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가을 야구를 위한 중위권 다툼이 치열한 이 시기, 아침에 눈뜨면 다짐한다. 오늘은 반드시 야구를 끊으리라. 어젯밤의 야구는 또 고통의 연속이었다. 정신줄을 놓은 주루사, 타구 지점을 못 찾은 외야수, 배팅 볼 투수 같던 선발투수, 패색이 짙은 경기에 집중력을 놓아버린 내야수들까지. 그래도 한 번은 흐름이 우리 쪽으로 올 것이라며 9회 말까지 끝끝내 경기를 지켜본 나 자신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끊는다 끊는다 하며 야구를 못 끊은 내 잘못이다. 스트레스가 지나치니 팀을 옮겨보고 싶다. 철모르는 이들이 가끔 좋은 팀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마다 나도 덩달아 흔들린다.

굳이 추천을 원한다면 KBO 리그는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넥센 히어로즈(서울), 두산 베어스(서울), LG 트윈스(서울), SK 와이번스(인천), kt 위즈(수원), 한화 이글스(대전), 삼성 라이온즈(대구), KIA 타이거즈(광주), 롯데 자이언츠(부산), NC 다이노스(창원)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의 팀을 고르면 홈경기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하지만 행복한 야구 생활을 원한다면 한 호흡만 쉬고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볼 것을 권한다. 홈페이지에서는 역대 구단 성적을 조회할 수 있다. 지역 팀이 다년간 3할대 승률을 유지했거나 최근 10년간 가을 야구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자. 201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LG 트윈스의 팬들은 경기 관람을 위해 장롱 속 고이 봉인해둔 유광 잠바를 11년 만에 꺼내 입을 수 있었다.

ⓒ시사IN 자료야구에서 승률은 과거의 통계다. 팀의 역사를 말해주긴 하지만 미래를 예견하지는 못한다.

야구에서 승률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통계다. 팀의 역사를 말해주는 수치이지만 미래를 예견하지는 못하므로 너무 낙담하지 말자. 입문하고 나면 어차피 내 팀은 매일같이 이길 것만 같은 착각을 줄 테니 말이다.

강팀의 향수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를 추천한다. 이종범·선동열로 대표됐던 타이거즈 왕조는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야구 좀 볼 줄 아는 아재들이 함께한다. 다만 추억만 곱씹기에는 혈압이 오른다. 타이거즈 팬들은 마지막 우승의 기억도 벌써 7년이 지났다면서 이대로 암흑기 10년이 올 것이라 자조한다. 하지만 입문자여, 낙담할 것은 없다. 올해 KIA 타이거즈는 지난해와 달리 경기당 평균 득점이 5점이 넘으며, 임창용이 가세한 투수진에 윤석민까지 돌아오면 가을 야구도 넘볼 수 있으리라고 팬들은 믿는다. 또한 3군까지 갖춰 체계적으로 선수를 양성하는 시스템과 고질적 문제였던 재활 시설을 확충해온 노력은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야구 명가 삼성 라이온즈도 곁에 있다. 이 팀은 프로야구 개막 이래 한국시리즈 진출 횟수만 17회로, 가끔 1루에서 2루를 밟지 않고 3루로 달리다 아웃되는 ‘본헤드 플레이’가 반복되긴 하지만 팀 타율 3할대를 두 번이나 기록한 유일한 팀이자 선발투수 5명 전원이 100이닝 이상을 소화해낸 괴물 같은 팀이었다. 재활만 하러 가면 제 기량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다른 팀의 관리 수준과 달리 트레이닝 센터도 잘 갖춰져 선수 생명 연장에 기여하는 믿음직한 구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5년 연말 소속 선수들의 도박 사건을 계기로 올해 삼성 라이온즈는 명가에 어울리지 않게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두 팀처럼 역사가 긴 팀은 아무래도 부침이 있는 법, 신입생에게는 속 편하게 시작할 신생 팀이 어울릴지 모른다. 여기 2013년, 2015년에 각각 1군에 첫발을 디딘 NC 다이노스와 kt 위즈가 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나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감명 깊게 본 이에겐 kt 위즈를 추천한다. 최근에는 ‘주권’이라는 투수가 데뷔 첫 승을 무려 완봉승으로 해낸 바 있다. 조범현 감독의 신년사처럼 ‘작은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하며 큰일을 이뤄나가는’ 중이다. NC 다이노스도 눈여겨보자. 팀 순위도 2년차에 3위, 3년차에 2위, 4년차인 현재도 압도적인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어 슈퍼루키를 지켜보는 뿌듯함은 덤이다. 물론 야구계의 ‘만년 2등’ 김경문 감독을 모를 때의 감정일 것이다.

기어이 응원의 맛을 느껴야겠다면 ‘주황 봉다리’의 롯데를 거르고 갈 수는 없다. 다만 이 팀에 투신하기 전 당신이 믿어야만 하는 학설이 하나 있다. 바로 ‘최소한의 양심설’이다. 롯데는 노태우 정부 이후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고, 2015년에는 KBO 최초 팀 통산 2100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구단 프런트는 CCTV로 선수들을 사찰하고, 자유계약선수(FA)를 놓쳤으며, 감독과 코치 선임에게 ‘묻지마 인사’를 거듭한다. 선수들은 9이닝 동안 안타를 2개 치고, 한 달 동안 고작 6승을 거둬 팬들 가슴에 갈매기 모양의 흉터를 되새기는 데도 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바로 “사직구장으로 호적을 옮긴 우리를 봐서라도 한 번은 우승하겠지” 하는 신앙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은 ‘롯데 야구’가 칠 때 몰아치며 팬들에게 보답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갑자기 타선이 정비돼 3연전을 내리 이긴다거나 평균 자책점을 2점대로 유지하면서 기어이 5위로 다가가 가을 야구의 문턱을 밟을 것만 같을 때, 그 희망고문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도 기꺼이 롯데 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팬덤의 매력에 끌린다면 LG 트윈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팀도 성적과 관계없이 관중 동원 수는 언제나 상위권인 전통의 팬덤 강국이다. 선수들의 팬 서비스도 좋고, 각종 굿즈(상품)도 예쁜 편이라 입덕했을 때 팬질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올해 출시된 마블 코믹스와 협업한 유니폼은 팬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이 팀의 강점은 유망주를 잘 뽑는다는 것인데 뽑기만 잘하는 건 문제다. 아무튼 따지고 들지 말자. LG는 사랑인 것을.

주눅 안 드는 넥센, ‘부내 나는’ SK

승패에 연연하는 것이 싫다면 언제나 주눅 들지 않는 야구를 펼치는 넥센 히어로즈로 가자.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구단으로, 창단 초기 현금 트레이드로 팀의 운영비를 마련한 탓에 팬들에게 대못을 박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각오는 팀의 재건을 이끌어냈다. 외부 영입 선수보다는 구단에서 자체 육성한 선수를 선호하고, 스스로 키워낸 팀으로 최근 3년 연속 가을 야구에까지 진출하니 져도 이겨도 모두 성장의 밑거름으로 쓰일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팀이다. 강정호에 박병호까지 메이저리그로 보냈으니 다음 진출자는 누가 될지 점쳐보는 것도 팬질의 또 다른 기쁨이다. 2014년에는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와 아시아 최초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선진 기술을 들여오는 등 개방적인 운영 방식도 흥미롭다. 대신 개방성이 지나쳐 일본 대부업체에 이름을 날릴 뻔한 아슬아슬한 경험도 있었으니 이 팀에 입덕하면 구단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 비싼 좌석에서 관람할 것을 권장한다.

반대로 뭘 해도 ‘부내 나는’ 구단을 원한다면 SK 와이번스로 넘어가보자. 구단이 직접 경기장을 운영하면서 구장을 해마다 리모델링하는데, 선수들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클럽 하우스를 수리하고, 잦은 부상을 일으키는 외야 펜스도 메모리폼 보호매트를 사용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조범현 감독의 리빌딩을 거쳐 김성근 감독 시절 우승만 3번, 그 후 이만수 감독 시절에도 준우승을 두 차례나 더 하며 2000년대의 왕좌를 차지하나 싶었지만 현재는 여름에 까먹은 점수 가을에 벌어가는 가을 야구단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여름에 야구장 옆에서 워터파크를 운영하니 SK와 함께할 거라면 여름을 워터파크에서 나며 행복한 스포테인먼트 생활을 즐기길 권한다.

이쯤 되니 세상에 응원할 팀 하나 없는 것 같다. 희망은 있다. 자유계약선수를 안 잡아도 이천(2군)에서 유망주가 뽑혀 나오고, 주전 선수가 부상이어도 백업 선수가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팀이 있다. 초구와 병살타를 병적으로 사랑해도 팀 타율 1위를 자랑하고, 가을 야구는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야 제맛이라며 탈탈 털린 체력으로 기어이 우승을 해낼 줄 아는 팀이 하나 있다. 두산 베어스로 오라. 서울의 뚝심, 근성 있는 강팀, 사이클링 히트와 노히트 노런의 축복 속에서 올 시즌 내내 1위를 누리고 있는 이곳으로.(※주의:선수들 사생활 관리에 취약함)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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