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원칙적으로 스마트폰 소지를 금지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면 금지가 불가능하기에 “꼭 필요한 학생만 가지고 와서 담임교사에게 맡기”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 모두가 스마트폰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학생도 알고 교사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신들이 모르는, 학교에서 몰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법’이 서너 가지 모자란 100가지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딸이 고등학생 때, 점심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의 오후 일정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어? 너 아직 학교 안 끝났잖아, 어떻게 전화했어? 이건 누구 번호야?” “친구 거야.” “스마트폰 다 내잖아? 친구는 안 냈어?” “다 방법이 있지. 얘는 ‘꽁폰’ 냈어.” 그렇다. 학교에는 가짜폰(그러니까 실제로 사용하는 폰이 아닌 고장 난, 혹은 여분의 전화기)을 내고 유유자적 진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꽤 있는 것이다.

거꾸로 ‘공기계’라고 부르는, 통화가 안 되는 전화기를 일부러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남자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통화용보다는 게임용으로 더 유용하다. 점심시간에 이미 밥을 다 먹은 시간인데 교실 불이 꺼져 있어서 “왜 어둡게 불도 안 켜고 있니?” 하고 전등을 켜면 어둠 속에서 후다닥 흩어지는 무리들이 있다. 영락없이 ‘공기계’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것을 주변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이다.

ⓒ박해성 그림

몇 년 전 담임을 맡은 반에는 스마트폰 중독 증상이 심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침 독서 시간마다 축 늘어져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아 “어디 아픈 거니?” 하고 걱정스레 물으면 반 아이들은 “쟤 전자파 금단 증상이에요. 오후에 스마트폰을 받으면 금방 나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친구들의 놀림에 상처받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종례 시간에 스마트폰을 돌려받은 그 아이가 “아∼ 그리웠던 이 전자파 향기∼!”라고 외치면서 전화기를 뺨에 문질렀다. 반 아이들과 모두 함께 웃었다.

그 학생은 아침에 거의 매일 지각을 했다. 어머니 말로는 아침 일찍 매우 여유 있게 집을 나가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단다. 알고 보니 천천히 걸어오면서 게임을 하거나 어떤 때는 아예 벤치에 앉아 게임을 하다가 와서 지각을 하는 것이었다. 청소할 때도 한 손으로 게임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 걸레를 문지르며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으니 그 아이와 당번이 된 아이들은 늘 불만이 많았다. 그 아이뿐이랴, 아침에 스마트폰을 낼 때는 교탁까지 십리는 되는 것처럼 느릿느릿 나오고 종례 시간에는 교단 옆에 먼지가 일 정도로 전속력 질주로 달려 나오는 건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이다.

학급회의로 ‘절제’ 택한 아이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 아이들이 북적인다. 교실에서는 큐브를 하거나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아이들도 있고 대부분 공놀이를 하러 운동장에 나가 있다. 계단참에서 배드민턴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된 학교 규정 덕분에 그나마 쉬는 시간에 이런 모습이 연출되는 것 아닐까? 만약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허락된다면 이런 모습 대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일제히 교실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무서운 고요’ 속의 게임에 빠져 있지나 않을까?

내 이런 상상을 ‘선생 꼰대들의 과한 걱정’이라고 비판하는 이가 있었지만 이게 단지 기우이기만 할까 싶다. 물론 강력한 규정이나 ‘걸리면 한 달 압수’와 같은 벌칙으로 휴대전화를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자니 많은 폐해가 있고, 강제로 제출하게 하거나 벌칙을 부여하자니 학생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 아닐까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지한 학급회의를 통해 스마트폰을 학교에 맡기지 않고도 스스로 사용을 절제하도록 운용한 몇몇 학급이 있었다.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지혜로운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통제’가 아니라 ‘자제’일 것이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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