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고 목동 쪽으로는 머리도 안 두고 자잖아요.” 대학 새내기가 된 아이들이 깔깔대며 말했다. 서울 대치동과 함께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목동 입시학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다. 고등학교 내내 목동에서 살았던 친구들이지만, 지역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큼도 없다.

목동 학생들은 대개 원주민이 없다. 그곳 학부모 대부분이 좋은 학군의 중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아이가 12~13세 무렵 목동으로 이사를 온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한 반에 7~8명이 전학생이라고 한다. 늦어도 중학교 3학년 가을 전에는 목동으로 이주해 정착한다. 목동 지역 안에서도 단지를 옮겨 이사한다. 특목고 진학 실패에 대비해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기 위해서다. 자신의 교육을 위해 온 가족이 이사 왔으니, 공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목동 학원가를 벗어난 해방감과 새로 시작한 대학 생활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목동 하면 월드타워밖에 생각이 안 나.” “나는 프라자. 어릴 때는 그 건물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어.”

아이들이 말한 두 건물은 목동의 대표적인 학원 건물이다. 한 건물에 학원 수십 개가 입주해 있고, 그런 건물이 몇 채씩 연달아 있는 목동의 중심 학원가다. 아이들 말대로 여기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학기 시작 전에는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엄마 손을 잡고 서서 “엄마 없어도 혼자 잘할 수 있지?” “혼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야 하니까 잘 기억해야 해” 따위 당부를 듣는 초등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박해성 그림

학원가에 들어온 10대 초반 아이들은 특목고 진학을 준비한다. 실제로 2015년도 서울시 25개 구별 특목고 진학 실적에서 목동이 속한 양천구는 190명(8.7%)으로 서울 시내 2위(1위 강남구 235명)를 기록했다. 서부권에서는 독보적인 수치다. 목동에서 특목고 대비 학원들의 확장 속도는 눈에 뜨일 정도다. 특목고를 준비하지 않는 아이들은 대입을 준비하기 위해 수학 선행학습 학원에 다닌다.

현장에선 실효성 낮은 선행학습 금지법

중·고등 선행학습의 효과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아이가 따라가는 데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시키는 분위기다. “중학교 때는 시간이 남으니까” 시킨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목동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학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초등학교 5학년 1학기에 6학년 1학기 과정을 배우는 선행학습이, 중학생 때는 고교 과정을 배우는 식으로 속도가 붙는다.

한 여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 과목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네 바퀴를 돌리고(네 번이나 선행학습을 반복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아이는 “이렇게 안 하면 대학 못 왔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목동으로 이사 왔던 한 남학생은 정반대로 말했다. “어릴 때부터 너무 선행, 선행 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결과적으로 별 도움도 안 됐고요.”

최근에는 선행학습 금지법이 생겼지만 광고 문구에 대한 규제로 그친다. 현장에선 실효성이 낮다. 학원들은 보통 선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심화반’ 혹은 ‘특목 대비반’ 따위 말을 쓴다. 하지만 수업 내용에는 고등 수학 과정의 구체적인 단원명이 적혀 있다. 영어 과목 시간에도 텝스, 토플, 수능을 섞어서 가르친다고 떡하니 공지한다.

목동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학부모들은 아파트 전세를 알아본다. 전셋값은 최소 4억~5억원. 비싼 집값을 감당하며, 8년이 넘는 시간 사교육비를 감당하는 것이 목동에 거주하는 어른들의 삶이다. 한 학부모는 “어떻게 생각하면 목동의 비싼 전셋값 덕분에 우리 아이 인생이 달라진 거죠”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른 학부모는 “고등학교에 가면 초·중학교를 목동에서 보낸 보람이 있을 거예요”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또 다른 학부모는 말한다. “대학 보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학원 정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너무 많이 알 필요는 없더라고요.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과도한 선행학습은 절대로 시키지 않을 거예요.”

청소년 유해 환경이 없고 학원이 많은 목동은 학생들을 끌어모은다.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들에게 목동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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