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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감옥’에서 내려온 두 아빠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던 두 노동자는 1년 전 서울시청 부근 광고판 위로 걸어 올라갔다. 긴 고공 농성 끝에 땅으로 내려온 두 가장 앞에 놓인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2016년 07월 05일 화요일 제4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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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8일 ‘하늘 감옥’에 갇혔던 두 노동자가 땅으로 내려왔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씨(46)와 한규협씨(42)가 서울시청 부근 옛 국가인권위원회 광고판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지 363일 만이다. 두 사람은 화분 두 개를 챙겼다. 검정콩(서리태) 화분과 나팔꽃 화분이었다. 지난봄 최씨의 아내가 올려 보낸 씨앗이었다. 콩과 나팔꽃은 13층 빌딩 위 광고판에서도 무럭무럭 자랐다. 최씨는 정이 많이 갔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면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바퀴벌레라도 생기는데 거기는 바퀴벌레도 없어요. 생명은 사람 둘과 얘네 둘 밖에 없는 거죠.”

최씨와 한씨는 그간 고생한 아내에게 이 화분을 선물하기로 했다. 내려가면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서로 포옹을 하고 포즈도 취하자고 했다. 그러나 1층에서 두 사람을 맞이한 건 가족이 아닌 경찰이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1년 만에 땅을 밟은 두 사람을 곧바로 체포했다. 두 사람의 죄목은 공동주거침입, 공동업무방해 혐의 등이었다.



수갑을 찬 채 응급실로 이동한 최씨와 한씨는 현재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체포영장을 집행한 경찰은 48시간 뒤 일단 풀어주었다. 곧바로 구속연장을 신청하지 않고 두 사람의 몸 상태가 회복되는 대로 수사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폭염과 혹한, 비바람과 폭설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에서 벗어날 곳이 없었던 ‘하늘 감옥’ 생활은 두 사람의 건강을 망쳐놓았다. 고혈압이 있던 한씨는 고공 농성 도중 증세가 악화돼 당뇨까지 얻었다. 최씨도 심신이 많이 약해진 상태다. 최씨는 모든 게 어색하다고 했다. “처음에 내려왔을 때는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어요. 걷는 것도 익숙해지는 데 한참 걸렸어요. 광고판 위는 항상 흔들리는데 딱딱하고 단단한 땅을 밟으니 적응이 안 됐어요.”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한규협·최정명씨(왼쪽부터)는 363일간의 고공 농성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시사IN 신선영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한규협·최정명씨(왼쪽부터)는 363일간의 고공 농성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공 농성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재판에서 승리하면서 시작됐다. 2014년 9월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기아자동차에 대해 ‘모든 생산공정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소송에 참여한 46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소송단 497명 중 소송 과정에서 신규 채용 형식으로 기아차에 고용돼 소를 각하한 28명과 근무기간을 입증하지 못해 청구가 기각된 1명을 제외하면 전원 정규직으로 인정받았다. 그날 최씨와 한씨는 승소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 헌법소원까지 간 현대차 사내하청 사례에 비춰봤을 때 싸움의 끝은 아니지만 분명 한 걸음 진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날의 승리 이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법원 판결 이후 특별교섭에 들어간 기아차 노사는 지난해 5월12일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를 특별채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만 본다면 기아차 사내하청 문제가 모두 해결된 듯했다. 실상은 달랐다. 회사가 제시한 특별 채용안에 합의한 건 정규직으로 구성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 소하지회 사내하청분회뿐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76%가 속한 나머지 두 개의 사내하청분회(경기도 화성공장, 광주공장)는 이 특별 채용안을 거부했다. 회사 측은 공고를 내고 심사를 거쳐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465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소송 참가자는 소를 취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김수억 화성지회 사내하청 분회장은 “법원은 자동차 공장에서의 합법적 도급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한 것이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특별채용 합의안에는 당시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3400여 명 가운데 일부인 465명만 포함됐다”라며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정규직 노조와 각 사내하청 노조의 의견이 갈리면서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는 ‘당사자인 사내하청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직권 조인했다’며 정규직 집행부를 규탄했다. 사내하청분회는 기아차지부를 항의 방문하고, 사내에서 긴급 집회를 열었다.

사내하청 노조가 10년 넘게 정규직화를 위해 싸워왔는데 희망의 불씨가 여기서 꺼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최정명씨와 한규협씨는 더 이상 땅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다. 최씨는 “관리자들과 몸싸움하다 병원에도 실려가고, 서울 한남동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농성도 하고 다 해봤어요. 그래도 안 되어 고공 농성을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지난해 6월11일 국가인권위 건물 광고판 위에 올라간 두 노동자. 이들은 “처음엔 무서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해 6월11일 국가인권위 건물 광고판 위에 올라간 두 노동자. 이들은 “처음엔 무서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낫·칼 들고 올라온 신원 미상의 남자 7명

2015년 6월11일 낮 12시, 등산 배낭을 멘 두 사람은 서울시청 앞에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들어섰다(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 10월 서울시 중구 저동으로 이전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 버튼을 눌렀다. 손에 든 쇼핑백에는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몽구가 책임져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들어 있었다. 무사히 광고판 위에 도달한 최씨와 한씨는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피웠다. 최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올라갔으면 일단 플래카드를 걸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무서워서 못 일어서겠더라고요. 서로 ‘야 다시 앉아, 앉아’ 이랬다니까.” 그때만 해도 하늘 감옥살이가 1년이나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을 택한 건 회사 측이나 공권력이 농성을 방해할 때 보호막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고공 농성자들의 인권에는 무심했다. 지난해 가을, 신원 미상의 남자 7명이 쳐들어와 광고판 전면에 걸린 현수막을 찢었다. 그들의 손에는 낫과 칼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소변통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날따라 CCTV는 모두 점검 중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들이 도망가고 난 뒤에야 도착했다. 경찰은 광고판 소유 업체 직원으로 파악했지만, 두 사람은 철거 전문 용역으로 보였다고 했다.

광고판 소유 업체는 음식물 반입을 막고 나섰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라는 가족들의 호소에 업체는 “죽어서 내려오면 된다”라고 대꾸했다. 한씨는 그때를 가장 힘든 시기로 떠올렸다. “아내가 밥을 가지고 올라오려고 하는 와중에 광고 업체 사장이 아내를 밀쳐서 바닥에 쓰러졌어요. 나중에 영상으로 보는데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농성이 계속되면서 밥을 먹기 위해 하루 세끼 밧줄을 잡아당기는 것도 힘에 부쳐 식사 횟수를 두 번으로 줄였다. 어차피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고공 생활에 익숙해진다는 건 또 다른 공포였다. 최씨의 말이다. “저 위에 있으면 처음에는 무섭다가도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아져요. 한 발 앞으로 탁 나가서 뒷발 들어버리면 그냥 죽는 거잖아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 쉬워지는 거예요. 정신 차려보면 굉장히 섬뜩하죠.”

고공 농성이 일상적인 풍경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도 이들을 암담하게 했다. 최씨는 “저희는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참 힘든데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이 상황이 익숙해지니까. 감정의 차이가 자꾸 벌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모진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서로에게서 나왔다. 최씨와 한씨는 “오래 고립되면 둘의 관계가 깨질 수 있다. 웃으면서 어깨 걸고 내려가면 성공한 거다. 절대 죽지 말고 살아서 내려가자”라고 다짐했다. 두 사람은 일부러 실없는 농담을 하고, 말도 안 되는 토론을 하며 지난한 시간을 채워나갔다. 머리도 서로 깎아줬다. 최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밑에서 충전한 바리캉을 올려줘요. 그러면 비닐봉지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씌워놓고 머리를 깎아주는 거죠. 두 사람 머리를 깎기에는 충전 용량이 부족해서 늘 어딘가 어색하죠. 그럴 때 기자들이 사진 찍으러 오면 잘 깎인 쪽이 나오도록 서 있었어요.”

두 노동자는 하늘에서 고립되었지만 땅에서는 응원을 받았다. 둘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상징이 되었다. 두 사람이 고공 농성을 하는 동안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은 집회 후 서울시내 행진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지난 6월8일, 경찰이 두 노동자를 구급차에 실어 연행하자 동료들이 거리에 누워 막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 6월8일, 경찰이 두 노동자를 구급차에 실어 연행하자 동료들이 거리에 누워 막고 있다.

정규직 다치면 생산라인 멈추지만, 비정규직은…

최씨와 한씨는 10년 전 기아차 사내하청 업체에 입사했다. 최씨는 자동차 조립 공정에서 일하며 K3, 쏘렌토, 모하비를 생산했다. 한씨는 도장 공장에서 K7, K5 등을 만들었다. 한씨는 사내하청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라면서 말을 꺼냈다. 그는 “비정규직은 3000만~4000만원 받고 정규직은 1억원 받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요. 민주주의 사회인데도 계급제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정규직이 다치면 생산라인이 멈추지만, 우리가 다치면 계속 돌아가요. 이게 정상인가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결국 ‘웃으면서 내려가자’는 약속만을 지킨 채 고공 농성을 끝냈다. 건강이 심하게 악화돼 의료진이 중단을 권고했다. 특히 한씨는 고공 농성 중에 당뇨가 생겼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혈압 약으로 버텼다. 조합원들도 이제는 땅 밑에서 함께 싸우자고 설득했다. 기아차 노사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두고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특별교섭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선출된 기아차지부 노조 집행부는 기존 노사합의안(465명 특별채용)과 무관하게 재협상에 돌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고공 농성 이후 시작된 특별교섭에서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기아차 홍보팀 관계자는 “1심 판결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대법원 판결까지 가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고공 농성 도중 사내하청 업체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광고판 소유 업체가 최씨와 한씨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해 5억6000여 만원을 물어줘야 할 처지이기도 하다. 최씨는 내려온 이후가 더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고공 농성으로 363일을 견뎠는데 목적한 바를 얻지 못했어요. 밤에 자려고 하면 열불이 나요. 울화병인데 이게 통제가 잘 안 돼요. 몸의 병은 금방 회복될 것 같은데, 마음의 병은 좀 오래갈 것 같아요.”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는 특별협상 테이블에서 최씨와 한씨의 복직을 요구할 계획이다.

둘은 1년 만에 가족을 만났다. 못 본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 있었다. ‘아빠가 지구를 떠났다’고 심통을 부리던 한씨의 여섯 살배기 딸은 아빠 옆에 누워 얼굴을 만졌다. 최씨는 고공 농성 중에 아들과 한 약속을 제일 먼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최씨는 “내려오면 캠핑을 가기로 했어요. 고기도 구워먹고, 낚시도 하고, 밤에 같이 귀뚜라미 소리도 듣고”라고 말했다. 고공 농성 1년.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두 아빠의 ‘땅 위에서의 일상’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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