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포스터를 모은 책자를 뒤적거리다 1970년에 제작된 〈여보〉에서 멈췄다. 원제는 ‘두 여보’. 심의 때문에 제목을 수정한 포스터에는 곤란한 표정의 여배우 얼굴이 절반을 차지하고, 두 남자가 양쪽에서 여자의 팔을 당기고 있었다.

삼각관계일까? 원제에 흥미가 생겨 줄거리를 찾아봤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평온은 깨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춘실은 결국 만삭의 몸으로 자결한다.’ 이처럼 여성이 자살하거나 살해되고 강간당하는 숱한 창작물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구태의연한 클리셰 범벅인 한국 드라마가 이해되었다. 드라마의 주요 설정이 어쩌면 여성 수용자가 겪는 사랑의 갈등을 안전하게 향유할 장치로 개발된 건 아닐까? 남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열쇠가 여자에게 있다거나, 여성 주인공에게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의 광기와 파괴 욕구에서 여성의 안전을 약속하는 계약의 담보물이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주인공은 이를 통제하며 여성 시청자는 안전한 자리에서 동조한다. 현실이라면 공포와 모욕뿐일 갈등 상황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물리력 차이, 사회적인 위치를 보정하던 설정들은 극 안에서 한정적이며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좋은 드라마들은 언제나 이 한계를 인지하고 이전의 낡은 설정과 규칙을 파괴하거나 비틀어왔다. 최근작들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억압과 차별을 은폐하는 설정들에 대해 여성 캐릭터의 시점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이다. 이전에는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성차별적 언행을 하는 남성 캐릭터를 성격 탓으로 넘기곤 했다. 여기에 화를 내는 여성을 유난스러운 성격으로 그리는 건 덤이다.

ⓒtvN 제공tvN 드라마 <또! 오해영>(위)은 기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익숙한 설정을 반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MBC 〈킬미 힐미〉, JTBC 〈욱씨남정기〉, tvN 〈피리 부는 사나이〉 〈또! 오해영〉에서는 이에 대해 “성희롱입니다”라고 지적하거나 성차별적 상황임을 분명하게 주지시키는 에피소드가 있다. 현실의 드라마 시청자들이 느끼는 불쾌와 위협을 반영한 것이다.

‘손목 잡아끌기’ 같은 흔한 장면을 보자. 상대의 동의 없이 완력으로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상황이다. 이 로맨스의 단골 설정은 ‘너를 보호하려고’를 이유로 들고, ‘나도 모르게’ 잡았다가 특별한 감정을 각성하는 계기로 포장되었다. 이것이 문제인 까닭은 여성도 위 맥락을 납득하고 즐긴다는 전제 때문이다.

현재의 여성과 그들이 공감하는 새로운 여성 주인공에 맞춰 규칙은 새로 조정되어야 한다. 지금의 여성 시청자는 사랑의 갈등에 한정해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다. 자기 선택에 집중하고 전과는 다른 자리에 도달하는 성장 서사에 공감한다. 로맨스 드라마는 보상처럼 주어지던 해피엔딩조차 열린 결말로 대체하면서 조금씩 변화해왔다. 이제 ‘손목 잡아끌기’는 나를 배제하는 불쾌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신체 접촉만 주의하는 안전한 ‘신사’가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있었다. KBS 2TV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송중기)는 자신을 깡패로 오해해 신고하려는 의사 강모연(송혜교)을 제지하기 위해 그녀의 손목을 잡는 대신, 얼굴 가까이에 있는 핸드폰만 툭 쳐올려 빙그르르 낙하하는 전화기를 잡아챘다. 몸에만 손을 안 댄 결과가 이렇다. 그런가 하면 손목을 잡아끄는 행동이 받아들여지던 맥락 자체를 지적하는 드라마도 나타났다. 현재 방영 중인 〈또! 오해영〉이 그렇다.

ⓒKBS 제공KBS2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신체 접촉’만 주의하다 보니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날 그따위로 갖다 쓰지 마”

결혼식 전날 남자에게 모진 말을 듣고 파혼한 오해영(서현진)은 부모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원룸으로 이사한다. 창고를 개조한 원룸은 남자 주인공 박도경(에릭)의 거처와 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고, 둘은 이 문을 왕래하며 감정을 진전시킨다.

유독 이상한 점 하나를 먼저 짚고 가자. 1인 가구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에서 해영은 기묘할 정도로 자유롭다. 수상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에서 해영의 뒤를 바짝 따라붙거나 음식 배달원이 혼자 사느냐고 집요하게 캐물어도 해영은 상황을 깨닫지 못하거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 위험을 예민하게 신경 쓰는 이들은 그녀의 부모와 옆방 남자 도경이다. 몰래 딸의 집을 보러 온 부모가 방범창이 튼튼한지 흔들어봤다가 떨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해영은 방범창이 떨어진 자리를 보고 말한다. “야 이 거지 같은 자식들아! 벼룩의 간을 내먹지.” 집에 누군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 고철 도둑에게 화내는 상황은 분명 이상하다.

여성의 위험에 가족과 남자가 개입하는 상황은 여타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이지만 해영은 이 보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해영이 혼자 사는 것을 확인한 배달원이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를 엿듣던 박도경은 쪽문을 박차고 날아 들어와서 남편 행세를 하고 자기 구두를 해영의 현관에 놓아둔다. 이때 서현진의 연기는 팔짱을 끼고 뭔가 신기한 것을 본다는 표정이다. “연기 대상 줘야겠어요.” 이 장면은 나를 지켜줬기 때문에 연애 감정이 생긴다거나,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 써주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익숙한 설정에서 벗어난다. “겁 없이 함부로 감동 주고 지랄이네. 어쩔라고?”라고 중얼거리는 해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고받는 관심과 마음이다. 또한 해영은 성욕을 숨기지 않기 때문에 정신적인 사랑만 강조하는 드라마의 흐름에서도 벗어나 있다.

다시 도경이 해영의 손목을 낚아채는 장면으로 돌아가자. 해영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결혼식 당일 사라졌던 연인, 동명이인의 오해영(전혜빈)과 재회한 박도경은 해영(서현진)의 손목을 잡아끌어 차에 태운 후 격하게 화를 내며 차 유리를 주먹으로 친다. 부탁한 바 없는 보호를 자청했던 남자가 누구보다 위협적인 남자로 돌변하는 상황. 명백하게 폭력적인 이 행동은 기존 드라마에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 남자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여성 캐릭터가 무거운 침묵에 동조하는 식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해영은 침묵을 깨고 도경을 비난한다. 나를 너의 연애사의 소모품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해영의 지적은 그가 이성을 잃은 이유를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날 그따위로 갖다 쓰지 마. 엄청 미안한 거야 그거. 엄청 유치한 거야 그거.” 유사한 상황을 답습하던 드라마를 향한 외침처럼 들린다.

〈또! 오해영〉은 결혼에서 좌절한 여성이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다 ‘새로운 보호자’를 찾는 내용으로 기울 수 있는 이야기였다. 2회 연장 발표 후 8·9회는 눈에 띄게 흐트러진 탓에, 이 드라마를 전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불완전하고 기묘한 드라마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격변하는 시기의 흥미로운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기자명 유선주 (TV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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