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세계 최초(1661년)로, 현금 지폐를 발행한 나라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현금 없는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거래에서는 사실상 현금이 사라진 상태다. 글로벌 대형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지난해 6월 초 현재, 소매 거래의 95%가 디지털 기반으로 결제되고 있다. 구멍가게에 들러 군것질 거리를 살 때, 부모나 연인에게 줄 선물을 구입할 때, 친구와 주점에 가서 술을 마실 때 현금이 아니라 카드나 스마트폰을 내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게마다 “Vi hanterar ej kontanter(우리는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교회에서는 헌금 주머니가 사라졌다. 신도들이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홈리스들도 모바일 카드 리더기를 갖고 다닌다. 그들이 자활을 위해 만들어 거리에서 판매하는 〈팍툼(Faktum)〉이나 〈시투아숀 스톡홀름(Situation Stockholm)〉 같은 잡지 역시 카드로 결제한다. 버스의 경우, 아예 요금을 현금으로 낼 수 없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심지어 은행에서도 현금을 구경하기 어렵다. 고객들은 현금을 예금하기 위해 은행에 들르지 않는다. 현금을 인출하지도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심지어 고액의 현금을 예금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테러리스트나 범죄조직 구성원으로 의심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마약 거래나 조직범죄처럼 출처가 의심스러운 돈이 아니라면, 일반 시민이 고액의 현금을 소지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AFP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홈리스들도 모바일 카드 리더기를 갖고 다닌다. 그들이 자활을 위해 거리에서 판매하는 잡지를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스웨덴 크로나 현금의 ‘유통 규모(기업과 소비자들이 거래에 사용한 지폐와 동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Riksbank)에 따르면, 2011년 990억 크로나에 달했던 현금 유통 규모가 지난해에는 770억 크로나로 22%나 감소했다(42쪽 표 참조). 다른 선진국들의 현금 유통 규모가 불황에도 계속 증가해온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 같은 스웨덴의 ‘무현금 사회’를 주도해온 것은 시중은행으로 보인다. 시중은행들의 지점 중 상당수가 현금 관련 영업을 중단해버렸다. 2010년부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지속적으로 철거하고 있다. 심지어 현금을 대체할 만한 강력하고 효율적인 결제 수단을 고객에게 제공한 것도 은행들이다. 스웨덴 시중은행들이 공동 개발한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 스위시(Swish)가 그것이다. 가게에서 상품을 산 뒤 스위시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제시하면, 고객의 은행 계정에서 해당 상점의 은행 계정으로 2초 만에 송금이 완료된다. 스웨덴 인구 950만명 가운데 300만명 정도가 스위시를 쓴다.  

스웨덴 은행들은 ‘무현금 사회’를 새로운 수익 모델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일단 현금 보관, 현금 수납 직원, ATM 등에 투입되어온 비용을 크게 줄였다. 은행 강도 같은 현금 관련 범죄(와 관련된 보안 비용)도 원천 차단했다. 더욱이 고객들이 현금이 아니라 은행 계좌를 통해 결제하게 되므로 수수료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스웨덴 상점에 걸린 현금 거부 안내문.

은행에 예금한 돈 저절로 줄어드는 미래 올까

이뿐 아니라 은행이라는 ‘산업’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은행업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른바 ‘정보 비대칭’ 문제다. 즉, 대출을 해줬을 때 해당 고객이 빌린 돈을 상환할 만한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 은행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고객의 직업·소득·재산·신용등급·납세내역 등 취득 가능한 정보로 상환 능력을 가늠하지만, ‘숨겨진 정보’가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시민들이 현금이 아니라 주로 은행 계정을 통해 거래한다면 상황이 바뀐다. 은행은 고객이 얼마나 벌고 어디에서 무엇을 얼마에 사는지 지출 내역까지 샅샅이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들을 쌓아나가다 보면, 심지어 은행이 고객 자신보다 고객을 더 잘 알고, 그에게 적합한 ‘금융 솔루션’을 앞서 제공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스웨덴이 ‘무현금 사회’로 변화한 데에는 또 다른 함의가 있다. 현재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마이너스 금리 상태에서 무현금 사회로 질주 중인 것이다.

대다수 시민은 시중은행에 자신의 계좌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좌에 예금된 돈에 대해 이자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시중은행들은 중앙은행에 설정한 자신들의 계좌에 돈을 맡긴다. 이자도 받는다. 그런데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돈에 대해 이자를 받기는커녕 일종의 벌금(보관료)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 제도다. 현실에서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가진 계좌 내의 돈이 마이너스 금리만큼 매일 조금씩 줄어드는 형태로 시행된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그냥 맡겨놓으면 손해를 보니까, 민간에 대출해서 경기를 살리라’고 압박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중앙은행에 개설된 시중은행 계좌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EPA지난해 새로 나온 스웨덴의 지폐. 스웨덴 현금 유통 규모는 4년 동안 22%나 감소했다.

이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21세기 들어 세계 최초(2009년 7월)로 시행한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현재 -0.5%. 마이너스 금리는 이후 덴마크, 유로존, 스위스를 거쳐 지난 2월에는 동아시아의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지금까지는 시중은행에만 적용되지만 민간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시중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로 중앙은행 계좌 내의 돈이 줄어들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 (2015년 10월28일)에 따르면, -0.75%의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받는 스위스 시중은행들은 매년 10억 달러 정도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 견디다 못한 은행들이 자신의 손해를 고객들에게 이전하겠다고 결심하면 마이너스 금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가계나 기업이 시중은행에 맡겨놓은 돈 역시 이자가 붙는 대신 일정한 주기에 따라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이유는 ‘많이 대출하라’는 것이다. 이 제도가 민간에까지 확대된다면 ‘은행에 맡겨둔 돈을 꺼내 많이 소비하고 투자하라’는 의미가 된다. 가계와 기업 처지에서는 시중은행에 예금한 돈이 계속 저절로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자기 집 침대 매트리스 밑에라도 보관해둘 필요가 있다. 도난이나 강도 범죄가 횡행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럭저럭 자신의 재산 가치를 무사히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 나라가 ‘무현금 사회’라면? 현금을 찾아 숨겨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은행에 있는 ‘내 돈’이 저절로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보다는 서둘러 소비(투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행위일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와 ‘무현금’이 만나면

당초 마이너스 금리는 ‘저축하지 말고 소비·투자(시중은행으로서는 대출)하라’는 취지의 제도다. 경제주체들이 각자 너무 돈을 쓰지 않아서 디플레이션 상태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마이너스 금리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해당 사회에 현금이 귀하거나 아예 없어야 한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 상태에서 무현금 사회로 가고 있는 스웨덴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저명 투자자문가인 프랭크 홈스는 유력 경제 전문지 〈포브스〉(2015년 12월7일) 기고문에서 스웨덴 정부를 상대로 중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무현금 사회로의 변화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우파 시장주의 연구단체의 주장을 빌려서 “케인스주의적 중앙 계획 기구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현금에 대한 전쟁(war on cash)’을 선포했다. 지출을 강제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홈스는 다소 성급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시중은행들이 과연 고객(기업과 가계)들에게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확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칫 일반 기업과 가계가 은행에서 예금을 몽땅 찾아 집에 보관하겠다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스웨덴의 은행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실험이다.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도 이런 사태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중앙은행이 몇 개 안 되는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욱이 스웨덴 무현금 사회에 대한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인 니클라스 아르비드손 왕립 기술원(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 교수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스웨덴이 단기간에 순도 100%의 무현금 사회에 도달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정치인들이 무현금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단언할 만한 조짐은 없다. 특히 최근엔 새로운 지폐와 동전을 발행할 것이라고 한다. 스웨덴 중앙은행과 정치권은 새로 발행되는 현금들이 오는 2040년대까지는 유통될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이 무현금 사회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국가라는 사실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스웨덴은 과감하게 새로운 사회적 실험들을 감행해온 전력이 있는 나라다. 복지국가 역시 그런 실험의 소산이었다. 이번에도 스웨덴인들이 또 다른 실험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기업과 가계가 투자·소비를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바람에 경제 시스템 전체가 침체되는 ‘과소 소비(過少消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고질적 결함인 과소 소비 문제에 대한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마이너스 금리 상태에서의 무현금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도 아주 무리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 이 기사는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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