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초·중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친다. 더군다나 그 교수는 안숙선 명창과 첼리스트 정명화씨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음악 영재교육’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강원도 평창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산골의 평범한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클래식과 국악을 과외 활동으로 열심히 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한예종이 현대차 정몽구재단과 함께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다.

정명화 교수와 클래식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은 평창군 계촌마을을 맡았다. 안숙선 교수와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은 남원군 비전마을을 맡았다. 한예종 대학원생들을 따라 계촌마을에 가서 수업을 지켜보았다. 이미 오케스트라 합주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다시 기초부터 배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당장 연주를 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억지로 소리를 내면 음악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연주곡을 연습하면 당장 들려줄 수 있는 소리를 낸다. 문제는 아이들의 잘못된 연주 습관이 굳어진다는 점이다. 좋은 음악을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에서 안숙선 교수와 정명화 교수의 역할은 ‘존재감’이다. 거장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받는 영향이 적지 않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두 거장은 기회가 되는 대로 계촌마을과 비전마을을 찾아 아이들을 응원한다. 특히 매년 국악 축제와 클래식 축제가 두 마을에서 열리는데, 이때는 현장을 지키며 노래와 연주도 아이들과 함께한다. 안숙선 교수는 “예술이 주민과 마을을 아름답게 바꿔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그동안 판소리 맥을 잇고자 열심히 했지만 대중과 만나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통해 판소리의 저변을 확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악과 클래식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 남원·평창의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이어질 두 거장의 협연

올해 두 거장은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둘의 협연이다. 정명화 교수는 “판소리에 깊이 감동했다. 첼로가 제일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판소리가 그렇더라. 예전에 장고 등 국악과 클래식 협연을 시도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로 곡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대목을 안숙선 교수가 고르면, 정명화 교수가 이에 맞춰서 연주 구상을 한다. 그 구상에 맞는 작곡은 임준희 교수(한예종 작곡과)가 맡았다. 안숙선 교수는 “그동안 대중이 판소리를 그렇게 많이 듣지 않고, 판소리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여러 면에서 판소리가 첼로와 맞고, 성음도 판소리와 잘 맞아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판소리가 심금을 울리는 첼로와 만나 잘 표현되길 바란다”라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의 성과는 ‘비전마을 국악 거리축제(6월17~19일)’와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8월19~21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전마을 국악 거리축제에는 길놀이, 난장마당, 한낮의 정자마루 콘서트 등이 열릴 예정이고,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에는 클래식 음악극, 클래식 음악다방, 한밤의 느티나무 콘서트, 골목연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의 성과는 거리 축제를 넘어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이어진다. 정명화 교수는 “평창의 계촌중 오케스트라 학생들은 올림픽 개막 때 공연할 계획인데, 한 해가 다르게 변화가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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