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었다. 평일에 보지 못한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KBS에서 〈명견만리〉라는 미래 이슈 강연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기에 무슨 주제인지 궁금해 잠시 화면에 집중했다. 공영방송 뉴스에서 기대할 것이 없으니 교양 프로그램에서라도 수신료를 보상받아보자는 심산이었다.

5분쯤 지나자 이런 내 선택이 역시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주제는 이미 올드 버전에 가까운 양적완화 필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강연자는 정부가 대우조선 사태 해결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처럼 소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는 우리 경제 회생이 어렵다며 오히려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돈을 대규모로 풀어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심리를 조성함으로써 소비가 살아나면 기업이 활성화되어 임금이 오르고 일자리가 늘어나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강연 내용은, 돈을 푸는 것만이 우리 사회를 구원해줄 유일한 수단인 양 읽혔다.

강의가 끝나자 시민 패널들의 짧지만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졌다. “이미 저금리정책으로 시중에 엄청난 돈이 풀렸으나 전셋값 폭등 등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서민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빚만 늘었다. 이러한 정책이 임금 인상이나 일자리 창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장 쓰려야 쓸 돈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소비를 늘릴 수 있느냐.” 또 다른 패널은 시민들에게 소비를 늘리라고 주문하지 말고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일자리와 임금 인상에 투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또 양적완화는 기축통화를 기초로 한 미국에서만 효과를 거둔 정책이므로 우리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은 처방이라고 일축해버리는 패널조차 있었다.

미래 이슈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전면에 내건 공영방송 프로그램에서 강연자의 주장은 시민 패널들의 동의를 전혀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온라인 게시판, 홍보 블로그를 통해서도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과 비판을 전하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강연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그림자만을 반영하고 있을 뿐 서민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소비가 늘어날 수 없는 것이다. 40~50대는 전셋값 오를 걱정, 노후 걱정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으며, 20~30대는 비정규직·인턴·아르바이트로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이다. 1%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으니 그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가 하루 열 끼를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적 순간’ 생방송 중계도 하지 않으니…

세계경제도 성장의 한계를 맞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고전적 대안으로는 풀 수 없는 과제들이 속출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이라는 파격적인 개념이 논의되고 있으며,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이자를 주는 마이너스 금리정책도 출현했다. 심지어 어떤 수단을 선택한다 해도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을 내놓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 적어도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그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이는 정책, 서민에게 부정적 여파를 몰고 올 정책을 유일한 수단으로 논의하겠다는 공영방송, 이 정도면 시한폭탄 아닌가.

공영방송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과 함께 미래를 걱정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정부·여당의 정책을 비호하고 당장의 문제를 가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정부·여당이 자신을 비판하는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단 한 가지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EBS 교육부 접수론’으로 비화된 다큐멘터리 〈민주주의〉와 관련한 국회의 겁박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의외의 결과가 나온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세계가 영국을 주목한 그 역사적 순간에도 우리의 공영방송들은 모두 생방송을 하지 않았다. 상업방송 SBS만이 고고하게 긴급 생방송을 편성했을 뿐이다. 이는 공영방송이 논의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한 우리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공론장으로 기능해야 할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가 이미 사라졌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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