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성공회대,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 철학아카데미 등이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위)을 한다.
교도소에서 만난 그는 빡빡머리 모양이었다. 삭발을 해야 할 만큼 비장한 무엇이 있었을까. 그런데 얼굴이나 몸집은 비장함과는 딴판이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체구는 듬직했다. 잔여 형기는 아직 5년이나 남았단다. 여유로운 표정과 삭발 간의 부조화는 5년을 더 갇혀 있어야 하는 현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2주간의 교육이 끝나는 날,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동안 저는 석방되면 어떻게 먹고살까만을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고 난 뒤… 지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제 고민이 되었습니다.”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그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을 게다. 학교도 다녔을 것이고, 교도소에 와서도 인성교육이나 직업교육을 받았을 게다. 그런데 2주간의 짧은 교육만으로 자기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다니….

내가 일하는 단체가 지난 3월부터 성공회대학교,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 철학아카데미와 함께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하려고 했던 이유를 그는 이 한마디로 단박에 정리해주었다. 그 순간 고맙고 또 행복했다. 인문학의 텃밭인 대학에서 위기를 말하는 이때, 얼핏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교도소에서 인문학이 다시 꽃피는 셈이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이명원 선생은 이 교육에 ‘평화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존중받아야 존중할 줄 안다

교도소는 죄값을 치르는 곳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은 범죄자의 교정·교화에 있다. 허나 국가가 이미 성인이 돼 머리가 굵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교정직 공무원이 열심히 뛰는데도 상황은 열악하다. 수천명을 수용하는 교도소에 강의실이라고는 달랑 두세 개가 전부이고, 예산이나 인력 역시 부족하다. 도무지 ‘교정·교화’라는 게 제대로 이뤄질 형편이 아니다.   대체로 재소자는 가난하고 배움도 짧다. 그런 이들일수록 자존감이 중요하다. 돈 없고, 가방끈 짧은 그들이 현실과 싸워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한 재소자는 생일 케이크라는 걸 교도소에 와서 처음 먹어보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생일잔치’ 따위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재소자 중에는 자기 자존감을 확인하지 못한 채 살아온 이가 많다.

그래서였다. 재소자에게 인문학 교육을 하는 동안 가능하면 최고 강사를 모시고, 최고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자기가 존중을 받아봐야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문학·철학·역사·예술에 대한 공부를 통해 나와 이웃의 존재를 다시 고민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그들의 교정·교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평화 인문학’ 과정을 마친 ‘우리 안의 이웃’ 몇몇이 소감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딘 평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바라는 마음에서 몇 구절만 살짝 공개한다. “처음에는 그저 방 안에 멍하니 있는 게 너무 지겨워 교육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죄가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저 또한 이라크에서 웃으며 사람을 죽이는 그런 살인자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생은 고난의 바다와 같을 테지만,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어 제 자신과 마주하겠습니다.”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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