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만날 미래〉라는 책을 쓴 인연으로 오늘 강의에 선 듯하다. 이 책은 본래 친구 아내들 읽으라고 쓴 것이다(웃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게 2007년인데, 그 뒤로도 아내와 나 사이에는 교육 문제로 인한 갈등이 거의 없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기에, 현행 교육으로는 아이의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들, 특히 남자들은 좀 달랐다. 뭔가 엄청나게 바뀔 것이라는 예감은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집에서는 입을 닫는다고 했다. 아내한테 얘기해봤자 “당신이 교육에 대해 뭘 알아?” 하는 잔소리만 듣는다는 것이다. 그 얘길 듣고 책에 쓰인 말이라면 귀를 좀 기울이지 않을까 싶었다(웃음).

그렇다면 내 아이가 만날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일단은 가까운 미래, 그러니까 2020~ 2030년이 중요할 것이다. 미래 대비는 교육의 본질적 기능 중 하나다. 미래에 대비하지 않으려면 굳이 교육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그런데 교육의 또 다른 특질이 뿌리 깊은 보수성이다. 지금 교육체제는 엄마 아빠 세대가 살던 20~30년 전 방식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차이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18세기 이전 중요한 학문은 정치학·수사학 등이었다. 영주나 자영농을 지켜주는 대가로 왕이 세금을 거둬들이던 시대였던 만큼 소수 상층부를 중심으로 정치를 공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산업시대가 도래하면서 국·영·수 같은 언어·수학 관련 학문이 중요해진다. 인구의 40~45%가 제조업에 종사하게 된 만큼 작업 지시서를 읽고 작업 수량을 파악할 줄 아는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처럼 늘 사회 변화의 후행 지표로 따라간다. 사회가 요구하니까 학교가 따라가는 것일 뿐 교육이 먼저 바뀌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부모들이 미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시사IN 이명익

그렇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아시다시피 첫 번째는 인구구조의 변화다. 다른 한 가지는 기술의 변화다. 기술 발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일본의 조사를 보면, 자동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30대에 비해 20대는 절반밖에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 20대는 운전면허도 따지 않는 추세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이 상품을 소유하려는 데는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의식주처럼 이것 없이는 생활을 영위하기가 곤란해서다. 둘째는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 번째 접근권이다.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망치를 집집마다 구입하는 것은 대부분 번거로워서다. 망치를 빌리려면 어느 집에 망치가 있는지 알아보고(검색 비용), 빌린 망치를 되돌려줄 때면 하다못해 요구르트라도 사례로 들고 가야 한다(거래 비용). 이렇게 접근이 어렵다 보니 소유하려 드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아파트 각 층에 공구함이 있다면 이럴 필요가 없게 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이 누군가 망치를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는 경우인데, 공구에 위치식별 장치가 부착돼 있다면 이런 문제도 사라진다. 곧 인터넷과 IT 기술이 거래 비용과 검색 비용을 0에 가깝게 떨어뜨리면서 공유경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소유의 네 번째 이유는 남들한테 자랑하려는 것인데, 공유경제가 확산되면 이런 욕구도 감퇴한다. 기껏 값비싼 스포츠카를 샀는데 주변에서 “넌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도 없냐?” “우버 택시 타면 훨씬 싼데 돈을 왜 그렇게 허투루 써?” 하면 김이 팍 샐 것이다. 이런 게 소유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

미래가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대해서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통해 예감하셨을 테니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컴퓨터에 응용한 인공지능 신경망은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인간보다 학습을 더 잘 수행하게 돼 있다. 한 예로 구글과 페이스북의 얼굴 인식 능력은 이미 인간의 능력치를 크게 넘어섰다. 로봇 또한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면서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래와 관련해 또 하나 알아둘 것은 새로운 영역에 진입할 때 위험비용이 크게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일단 많은 정보가 오픈소스로 풀리면서 과거에는 대기업에서나 만들던 하드웨어를 대학에서도 만들 수 있게 됐다. 3D 프린터 등의 상용화로 이 같은 오픈소스 하드웨어 운동에는 더 가속이 붙고 있다. 펀딩 구조도 바뀌었다. 그간 신생 기업(스타트업)이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은 세 가지. 돈 많은 아버지한테 얻거나, 은행에서 빌리거나,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개발자들이 이를 통해 사업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진입 비용이 낮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 다국적 기업이 수천, 수만 개 생겨나는 중이다. 세계 곳곳에 지사를 세우고 수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형태로 운영됐던 20세기 다국적 기업과는 다르다. 내 아들만 해도 캐나다·독일에 있는 친구들과 뭔가를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리곤 한다. 수많은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초전문가 시대도 함께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미래가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첫째, 통섭형 인재를 꼽는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더라도 인공지능은 그저 문제를 풀 뿐이다. 뭔가 문제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넓게 이해하고 이를 엮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아 시너지를 발휘하는 협업형 인재다. 셋째, 사람과 사람,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네트워크형 인재다.

이는 흥미로운 패러독스(역설)다. 현재 기술 발전은 이공계적 요소가 매우 강하다. 그런데 이에 대비하라고 요구받는 요소들은 오히려 과거부터 얘기하던 인간의 덕목과 비슷해져버렸다. 기계와 인공지능 수요가 증가할수록 제기되는 질문 또한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이냐’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들이다. 그런 만큼 인간 자체를 고민하는 노력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사실 내가 인공지능 시대를 강의하면 뭔가 똑 부러진 정답을 내주기를 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답은 없다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웃음). 다만 한 가지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화에 적응하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아이에게 키워주시는 것이다. 조디 피코의 공식에 따르면 ‘행복=현실÷기대’다. 그러니 행복도를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현실을 높이거나, 기대를 낮추거나. 어느 쪽이 쉬울까. 당연히 후자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 호연지기다. 쓸데없이 큰 꿈을 꿀 일이 아니다. 그보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게나마 일일목표(daily goal)를 잡고 매일같이 뭔가를 실행하는 근성이 있는 친구들은 뭐라도 해낸다.

이 같은 행복공식으로 세대 차이를 해석하는 분들도 있다. 현재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만큼 기대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이에 비해 현실은 늘 기대치보다 좋았다. 급속한 성장의 시대를 살다 은퇴했다. 그러다 보니 이분들이 늘 ‘박정희 시대가 좋았는데’ 타령을 하곤 하는데, 너무 탓하지 마시라.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공통으로 관찰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풍요한 환경에서 태어난 요즘 아이들은 처음부터 기대 수준이 높은 편인데, 정작 현실은 이를 충족해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우울·실망·슬픔 따위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먼저 기대치를 낮추는 훈련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시사IN 신선영지난 3월 알파고와 이세돌(왼쪽)의 대국은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에 대해 보여줬다.

언젠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초청하면서 비즈니스석 비행기 표를 보내온 일이 있다. 내 돈으로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사기는 힘든 만큼 기대를 잔뜩 하고 공항에 갔다. 그랬더니 비즈니스석이 다 찼다고 퍼스트클래스석을 주는 것이었다. 거길 타보니 별천지였다. 스튜어디스로부터 일대일로 호화 서비스를 받으며 여행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애초 정해졌던 대로 비즈니스석을 타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토록 기대했던 비즈니스석이 별 볼 일 없이 느껴졌다.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깨달았다. 그 뒤로는 평소 검소하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야 어쩌다 기대치 이상의 것이 주어졌을 때 이게 얼마나 좋은지 알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늘 두 아이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 하나는 물려받을 유산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희가 굉장히 못살 수 있으며 따라서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옛말이다. 앞으로 세상은 노동이 없이도 굴러간다. 어쩌면 가짜 노동을 해야 할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기본소득제 등 이런 미래에 대비할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할 텐데, 한국은 아직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형편이다. 답답하고 알 수 없는 미래지만 어쨌거나 아이들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안온한 비닐하우스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약간의 악천후만 만나도 꺾이지만 처음부터 잡초처럼 자란 아이들은 웬만한 역경을 만나도 이겨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미래를 살아갈 핵심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이와 더불어 무언가를 직접 시도하고 만들어보는 교육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어썸스쿨(awesome school)’이라는 방과후 학교 과정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이 학교에 일주일에 세 시간씩 모이는 아이들은 먼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어찌 보면 자신을 가장 잘 모르는 것이 자신이다. 그런 만큼 나에 대해 직접 관찰하고 물어보지 않으면 나 자신을 파악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해도 사회가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 이렇게 내가 원하는 일과 사회를 매칭시킬 수 있게 되면 뭔가 길이 생겨난다. 아이들 각자 실행을 통해 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세 번째 단계다.

이렇게 어썸스쿨을 운영하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뿐 아니라 학교까지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직접 참여해 뭔가를 바꿔내는 일을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잘해낸다. 내 경우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인 아들·딸이 있는데 얼핏 보면 게임 중독자, 오타쿠에 가깝다. 그런데 게임을 하고 코믹월드(만화축제의 일종)를 쫓아다니면서 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인터랙티브)을 하는지 살펴보면, 아이들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라. 정답에 아이들을 매몰시키지도 마시라.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오히려 아이를 통해 배우시라. 결국 미래는 예측하고 따라가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의 것임을 기억하자.

정리·김은남 기자

기자명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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