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새 ‘반려동물’이 되었다. 반려라는 말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인데 개에게도 사람대접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이 한 공무원에 의해 졸지에 개·돼지가 되었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표현한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을 듣고 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발언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만취 상태도 아니었고 정정할 기회까지도 주었다고 하니 취중 실언이라고 보기 어렵다. 은연중에 평소의 생각을 드러낸 자기 고백이다. 그것은 설익고 오만한 그의 신념이며 여러 장소에서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공무원이 기자들 앞에서 그렇게 말한 부주의성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핵심은 그런 말을 누구 앞에서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는 그의 비뚤어진 생각이 문제다.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기획해왔고 이번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자신의 생각이 바탕이 된 방향으로 정책 입안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교육부 내에 정책기획관 혼자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동조자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을 가진 공무원이 자리 잡고 앉아 정책을 시행하는 부처가 교육부뿐이겠는가.

근래에 말도 안 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천박한 정치인·공무원·기업인·학자 등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권력자의 눈에 들어 벼락출세를 하거나 줄을 잘 타서 고위직을 차지한 사람들, 그리고 단 한 번의 고시 합격으로 신분 상승을 했다고 우쭐대는 일부 인간형이 대부분이다. 막말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팽배한 온갖 ‘갑질’과 횡포도 같은 심리에서 나타나는 유형이다. 불행한 것은 이들이 쥐고 있는 현실 권력이 막강하다는 사실과 이들의 막무가내식 발언과 파렴치한 행태를 막을 장치나 제도가 우리 사회에 아직 없다는 점이다.

나향욱 정책기획관뿐 아니라 여러 사건이나 조직에서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와 같은 터무니없는 사건, 현직 검사도 자살하게 만드는 검찰 조직, 사드 배치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지역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하룻밤 사이에 처리해버리는 정부 등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군사 문화적 명령과 복종 체제가 우리 사회에 넘실대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국민은 약자이며, 약자의 생각은 청취하고 소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억누르고 불온한 생각을 잠재우는 대상에 불과하다. 문제가 커지면 적당히 거짓말하고 왜곡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행태는 대부분의 사건과 사고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진실을 알리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것이 현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은 사육 대상이지 교육 대상이 아니고, 교육해봐야 신분 상승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포기하게 하고 적당히 먹고살게 해주면 된다는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끝까지 주시해야

대한민국 헌법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권재민의 의미도 체화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그들을 엘리트 공무원이니 뭐니 하면서 띄워주는 전도된 의식과 사회적 평가도 문제지만 공무원 선발 방식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시험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5급 행정고시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공무원에게 중요한 것은 실무적 경험과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 권력자가 아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다. 고시 제도로는 이러한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나향욱씨의 막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민중을 가축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려 국민의 분노를 폭발 지경에 이르게 했고, 앞으로 사회적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리라 보인다. 가뜩이나 신분제 사회가 되어가는 한국의 반(反)헌법적 현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아예 신분제로 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천박한 사고를 가진 자가 국가 정책을 다루는 고위직에 오르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가 파면을 당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다른 큰 사건이 터져 묻히고, 징계는 슬그머니 가볍게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을 순치의 대상, 훈육의 대상, 높으신 분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그의 발언은 계속 비난받아야 하고, 정부가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끝까지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정책기획관에 임명한 교육부 장관은 즉시 사퇴해야 한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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