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이런저런 병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겁은 또 왜 그렇게 많았는지. 덕분에 병원 가는 일은 거의 전쟁이었다. 달래기도 했다가 어르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매를 들고, 이내 장난감을 사줘가며 한사코 안 가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한 어머니의 기술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그때는 장난감도 참 많이 모았는데. 돌이켜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물론 지금은 몸도 마음도 튼튼해졌고, 간혹 병원에 갈 일이 생겨도 꼬박꼬박 알아서 잘 간다. 주사기 따위 겁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딱 한 군데, 결국 목돈이 들어갈 줄 뻔히 알면서 여전히 가기가 꺼려지는 곳이 있다. 치과다. 왕창 썩은 이를 치료하느라 거금 200만원을 날린 게 겨우 2년 전. 병원 직원과 “현금으로 계산하면 깎아준다” “얼마나 깎아줄 거냐”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이를 잘 닦겠다고. 하나 당시의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또 병을 키우는 중이다. 이번에는 적금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 아아 죽고 싶다. 아파서 죽고 싶고, 비용 때문에 죽고 싶다. 대체 누가 그랬던 거냐, 이가 생명과 관계없다고.

7월29일 방영된 〈PD수첩〉은 그래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이날 ‘치과 치료비, 환자들이 뿔났다’(사진) 편에서는, 같은 질환에 대해 (한 명의 환자가 여러 군데 치과를 돌며 견적을 받는 방식으로 확인) 200만원씩이나 차이가 나는 치과 진료비의 실태를 진단하고, 어쩔 수 없이 병을 키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 특히 잇몸으로 음식을 씹을 수밖에 없는 노인의 모습을 조명했다. 치아는 생명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힘들다거나, 의사이기 이전에 경영자일 수밖에 없다는 어느 의사의 인터뷰도 방송됐다.

성인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치주질환을 앓지만 건강보험의 혜택은 다른 질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듯, 포털 사이트에는 순식간에 10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붙었다. 〈PD수첩〉 게시판 역시 시끌벅적하다. 반응은 극단을 달렸다. 공감하는 쪽에서는 대부분, 꿋꿋하게 ‘서민’의 견해를 대변하는 〈PD수첩〉을 응원하며 치아 때문에 겪었던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50원어치의 구두약으로 구두를 닦고 5000원을 받는다고 해서 폭리를 취한다고 할 수는 없듯이’ 단순히 재료비만을 기준으로 치과 치료 전체를 획일화하면 곤란하다. 즉 과장 보도가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쇠고기 보도’까지 문제 삼으며 프로그램의 존폐를 운운하는 댓글도 상당했다. 여튼, ‘서민’의 시각과 ‘의사’의 시각이 무척 다르다는 것과 더불어, 그날 방송은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견디다 못해 곧 치과에 갈 계획인 분들, 치료비를 아끼려면 최대한 여러 군데 치과에 발품을 팔아 견적을 받고 결정하시라. 잘하면 몇 백 만원을 아낄 수도 있으니.

기자명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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