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글쓴이를 직접 겨냥한 분노의 댓글을 접하는 일이 갈수록 잦아진다. 내가 비판한 작품을 좋게 본 이들, 혹은 내가 칭찬한 작품을 안 좋게 본 이들이 내게 “왜 그렇게 보았느냐”라고 묻는 것이다. “말씀하신 그 장면은 오히려 주인공의 고뇌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인데요, 평론가라는 사람이 작품을 그렇게 띄엄띄엄 봐도 괜찮은 겁니까?” 정도면 그래도 예의를 갖춘 반응이다. “영화 완전 쓰레기던데 대체 얼마를 받았기에 그렇게 빨아주느냐?” 따위의 비아냥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대단한 복락을 누리겠다고 이 일을 계속하는가 싶어서 조금은 쓸쓸해진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업윤리를 의심당하고 향응을 제공받았을 것이라는 억측에 시달리는 일상, 그들의 억측 속에서 내가 누린 향응만 다 모았더라면 벌써 건물 하나는 올렸으리라.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흥행 중인 영화에 혹평을 내리자 대뜸 댓글이 달린다. “당신이 별 한 개 달랑 준 영화가 흥행을 하게 되면 일반 대중은 개·돼지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들만의 리그 속으로 점점 매몰돼가시는구나… 실망입니다.” 상대가 자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일단 화를 내고 비난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 그런데 칭찬하는 쪽도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논리를 갖춘 이들이 많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런 건데 속 시원하다” “사이다” 같은 댓글 속에, 동의에 대한 환호를 제외한 다른 의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와는 큰 틀에서 의견이 다른데, 그래도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라거나, “나와 비슷한 의견이긴 한데 이런 대목은 좀 억지다” 같은 반응은 점차 사라지고 ‘사이다’와 ‘얼마 받았냐’라는 양극단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댓글. 그럼 좋은 글이란 건 대체 뭘까. 어느 쪽이 대세인지 빨리 찾아서 그에 맞는 글을 생산해야 대중의 승인을 받은 좋은 글쟁이가 되는 것일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최근엔 아예 댓글이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이런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승한씨는 혹시 에 대해 어떤 의견이세요?” 이웃 사람과 담소를 나누다가 불쑥 튀어나온 주제였는데, 견해를 밝히니 갑자기 한참 열변을 토하며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훈계를 하기 시작한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건 아세요? 그래도 여전히 같은 의견이세요? 글 쓰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한 시간가량 아무 말 않고 구겨진 표정으로 듣기만 했더니, 그때서야 내 표정을 보고 한발 뒤로 물러선다. “물론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만요.” 그냥 애초에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어느 지점이 다른지만 확인하고 넘어갔다면 5분 만에 끝날 수 있는 대화였다. 하지만 상대는 내가 뭘 몰라서 그럴 것이라 넘겨짚고는 한 시간에 걸쳐 날 가르치려 했다. 그날 오후 난 좋은 이웃을 하나 잃었다.

대세를 파악해서 대중의 취향대로 써야 좋은 글쟁이일까?

우리는 왜 상대와 내가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가. 큰 틀에서 의견이 다르더라도 배울 점이 있고, 같은 맥락의 주장 중에서도 걸러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을 왜 자주 잊곤 하는가. 댓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어쩐지 친구들이 죄다 이스트팩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이스트팩 책가방을 메야 한다고 생각했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나와 같은 것은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니 배척해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 무리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탈락을 의미하니 안간힘을 써서 남들과 같아져야 비로소 안도하는 초라한 집단주의가 지배하던 사춘기 시절 말이다. 틀림을 다름이라 우기며 버티는 이들이 넘실대는 시절에, 그래도 다시 한번 꾹꾹 눌러 적어본다.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는 순간 세상은 딱 그만큼 더 시시하고 폭력적인 곳으로 전락한다. 정반합의 변증도 다채로운 색깔도 다 사라진 가능성의 무덤으로.

기자명 이승한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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