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정말 덥다. 문을 열고 나서면 습한 열기가 훅 덮쳐오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다. 최근 중동에서 온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조차 “습도가 높아 고향보다 더 덥게 느껴진다”라며 한국의 삼복더위에 혀를 내둘렀다. 평생 환경운동에 앞장서온 최열 선생은 “내가 시원한 만큼 지구가 뜨거워진다”라며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고 한다. 나같이 범상한 사람은 그 공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미안한 마음에 냉방기만 켰다 껐다 할 뿐이다.

요즘에는 휴가를 반납하고 일만 하는 직장 상사들이 시대착오적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가려면 괜히 눈치를 봐야 했다. 5~6년 전쯤, 어느 제약회사가 “뭐? 워~얼~차! 어디 월차를 내? 개념 없이…”라는 라디오 광고를 한 적이 있었다. 유급 월차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법적 권리인데도 말이다. 결국 민주노총의 항의를 받고 광고는 며칠 만에 수정됐다.

열심히 일하는 나라, 한국에서는 여가나 휴식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편이다. 쉬지 않고 일해도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판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자못 사치스럽고 배부른 소리로 여겨지곤 했다. 압축 경제성장을 이루며 앞만 보고 달려와서 그렇지 싶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한 만큼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장 수준인데 생산성은 최하위라는 이 역설에 빠진 것은 쓰지 못하는 휴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 휴식은 생산성을 높이고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므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휴식은 권리다. 권리 중에서도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살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다. 인간이 휴식 없이 일만 한다면 기계와 다를 바 없으며 천형의 벌을 받은 시시포스처럼 괴롭기만 할 것이다. 사람은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 적절하게 쉬어야 한다.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며 현대 인권의 경전(經典)으로 불리는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제정 당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는 “모든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에는 노동시간을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라고 천명한다. 휴식과 여가를 권리라고 분명하게 못 박고, 무한대로 일한 뒤 겨우 틈을 내서 쉬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여서 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그 휴식 시간조차 유급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휴식권과 노동권은 ‘쌍둥이 조항’으로 붙어 있어

흥미로운 사실은 휴식권과 노동권이 ‘쌍둥이 조항’처럼 붙어 있다는 것이다(〈인권을 찾아서〉 조효제, 한울아카데미). 휴식권은 노동할 권리 조항(제24조) 바로 다음에 있다. 노동권의 일부로 넣어도 별 무리가 없을 텐데 굳이 독립 조항을 만든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요즘처럼 살벌한 경쟁 시대에 노동자들이 끝없이 내몰려 얼마나 혹사당할지 알 수도 없다.

휴식권은 성경에서도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어른은 물론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게다가 산 짐승이나 나그네라도 쉬어야 한다”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 게다가 땅조차도 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짓고 일곱째 해는 쉬게 하라고 명령한다.

기독교뿐이랴. 1981년 제정된 세계이슬람인권선언은 노동자의 지위와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권과 함께 적절한 휴식과 여가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고, 〈금강경〉과 같은 불교의 경전이나 대선사들은 한결같이 ‘한 생각’을 쉬는 것이 득도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자, 이제 밀린 일을 밀쳐놓고 충분한 휴식을 가져보자. 휴가계획서를 내면서 괜히 눈치 보고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 휴식권은 인간에게 반드시 보장돼야 할 인권이며 이는 온갖 종교도 보장하는 당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변은 좀 살펴보면 좋겠다. 한 발달장애인의 휴가 분투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너무 미안해서 땀이 났다.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하는 고속버스는 물론이고 휴가지의 음식점, 높낮이가 다른 숙소의 방과 화장실 등 장애인에게 휴식권은 아직도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휴가라고는 엄두도 내기 힘든 주변의 어려운 이웃도 잠시 생각하면 좋겠다. 휴가 비용의 아주 일부라도 시민단체에 기부하면 더욱 멋진 휴가가 되지 않을까. 여하튼 올여름엔 좀 쉬자.

기자명 문경란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서울시 인권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