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합격 가능한 대학의 윤곽이 잡히는 시기다. 고3 아이들은 방학 전에 6월 평가원, 7월 인천교육청이 주관하는 모의고사를 치렀고, 수시 지원에 마지막으로 반영되는 1학기 기말고사도 봤다. 학원 강사들은 입시 자료집과 누적된 합격생 데이터를 토대로 아이들과 상담을 시작한다. 정확한 입학 커트라인은 대학이 공개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으므로 참고만 하라는 당부도 곁들인다. 상담을 받는 아이들 얼굴은 장래 희망을 “공룡!”이라고 외치듯 목표 대학을 말하던 고1 때와 사뭇 다르다. “가고 싶다고 하면 갈 수 있나요 뭐. 되는 대로 가야죠.”

상담 시간에 이름조차 낯선 대학을 추천받으면 “(학원이나 학교가) 진학 실적 높이려고 이상한 대학을 권하는 것 아니냐”라며 의심의 눈빛을 보내는 아이도 있고, 그동안 ‘sky,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을 외우며 지내다가, “이름을 들어본 대학은 전부 1등급이었고 내가 갈 대학은 아니었다”라며 절망하는 아이도 있다. 갈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다 보면 ‘내가 이런 대학에 가려고 3년간 이 고생을 한 건 아닌데’ 싶어서 재수라는 대안도 떠올려본다. 아이는 “재수한다고 하면 아빠한테 맞아 죽을걸요”라며 지금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을 다시 확인해보고, 선생님에게 “100일이면 되겠죠?” “저 그냥 재수할까요?”라면서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박해성 그림

여섯 번의 지원 기회를 합격할 수 있는 대학으로 채워넣을지, 점수와 상관없이 가고 싶은 대학으로 넣을지는 아이의 선택이다. 아이는 100일 후 놀랄 만한 성적을 받을 수도 있다. 몇 군데는 떨어지더라도 원하는 곳에 지원해야 후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막연한 희망은 답을 주지 않고, ‘어느 대학에 써봤다’는 위안은 향후 1~2년을 더욱 원치 않는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상향 2개, 안정 2개, 하향 2개 쓰세요” 같은 뻔한 소리 빼고는 할 말이 없다.

3개월 집중 과외 요청하는 학부모들

수시 지원까지 남은 한 달, 학부모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략을 찾아보려고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닌다. 어떤 학부모는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작년 말부터 부랴부랴 논술을 한 거죠. 논술로 (당락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풍문으로만 떠도는 대학별 논술 합격 점수를 알기 위해 발로 뛴다. “1년 재수시킬 거면 그 돈으로 지금 100일간 집중 과외라도 해주고 싶네요”라며 논술 전형 지원 시 요구하는 최저 수능등급을 맞추기 위해 3개월 집중 과외를 요청하는 부모도 있다. 논술이 대입의 비법 소스도 아니고, 그것만 끼얹는다고 갈 수 있는 대학의 수준이 확 올라가지는 않으련만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여기에 재수를 해본 주변인의 경험담을 듣고는 “이번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애가 그 과정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라며 걱정하고, 한편으론 “재수하면 돈이 얼마 든다더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부모도 있다.

이 시기에 학원 강사가 더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제 100일 남았어요”라며 울상 짓는 아이들에게 “수능 외의 날짜는 다 의미 없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척해본다. “어차피 결국 수능 싸움인 거 알았으면 내신에 목숨 걸지 말걸 그랬어요”라고 뒤늦게 후회하거나 “6평(6월 모의평가)은 잘했는데 수능은 또 모르죠. 좋은 대학엔 가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라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말로 힘 뺄 시간에 문제나 하나 더 풀라”며 이전과 다름없이 지낼 것을 주문한다. 한 학부모는 “저는 미치겠는데, 얘는 이렇게 무사태평이라니까요? 학원 선생님께선 그냥 기다려보자 하시는데, 날짜는 흘러가고…”라며 초조해한다.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공부 외에는 없다. 말로 해서 오를 성적이면 진즉에 올랐다. 오히려 그 태평함이 수능 날까지 유지된다면 큰 복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가서 성적을 내는 것은 결국 아이 혼자 할 일이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안정을 찾는 일밖에 없다. 잘 견뎌온 아이가 갑자기 무너졌을 때 기댈 수 있는 부모의 품이 필요하니 말이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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