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의 물류 BPO(물류 처리 대행) 사업 재편이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6월7일, 삼성SDS는 물류 사업 부문을 분할하겠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의 사업부 중 하나인 물류 부문을 새로운 법인으로 독립시킨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독립한 물류 법인이 삼성물산에 합병될 것이라는 소문이 업계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성SDS는 지난 7월18일 ‘물류 사업 분할 후 합병 또는 매각 계획 부인’이라는 공시를 통해 “물류 사업 부문을 매각하거나, 분할 이후 삼성물산과 합병을 검토한 바 없으며 검토 계획도 없다”라고 발표했다. ‘소문’을 공식 부인한 것이다.

삼성SDS의 이러한 해명에도 ‘삼성물산의 SDS 물류 부문 합병설’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이 합병하지 않는다면, 삼성SDS가 물류 부문을 일부러 분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단순한 사업 분리 발표 같지만, 삼성SDS의 독특한 기업 성격 때문에 ‘배후 의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SDS는 ‘계열사 간 거래(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전산 시스템을 구축·관리)’를 바탕으로 국내 SI(System Integration:시스템 통합) 업계 1위를 유지해왔다. 주된 성장동력은 IT 서비스 사업(SI·컨설팅·아웃소싱)이지만, 최근 경제 전반이 성장 둔화 현상을 보이면서 매출 확대가 어려웠다. IT 서비스 역시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삼성 계열사 이외의 다른 기업들로 거래망을 넓히기도 쉽지 않다. SI 등 IT 서비스는, 진입 장벽이 낮은 데다 노동집약도가 높아서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부문이다.

ⓒ연합뉴스6월14일 삼성SDS 소액주주들이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다며 삼성SDS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삼성SDS가 선택한 전략 사업이 바로 물류 부문이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회사의 물류 체계를 구축 및 관리하는 사업이다. 2011년부터 삼성SDS가 삼성전자의 해외 물류 시스템을 전담하게 되면서, 물류 부문이 급속히 성장했다. 올해 2분기 말 현재, 삼성SDS의 매출액 가운데 41%가 물류 부문에서 나왔을 정도다. 물류 부문의 매출은 2012년 6276억원에서 지난해 2조6200억원으로 3년 동안 4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삼성SDS가 삼성전자 이외에 다른 계열사의 물류 사업까지 도맡으면서 사업 규모를 더욱 키울 거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와중인 지난 6월, 돌연 삼성SDS의 물류 부문 분할 공시가 나왔으니 이를 둘러싼 소문들이 난무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가장 유력하게 떠돌았던 이야기는, 삼성물산이 그룹 지주회사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SDS에서 물류 부문을 떼어낸 다음 합병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승계 과정에서 핵심 고리 구실을 하고 있다. 문제는, 합병 이후 삼성물산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매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 부문의 적자 폭이 뼈아프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지난해 130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는, 1분기 영업손실만 4150억원이다(2분기에는 영업이익 1770억원). 더욱이 바이오·패션·리조트 등 삼성물산의 다른 사업 부문은 아직 매출 규모가 크지 않다. 결국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이며 경영권 승계의 핵심 고리인 삼성물산의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향후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을 버는 회사)’ 역할을 맡을 삼성SDS 물류 부문을 합병하려 했다는 이야기다.

당초 삼성SDS는 이재용 부회장의 개인 지분이 많은 계열사라는 이유로 경영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았다. 삼성SDS의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삼성전자나 삼성물산과 합치는 시나리오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올 2월 이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 일부(2.05%)를 매각했다. 이후 삼성SDS의 기업 가치를 높여 전자 혹은 물산과 합병하는(SDS의 가치가 높을수록 합병 회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분도 커진다) 방법보다 SDS의 일부를 분할하고 여기저기로 합병시키는 복잡한 그림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SDS의 물류 부문 분할 소식에 가장 놀란 쪽은 IT 업계다. 심지어 IT 서비스 부문의 일부가 분할되어 삼성전자에 흡수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1985년 출범 이후 한국 IT 산업의 대표 기업으로 국내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해온 삼성SDS가 사분오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삼성SDS에 남는 기능은, 그룹 내 계열사들에 IT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 외에는 없다.

ⓒ연합뉴스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은 지배력 강화에 SK C&C를 활용했다.

SK도 총수 지분 강화에 그룹 SI 기업 활용

일각에서는, 한국의 대표 IT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SDS가 이런 논란에 휩쓸리는 현상을 ‘온실 속 화초’ 효과로도 설명한다. 삼성SDS는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에 편승해서 사업 규모를 키워왔을 뿐, 오라클·IBM·SAP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하면서 독자적인 IT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벌 계열 SI 업체의 한계는 삼성만 겪는 일이 아니다. 삼성SDS와 함께 3대 SI 업체로 꼽히는 LG CNS, SK C&C(현재 SK㈜와 합병)는 모두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SK C&C는,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핵심 구실을 했다. 최 회장은 개인적으로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의 지분 중 상당수를 헐값에 인수한 뒤 이 회사의 기업 가치를 크게 높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SK 계열사들의 일감을 SK C&C로 몰아주기만 하면 된다. SK C&C는 이렇게 번 돈으로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SK㈜의 지분을 매입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두 회사가 합병했다. SK C&C의 가치가 매우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최 회장은 합병회사인 SK㈜에 대한 지배력 또한 강화할 수 있었다.

한화그룹의 SI 업체인 한화S&C 역시 SK와 같은 길을 밟고 있다. 한화S&C는 2001년 ㈜한화에서 분사한 이후 그룹 계열사 IT 서비스 업무를 수주하며 몸집을 키웠다. 업계 5위권 SI 업체로 평가받는 한화S&C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김동관 50%, 김동원 25%, 김동선 25%). 김 회장의 세 아들은 지주회사 격인 ㈜한화의 지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언젠가 한화S&C의 기업 가치를 크게 높인 뒤 ㈜한화와 합병하는 방법으로 그룹의 지배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태원 SK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한 과정과 흡사한 시나리오다. 적은 투자금으로 SI 업체를 인수하거나 만들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규모를 키운 뒤 지주회사와 합병하는 ‘공식’이다. 이런 인수합병 게임의 제물이 된 SI 업체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다. 주가를 높은 상태로 유지해야 하므로 가급적 사내에 돈을 갖고 있다. 재벌 SI 업체들의 주 수익원이 기술 서비스인데도 ‘전문 기술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포스코ICT, 현대오토에버, 동부CNI, 롯데정보통신, 신세계I&C 등 여타 재벌 산하 SI 업체의 매출 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IT 서비스 시장 규모는 약 30조원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52.8%에 이르는 약 16조원이 상위 22개사에 몰려 있고, 이들 대다수가 재벌 계열 SI 회사다. 지난해 4월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벌 산하 SI 업체 상위 20개 사의 내부거래 비율은 61%에 육박했다. 삼성SDS는 84.8%, LG CNS는 43.9%, SK(당시 SK C&C)는 40%가 내부거래 비율이었다.

재벌그룹 내 SI 업체를 별도로 마련하고,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룹 정보 보안과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주된 명분으로 내민다. 그러나 SI 업체는 원료 생산에서 완제품 생산, 제품 판매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사업구조와는 무관한 분야다. 정보 보안 역시 자회사를 따로 차려야 할 만큼 절대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SI 업체들이 내부거래를 발판으로 재벌가의 경영 승계의 디딤돌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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