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메갈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면 크든 작든 간에 메갈리안의 표현 방식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왜 아니겠나. 전통적인 젠더의 틀 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성의 언어, 행동들이 재현되고 있는데. 성 평등이 진전된 서구 사회에서조차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존재함을 고려해보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들에게 우려와 논쟁은 잠시 미뤄두어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달이 아니라 손끝만을 보는 관행이며, 성차별적인 온라인 문화와 여성혐오 현상을 개선하는 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원본’이 사라지면 ‘미러링’도 사라질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언어가 사라지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성차별적 문화 개선에 적극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러링의 근거가 되는 성차별적 원본을 만들고 퍼 나르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비판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권력을 적극 동원해야 한다. 여성의 몸을 쾌락의 도구로 다루는 언어의 범람, 여성 개개인을 대상화하고 협박하는 불법적인 놀이가 당연시되는 풍토, 이를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상쯤으로 관용하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메갈리안과 같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계속 출현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 앞에 놓인 현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를 보자. 이 사건을 계기로 쏟아져 나왔던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과 위협은 말 그대로 심각하다. 신상이 공개되고 과거 발언이 문제되는 등 이들이 사건 이후 겪은 일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이들이 막말을 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실명으로 비판한 적도 없다. 단지 여성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 현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처절한 복수와 응징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여성혐오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제기했던 시사 프로그램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사한 일은 또 있다. 지하철 광고로 게재될 예정이던 ‘성차별 언어 개선 캠페인’ 포스터도 갑작스레 게재가 철회되었다. 남성 비하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보다 심각한 성차별적 메시지가 모두 허용되고 있지만 유독 이 포스터만 게재가 철회되었다. 이는 남성 중심적이고도 성차별적인 시스템을 빼면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페미니즘 문구를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교체된 게임 회사 넥슨의 성우 사례도 있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인 메갈리안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사실뿐이다. 이를 둘러싼 논쟁에 적극 참여했던 웹툰 작가들에게도 여러 방식의 불이익이 주어졌다. 이 모든 것은 페미니즘을 적대시하는 성차별주의자들의 조직적이고도 집중적인 민원 때문이다.

남성을 배제하거나 타도하겠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성차별적 문화와 여성혐오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누구도 불합리한 위치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인권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남성을 배제하거나 타도하겠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지향은 늘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사악한 것으로 왜곡되어왔다. 그 결과 성차별 해소를 위한 담론은 어느 순간 성 대결 프레임으로 변질되곤 한다. 바로 이러한 논의 지형이 사회를 향해 말하기를 시작한 여성들에게 큰 위협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 대결이 아닌 성차별 해소라는 프레임은 항상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비장애인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것처럼, 여성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남성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이는 단지 성차별적 관행과 문화, 제도를 반대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누구나 함께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이는 여성만의 권리 혹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다양한 젠더의 권리를 존중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이야기해온, 이처럼 간단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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