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상균 백남기, 수사 속도는 ‘하늘과 땅’

국제앰네스티 “백남기 사건 심각하게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14일 이후 두 사람의 삶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농민 백남기씨는 서울 중구 세종로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다. 경찰은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한 위원장을 구속했다. 백씨는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240여 일 동안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공권력에 의해 감옥과 병실에 갇힌 셈이다. 반면 수사기관이 한 위원장과 백씨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사건 발생 후 8개월, 한 위원장은 이미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백씨에게 물대포를 직사한 경찰에 대한 수사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를 밟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심담)는 7월4일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1차 민중총궐기를 포함해 한 위원장이 주도한 집회와 농성 총 13건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일반교통 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선고를 앞두고 노동계에서는 징역 1~2년형이나 집행유예 정도를 예상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년 징역형은 집시법 혐의자 가운데는 이례적으로 내려진 중형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지난해 12월10일 경찰에 체포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 최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상균 위원장은 집회에서 경찰 병력을 향해 직접적으로 폭력이나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집회 주최자로서 폭력 행위자와 공모 관계를 인정해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몇십 명만 모여 집회를 해도 주최 측이 참가자들을 다 통제할 수 없다. 독일을 비롯해 집회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위법행위를 적극적으로 부추기지 않는 한 주최 측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5년 징역형은 역대 민주노총 위원장들에게 선고된 형량 가운데서도 최고 형량이다. 2001년 노동법 개정에 반발해 시위를 벌인 혐의로 재판을 받은 단병호 전 위원장이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것이 가장 무거운 형량이었다.

한 위원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검찰 쪽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민중총궐기 집행부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거쳐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하겠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이를 불허(금지 통고)했다. 경찰은 “행진 구간이 집시법 시행령상 주요 도로에 해당해 교통에 불편을 줄 것이 명백하다”라는 이유를 댔다. 변호인 측은 이 금지 통고 자체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21조 2항은 “집회·시위는 허가받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제12조 1항은 대통령령이 정한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는 교통 소통을 위해 경찰이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경찰의 금지 통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한상균 위원장 판결에서는 백남기씨 사건도 거론됐다. 한 위원장의 변호인이 살수차 운용의 위법성을 제기하는 변론을 펼치는 가운데 백씨를 언급했고, 법원이 이에 대한 판단을 판결문에 밝힌 것이다. 재판부는 “살수차 운용지침에 따르면 경찰은 직사 살수를 하는 경우 시위 참가자의 가슴 이하 부분을 겨냥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위 참가자인 백남기의 머리 부분에 직사 살수하여 그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뇌진탕을 입게 하였고, 쓰러진 이후에도 그에게 계속하여 직사 살수를 한 사실, 같은 날 밤 부상을 입고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시위 참가자와 그 응급차량에까지 직사 살수한 사실이 인정된다. 경찰의 이 부분 시위 진압 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 실수에 의한 것이든 위법하다”라고 밝혔다. 물론 재판부는 “경찰의 위와 같은 일부 시위 진압 행위가 위법하다고 하여 당일 경찰의 살수차 운용에 관한 공무집행 전체가 위법하게 된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법원에서 백남기씨에 대한 직사 살수가 위법하다고 밝힌 점은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법원이 위법성을 인정한 만큼 백남기씨 사건과 관련해 책임선상에 있는 경찰들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 혹은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백도라지 페이스북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는 지난 3월20일부터 일요일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백남기씨 가족은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퇴임) 등 살수차 운용과 지휘에 책임이 있는 경찰관 7명을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해 고발인 조사를 한 차례 한 뒤, 7개월이 지난 6월에야 경찰관 4명을 처음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들 4명 가운데 신윤균 당시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장도 포함됐다. 그는 백씨가 쓰러진 서린교차로 부근에서 물대포 사용을 명령한 장본인으로 지난 1월 인사에서 영등포경찰서장으로 승진했다.

유엔 특별보고관 ‘한국 집회 진압 방식’ 비판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이 복잡하면 수사가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이건 검찰이 수사 자체를 안 하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 수사와 비교해봤을 때 형평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김후균)를 지휘하는 노승권 1차장 검사는 “외부에서 수사가 느리다 빠르다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열심히 정상적으로 수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나마 검찰 수사가 이렇게까지 진행된 것은 가족과 백남기대책위원회의 진상규명 노력 덕이다. 백남기씨의 둘째 딸 백민주화씨는 6월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했다. 백민주화씨는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폭력적인 집회 진압 행태를 고발하고 수사와 사과를 촉구했다.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해 집회의 자유 실태에 대해 조사했던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이날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차벽과 살수차를 사용하는 한국 정부의 집회 진압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큰딸 백도라지씨는 지난 3월20일부터 일요일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백도라지씨는 한상균 위원장의 선고 기일을 앞두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같은 날 발생한 사건인데도 한상균 위원장 건은 검찰이 수사를 완료하고 8년 구형을 했는데, 제 아버지 건은 고발인 조사만 한 차례 진행했을 뿐 수사를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시민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판결해주십시오. 눈물로 부탁드립니다.”

백도라지씨는 병상에 장기간 누워 있는 아버지 백씨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의료기기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뇌만 다친 상태였다. 지금은 다른 장기들도 다 나빠지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14일 같은 장소에 있었던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다른 듯 닮았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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