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하 인턴 기자파업은 김혜원씨(위)의 성격을 크게 바꿔놓았다. 말수 없던 그녀가 ‘쌈닭’이 됐다.
이랜드 일반노조 김혜원씨(가명·38세)

“너 이러다가 폐인 되겠다.” 남편이 문득 건넨 이 말이 김씨는 자꾸 마음에 걸린다. 자주 짜증을 내고 과격하게 이야기하는 자신을 보며 남편조차 인내심이 다하는 듯하다. 김씨가 이랜드 파업에 참가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그 시간만큼 그녀의 정신적 스트레스도 늘었다.
파업 전 김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오랜 파업은 말수가 없던 그를 과격한 ‘쌈닭’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파업 이후 매사 참을성이 없어졌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자꾸 다른 곳에다 돌리려 한다”라고 토로한다. “제일 미안한 건 아이들이에요. 애들이 아직 어리지만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아요. 가끔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심한 말을 할 때는 나조차도 깜짝깜짝 놀라요. 내가 아이들 정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미안해요.”  
경제적 부담도 크다. 김씨는 1년이 넘도록 노조에서 지급하는 월 25만원의 생계비로 버틴다. 차비와 식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녀는 “25만원을 손에 쥐고 나면… ‘내가 일당 1만원짜리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부담감은 김씨의 성격을 크게 바꿔놓았다. 언제부터인가 김씨는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혼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싫은’ 이유를 먼저 찾아내는 자기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고. 결국 그러다가 가장 싫은 사람은 나 자신이 돼요. ‘나는 뭐지? 1년 동안 뭘 한 거지?’ 하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요. 여덟 살짜리 딸아이가 ‘엄마, 엄마 이제 안 웃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꼈어요.”
파업 이후 김씨는 술이 늘었다. 술로 기분을 달래려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몸살로 며칠씩 끙끙 앓기도 했다. 1년 동안 뭘 했나 하는 ‘허탈감’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으로 김씨의 마음은 서서히 잿빛으로 변해간다.



ⓒ변태섭 인턴 기자최정민씨(위)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바뀌는 조울증을 앓는다. 성격도 급해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코스콤 비정규지부 최정민씨(가명·30세)

최정민씨는 요즘 조울증을 앓고 있다. 올해 2월부터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나빠지는 횟수가 늘었다. 성격이 급해졌다는 소리를 듣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긴 일의 진행 상황을 일일이 신경 쓴다. 남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일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 때문이다. “특별히 신경 쓰는 일이 없는데도 두통을 달고 다닐 만큼 매사에 초조하고 불안하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동료와의 갈등을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다.

“파업 초기에는 ‘차라리 직장을 옮기지, 회사에 복귀하지는 말자’라고 할 정도로 다짐이 굳었어요. 하지만 한두 명씩 복귀를 하고 파업이 길어질수록 서로 오해가 생겼습니다. 무기력해진 일부 조합원은 회사 측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의기소침해지고, 죽이 맞는 다른 조합원과 함께 ‘패배주의’를 확산시켰어요. 그럴수록 조합원  사이의 골은 깊어갔죠. 외부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요.”

정신적 스트레스는 육체적 고통을 수반했다. 경찰과의 잦은 몸싸움과 20여 일이 넘는 단식 투쟁으로 인해 이미 그녀의 체력은 바닥난 상태다. 거리의 잠자리는 허리 통증을 일으켰다. 끼니를 김밥으로 대충 때우다 보니 영양 상태도 최악이다. 최씨는 “성명서 하나만 써도 녹초가 될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하거나 헛배가 불러 더부룩하다. 고공 시위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앓는 위장 장애나 장염은 대표적인 신경 질환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한번 신발끈을 동여맨다. 장기 파업이 동일 노동·동일 임금이라는 ‘상식의 선’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이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가 사실상 정규직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어차피 다른 직장에 가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파업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깨달았기 때문이죠. 차라리 이곳을 바꾸는 게 우리와 다른 비정규 노동자에게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여기서 그만둘 수 없는 까닭입니다.”



ⓒ김소라 인턴 기자한선영씨(오른쪽)는 파업 투쟁 중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임신 중에 조합원들과 장기 합숙을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두 번이나 유산한 탓이다.
KTX 승무원 한선영씨(가명·27세)

KTX 승무원 한선영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한씨는 또래 젊은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자기 계발을 할 시기에 2년 넘도록 기약 없는 투쟁을 벌였다. 앞날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파업 중 결혼한 그녀는 “기혼에다 나이도 적지 않고, 파업 전력까지 있는 내가 파업을 그만두고 취업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이라도 낳으면 어떻게 키울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놓았다.

한씨는 파업 투쟁 중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임신 중에 장기 합숙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돼 두 번이나 유산한 탓이다. 이때의 충격으로 그는 한동안 투쟁을 중단하고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대인기피증이 심각했어요. 부엌에 물을 마시러 가다가도 이웃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방으로 들어와 숨곤 했어요.”

지금은 눈에 띄게 우울증이 호전된 상태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그녀를 괴롭힌다. 아스팔트 바닥에 차린 농성장에서 잠을 청하려니 불면증이 심해졌다. 한약을 먹고 병원 치료도 받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냉혹한 사회 현실을 깨달은 뒤 낙천적이었던 성격도 변했다. “뉴스를 볼 때도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이 전부 진실일까 하는 의문부터 품어요. 어떤 일을 접하더라도 그 이면에 숨은 것을 찾는 등 매사 비판적인 성격이 되어버렸어요.”

KTX 승무지부의 투쟁은 애초 400여 명이 함께했지만 현재는 38명만이 남았다. 기나긴 투쟁에 지친 조합원은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났거나, 비정규직을 받아들인 채 외주회사인 KTX관광레저로 복귀한 상태다. 공무원인 남편을 둔 한씨는 남편의 수입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투쟁 현장을 떠날 생각이 없다. “우리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투쟁이 승리해야 다른 사업장에도 힘을 보탤 수 있지 않겠어요?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도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요.”

기자명 김소라 변태섭.송은하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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