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마다 혼자 강당에서 어슬렁거리는 아이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방과 후 수업을 듣기 전 한 시간 정도 비는 시간에 강당 창문으로 저물어가는 운동장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 강당 문이 저녁 시간에 굳게 잠겼다. 외부인의 침입 등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 아이를 위해 고즈넉한 의자와 창가 하나 마련해주지 못하는 학교의 마음이 쓸쓸했다.

학년마다 ‘교무실 죽돌이’들이 한둘 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들과 노는 아이들이다. 이 선생님 저 선생님 돌아다니며 질문도 하고 사탕도 얻어먹는다. 선생님들과 잘 지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대부분 그 아이들은 교실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연령이 너무 높거나 집에서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경우도 있고, 감성이 풍부하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때로는 진지하게 친구들과 잘 지내보려 노력하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남자 중학교 교실의 북적거림에서 이 아이들이 얻고 싶은 따스한 대화나 애정 어린 관계를 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따돌림당하는 이유는 몸이 약해서도, 말이 어눌해서도,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었다. 성정이 고요하고 사색을 즐기는 품성을 지녔던 그 아이는 쉬는 시간이면 드세기 짝이 없는 사내아이들이 다가와 장난으로 몸싸움을 거는 것이 불편했다. 자기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저희들끼리 비속한 욕설을 주고받는 것도 싫었다. 얼굴을 찌푸리거나 저리 가라고 고함을 지른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은 그런 그 아이 모습을 보고 무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녀석이라 생각하고 멀리했다.

ⓒ박해성 그림

남자아이라고 해서 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노는 걸 좋아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성정은 다양하고 기질은 천차만별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의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 특히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들은 오죽하랴. 학교에서 혼자 있고 싶은 아이들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 우리 학교에선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휴게실이자 숨을 수 있는 공간이다. 쉬는 시간마다 중앙 소파에는 늘 아이들이 북적거린다. 북적거리는 친구들을 피해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즐기고 싶은 아이들은 텅 빈 열람실 구석에 앉아 10분 정도 고독을 즐기다 가곤 한다.

내가 근무하는 상담실로도 가끔 마음이 심란한 아이들을 초대한다. 딱히 마주 앉아 상담을 하지 않아도 그냥 혼자 앉아 그림책을 읽다 가라고 한다. 다 큰 중학생이 무슨 그림책이냐 할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 엄마 무릎에서 도란도란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고 크지 못한 아이도 많다. 혼자 앉아서 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가는 일은 중학생에게도, 아니 어른들에게도 좋은 시간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색칠하는 책이나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안겨주기도 한다. 상담실에는 퍼즐이나 자전거 프라모델, 젠가 같은 것도 있다. 상담을 위한 말문 트기 도구들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 상담실에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스스로를 만날 수 있어야

나도 아이들이 어려서 하루 다섯 시간 수면도 챙기지 못하고 바쁘게 살 때, 화장실과 차 안이나 지하철 이동 시간이 가장 편안했다. 사람은 그렇게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이런저런 생각에도 잠기고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돌아봄이 없이 나아감도 없다. 고독하고 적막한 시간이 있어야 타인과 어우러지는 때가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존중받으며 산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은 어떠한가? 좁은 공간, 빡빡한 시간표, 쉬는 시간마저 혼자 있기 어려운 학교에서 오래 버텨야 한다. 물론 학교를 탈출해도 자기만의 세상은 없지만 말이다. 도대체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마음을 쉬는 걸까. 참 미안하고 안타깝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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