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배추김치를 안 먹는다. 먹어도 아주 조금 먹는다. 라면을 먹을 때도 그렇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을 때도 친구들은 김치를 사서 같이 나눠 먹는데 윤희는 그냥 물과 함께 먹고 만다. 왜 안 먹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맛없어”다. 김치 중에서 그나마 잘 먹는 것은 총각김치나 오이소박이 정도다. 아, 깍두기도 좀 먹는다. 그런 윤희가 김치로 하는 요리를 주문할 때가 있다. 바로 ‘김치볶음밥’이다. 그것도 김치를 4분의 1포기나 넣고 만드는 볶음밥을 말이다.

“아빠 저녁 뭐야?” “생각 중.” “김치볶음밥 해줘.”

김치볶음밥을 할 때 중요한 것이 함께 볶는 재료다. 참치·오징어·햄·고기 등의 부재료 말이다. 윤희는 참치는 싫어하고, 오징어는 그냥저냥이다. 특히 햄은 질색한다. 싫은 이유도 김치처럼 단순하다. “맛이 없어서”다. 햄이나 소시지를 싫어하는 아이가 드문데, 윤희는 좀 별나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고기면 고기답게 씹는 맛이 있어야지.” 윤희가 햄과 소시지를 싫어하는 이유다. 특유의 훈연 냄새도 한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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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은 김치와 밥을 섞기 전에 잠시 불을 꺼야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하려면 맛있는 김치가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김치란 게 참 묘하다.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가 다 떨어져갈 즈음 집안 어른들이 담가주신 새 김장김치가 익는다. 그러다 보니 1년 내내 익은 김장김치를 먹는다. 늘 맛있는 김치가 있으니 그다음은 부재료다.

우리 집에 항상 있는 부재료는 돼지 항정살이다. 돼지고기의 다른 부위보다 기름과 살 맛의 조화가 좋기 때문이다. 카레라이스를 만들 때도 살만 있는 안심으로 하는 것보다 낫다. 지방 맛이 더해져 카레에서 좀 더 깊은 맛이 난다. 삼겹살이나 목살보다 조금 비싸지만, 동네 시장에서 한 팩(200g에 5000원 내외)씩 소량으로 구입하면 부담이 적다.

이제 만드는 방법. 김치를 송송 썰어 준비한 다음 고기를 볶는다. 고기도 볶기 전에 소금으로 밑간을 해야 맛있다. 약한 불에 천천히 볶아야 항정살에서 기름이 잘 나온다. 센 불에서 볶으면 기름이 빠져나오기도 전에 익어버린다. 기름이 어느 정도 나오면 김치를 볶는다. 빨간 김치가 희끗하게 변할 때쯤 밥을 섞기 위해 불을 잠시 끈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불을 켠 상태에서는 마음만 급해져 볶은 김치와 밥을 잘 섞지 못한다. 김치를 볶을 때 간장이나 액젓을 조금만 넣으면 감칠맛이 난다.

밥과 김치를 잘 섞은 후 식용유를 조금 더 넣는다. 돼지기름만으로 밥까지 볶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잘 섞인 밥과 김치를 한번 빠르게 볶아낸 후 그 위에 참기름을 몇 방울 뿌린다. 볶을 때 넣으면 향은 날아가고 쓴맛만 남는다. 프라이팬에 남은 잔열로 누룽지를 만드는 동안 꼭 하나 더 할 게 있다. 바로 달걀 프라이다. 윤희는 완숙, 나는 반숙이다. 윤희는 아직 반숙 노른자의 고소함을 모르고, 물컹한 식감 또한 낯설어한다. 나 또한 어릴 때 반숙 달걀을 먹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 반숙 달걀을 즐기고 있었기에 별 이야기를 안 한다.

볶음밥이 완성되면 윤희를 부른다. “김윤, 밥 먹자.” “왜 프라이가 하나야?” 아, 두 개 먹지. 깜빡했다. 윤희가 밥 먹는 사이 달걀을 하나 더 부친다. 달걀노른자를 터뜨리고 반숙과 완숙의 경계 정도로 만든 뒤 모른 척 밥 위에 올려준다.

“맛있어?” “응, 그런데 조금만 더 익히지.” “알았어. 오늘만 그렇게 먹어.” 그래놓고는 나중에도 가끔씩 반숙과 완숙 사이의 프라이를 해준다.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고, 좀 더 있으면 경계 너머의 맛을 알게 되겠지. 이렇게 한 끼를 먹었다. 그러면 된 거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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