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라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친구들과 함께 얼굴이 새빨갛도록 소리 높여 부르고 난 뒤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나라를 빛낸 위인들 노래인데, 위인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 있다고. 교사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매국을 한 이완용은 위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교사도 듣고 보니 정말 그 아이 말이 옳았다. 그걸 지적하는 그 아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1학년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앞잡이라는 사실과 강제로 나라를 빼앗은 일본도 나쁜 나라라고 설명했다. 몇몇 아이들이 일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쳤고, 교사는 뿌듯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 아이가 울면서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교사는 어디 아프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이들이 엄마한테 욕을 해서 기분이 나빠서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누가 무슨 욕을 했느냐고 물으니, 자기 엄마가 일본 사람인데 조금 전에 아이들이 일본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했단다. 교사도 일본이 나쁜 나라라고 말했으니 속으로 뜨끔했다. 교사는 그게 아니라 일본 군인이 나쁜 사람이고, 일본 사람 전부는 아니라고 통사정하며 달랬다.

ⓒ박해성 그림

또 이런 일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교사가 내일은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는 날이니 엄마에게 말씀드리라고 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한 아이가 대뜸 자기는 엄마가 없다고 말했다. 교사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학부모 공개수업 때 오는 분은 어머니들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한 것뿐이었다. 부모님이라고 말할걸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교사는 그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난감해서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갔다. 그 아이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고, 아이가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시민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없다

앞에 적은 이야기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이야기다. 사소한 이야기 같지만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은 물론 우리 사회의 내일을 위해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행정자치부 통계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부모 한쪽이 외국인인 아이는 20만명 정도, 초등학교 학령기 아이는 5만6000명이고, 영유아는 초등학교 학령기 아이들의 2배인 11만7000명이라고 한다. 2021년께에는 전체 인구의 5.8% 정도가 외국인으로 OECD 평균인 5.7%를 넘어서는 다문화 사회가 되리라고 예측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나라의 인종이나 문화 갈등을 이웃집 불구경하듯이 넘어갈 일이 아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갈등을 겪고 있다.  

한 10년 전 일이다.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제법 좋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가구 공장에서 일하면서 욕설, 구타, 임금 체불과 같은 비인격적 대우를 받은 일들을 말했다. 심지어는 동네 초등학생들까지 자기를 무시하고 놀렸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 청년의 우울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는 교육이념으로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 제시되어 있다. 시민다운 자질은 인권·정의·연대·평화·다양성 존중 등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일 것이다. 프랑스·영국·독일·미국 등은 시민 교육을 위한 교과서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가정·학교·사회는 시민을 기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리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터이다. 정말 법대로 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들은 다문화 국가로서 오랜 역사를 갖고 사회 통합을 위한 국가적인 노력이 있었음에도 최근 여러 갈등이 벌어진다. 우리 교실에서 일어난 작은 일화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닐 것이다.

기자명 이중현 (남양주시 조안초등학교 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