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중순, 민주노총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불법파견 근로자의 직접고용 간주 조항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대법원으로부터 공개변론을 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공동 대리인으로 공개변론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대법원 공개변론에 참여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원고들은 2000년 4월3일부터 2002년 4월2일까지 A파견회사 소속이었다. 비서, 타자원 파견 계약에 따라 피고보조참가인 회사에 파견되었다. 실제로는 고객지원팀에서 근무하며 상시파견 허용업무 이외의 업무에 종사했다. 2002년 4월3일부터 2003년 11월30일까지 참가인 회사가 B회사와 업무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원고들은 그대로 근무했다. 2003년 12월1일부터 2005년 11월30일까지는 B회사의 도산으로 참가인 회사가 원고들과 계약직 근로계약을 맺고 1회 갱신했다. 참가인 회사는 2005년 11월30일 기간 만료를 이유로 원고들을 해고했다. 원고들이 참가인 회사를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참가인 회사가 피고보조참가인으로 참가했다. 원고들은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모두 패소해, 이를 대법원에 상고했다.

ⓒ시사IN 신선영2014년 2월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을 앞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판단하지 않고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는 의미다. 대법원 재판은 보통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판결한다. 하지만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거나,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결을 해 대법원이 입장을 통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거나, 소부에 속한 대법관 4명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는 대법관 전원(법원행정처장 제외)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에서 판결한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소수 의견도 밝힐 수 있다.

당시 주심이 노동법에 정통한 김지형 대법관이어서 일단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대리인단은 처음부터 진행해온 민주노총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 나와 강기탁 변호사, 행정법원 부장판사를 사직하고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법무법인 화우의 박상훈 변호사 그리고 김진 변호사 5명으로 구성했다. 당시 우리 대리인단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노동 사건의 ‘드림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근로계약의 원칙은 사용자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고 사용하는 직접고용이다. 그런데 근로자를 지휘·감독하고 사용하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간접고용이라 한다. 간접고용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가 노동법상의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아 노동법상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된다. ‘사용’ 또는 ‘이익’과 ‘책임’이 분리되어 사용사업주는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이익만 누리는 부정의한 결과를 낳는다.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는 중간에서 근로자를 제공한 데 대한 수수료를 챙기게 되어 중간착취의 위험도 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취업 과정에서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고, 직업안정법과 ‘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파견법)’은 근로자 공급과 파견을 엄격하게 제한해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파견 기간도 최대 2년으로 제한하고,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업체만이 근로자 파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구 파견법(2006. 12. 21. 법률 제806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 제3항은 2년을 초과하여 파견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사업주가 파견 근로자를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했다.

ⓒ연합뉴스2008년 6월19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근로관계 사건 공개변론이 열렸다. 기존 판례를 바꾸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리는 경 우 공개변론을 연다.

예상 깬 대법관 전원일치 판결

이 사건의 핵심적 쟁점은 파견법 제6조 제3항을 합법파견 근로자에게만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불법파견 근로자에게도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하급심 판례가 엇갈리고, 당시까지 명시적인 대법원 판례도 없어서 노동 현장에서 혼선을 빚었다.

합법파견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고 불법파견 근로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면, 법을 준수하고 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사업주의 경우에는 2년이 초과되면 직접고용의 책임을 지지만, 법을 무시하고 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사업주는 그러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매우 부정의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분명한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고 공개변론까지 열게 된 것이다.

공개변론 기일은 6월19일로 결정됐다. 우리 원고 측 대리인들은 기록과 쟁점을 검토하고 공개변론 당일의 역할 분담 등을 정했다. 우리의 전략은 직접 간주 조항을 합법파견에만 적용하고 불법파견에는 적용하지 않게 되면, 합법파견 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보다 불법파견 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를 보호하는 결과가 되어 정의에 반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법원이 불법을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공개변론 기일의 모두발언은 박상훈 변호사가 하고, 의견서 작성은 권두섭 변호사가 책임지고 완성하며, 대법관의 예상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김진 변호사가 작성하고, 상대방 참고인에 대한 반대신문 사항은 강기탁 변호사가 맡았다. 나는 최후진술을 하기로 했다.

6월19일 오후 4시부터 공개변론이 진행되었다. 대법관 13명이 법대 위에 앉고, 단하 안쪽에 법원 직원과 속기사 좌석이 있고, 법대를 마주보고 양 대리인의 좌석(각 5인석)이 있으며, 그 옆에 각 연단과 증인석이 있다. 칸막이 너머로 방청석이 있다. 모두발언과 최후진술은 연단에 서서 하고, 질의 때는 좌석에서 일어나서 답변했다.

박상훈 변호사가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모두진술을 하고, 나는 준비한 내용을 읽으며 최후진술을 했다. 나는 가장 먼저 법원이 불법을 조장하는 법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법부의 역할이 다수자의 처지를 대변하기보다 소수자 인권 보장에 주안점이 두어져야 하며, 입법의 공백이나 흠결이 있으면 법원이 적극적으로 법해석을 통해 이를 보충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법원은 정부처럼 정책적 판단에 치중하기보다는 무엇이 법원칙이고 정의인가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이 있고 6개월 뒤 2008년 12월 판결을 선고했다. 우리의 주장을 받아주어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소수 의견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원일치 판결이었다. 주심인 김지형 대법관이 다른 대법관들을 설득했나, 아니면 우리의 전략이 먹혀들었나? 근로자 보호에는 소극적인 대법관도 합법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사용자보다 불법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사용자를 더 보호하는 결과를 용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들을 정리했고, 또한 근로자 보호를 위한 대법원 판례 정립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뒤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하고 현대자동차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들의 밑받침이 되었다.

기자명 김선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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