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4일 이주여성 활동단체 전국네트워크 등에서 주최한 공청회에서 발표하는 이민씨(맨 왼쪽).
경남 양산시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민씨(32)는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이주여성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이씨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1997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지난 7월24일 이주여성 활동단체 전국네트워크 등이 주최한 ‘법무부의 사회통합 이수제를 다시 묻다’라는 공청회에서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출입국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위장 결혼을 막는다며 까다롭게 운영되는 체류 제도 때문에 결혼이민 여성이 당하는 고통을 지적했다.

선의의 결혼이민자 인권침해 당해

이민씨가 상담한 이주여성은 대부분 체류 문제로 인해 힘겹게 살아간다. 그들은 부부 갈등, 고부 갈등 문제로도 힘들어하지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적법 및 출입국관리소 업무 지침에 따르면, 결혼이민자는 입국 후 2년 동안 해마다 비자(F2) 연장을 받아야 한다. 그 후에는 이주체류 자격(F5) 또는 국적 신청을 통해 귀화 허가를 얻을 수 있다.
체류를 연장하거나 국적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배우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배우자가 신원보증을 철회하기라도 하면 국제결혼 이민자는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규제는 위장 결혼이나 사기 결혼을 막기 위해 취해진 조처이지만, 그로 인해 선의의 결혼이민자가 겪는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그가 상담하는 결혼이민자들이 맨 먼저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남편하고 이혼하면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요?” 남편의 학대가 오죽 심했으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사는 여성이 이혼까지 고려할까. 남편의 잦은 외도에 시달리던 몽골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1년6개월간 사는 동안 남편은 늘 외도를 저지르면서도 나를 멸시했다. 외도 사실을 숨기려고 내 처지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등 계속 학대를 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밝히면 나를 몽골로 돌려보낼까봐 정신적 고통만 당하고 있다. 두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이씨는 이러한 인권침해를 막고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하려면 결혼 뒤 즉시 영주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장 결혼을 가려내기 위해서라면 먼저 영주권을 준 뒤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해 위장 결혼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국적 대신 ‘영주권 부여’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이씨가 결혼할 때는 한국에 오자마자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결혼 후에도 국적을 얻기 위해 2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이주여성으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결혼 당시 20여 년 동안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와 조국을 포기해야 하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이민씨는 이주여성이 원하는 것은 한국 국적이 아니라 안정적인 체류 자격이라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으로서는 국적을 취득하는 것보다 영주권을 보유하는 것이 편리할 때가 많다. 일단 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얻으면 모국에 갈 때도 외국인 신분으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 역시 자녀들과 함께 중국에 사는 부모를 만나러 갈 때 비자를 받는다. 게다가 이주여성은 남편이 자기 모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남편 사업을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현지 친척의 이름을 빌리는 일이 잦다. 한국을 사랑하고, 이 땅에 살기 원하는 결혼이민자에게 고통과 불편만 안겨주는 국적법이 하루바삐 바뀌기를 바란다.

기자명 최정의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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