 투쟁은 단지 노동시간을 늘려 일시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뿐이다. 그럴수록 생산성은 오히려 후퇴한다.

북한의 시장화는 ‘개혁·개방’이라기보다 러시아식 ‘무법사회’나 ‘자산수탈 경제’(스티글리츠의 표현)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 핵무기다. 김정은 정권은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을 헌법에 명기했다. 북한의 핵심 인력과 자원이 핵 개발에 투입되어서인지, 핵과 미사일의 개발 속도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영웅적 핵 개발’은 현재 북한 사회의 내부 안정을 촉진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3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번 양자 회담은 한미 양국이 지난 7월 8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 공세를 강화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진행되었다. 2016.9.3

 


한국 경제 또한 절망적이다.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는 한편, 불평등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재벌을 정점으로 수직 통합된 수출 체제는 하청기업을 쥐어짜거나, 땅 짚고 헤엄치는 유통과 부동산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뿐이다. 1990년대 혁신주도 경제로 접어들 것 같던 한국 경제는 이제 자산 주도 경제 또는 지대 추구 경제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불평등은 빠르게 증가하고

재벌 개혁과 사회적 경제로 대표되는 경제민주주의, 시장분배 자체를 개선하는 소득 주도 성장, 자산과 소득의 재분배에 의한 복지국가 건설 등 절실한 개혁은 오히려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보수 정권 9년 동안 정부는 부동산에 매달렸을 뿐이고 과거의 구조를 더욱 굳건히 보장해주었다. 박근혜의 ‘혁신’이란 기존 구조의 강화나 다름없다.

남북 모두 정권 유지에 목숨을 거는 공도(共倒)의 길을 택했다. 북한 핵을 둘러싼 군사 대결이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는 제4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 제재의 그물에 집채만 한 구멍을 뚫었다. 현재 북한 경제를 사실상 지탱하는 중국이 북한을 더 강하게 옥죌 이유는 사라졌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한 것은 미국이 아시아에 개입할 여지를 줄여서 동북아 안정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사드는 그런 아슬아슬한 균형 자체를 무너뜨렸다.

국가 안보의 위협은 내부의 모든 비판 세력을 잠재울 테고 기존 경제 체제는 한껏 완고해질 것이다. 오로지 정권 유지를 위해 양 정권은 함께 망하는 길 위에서 100m 경쟁을 하듯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어느 쪽이 먼저 이 틀에서 벗어날 것인가? 물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어떤 두려움도 떨쳐버리고.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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