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가 친박계 인사들의 불참으로 파행되면서 친박·비박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비대위와 혁신위를 가동해 총선에서 무너진 당 지지율을 회복하려던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도 위기에 처했다. 당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여권의 정계 개편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위 파행 직후 친박계가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당 외곽에서는 조심스럽게 분당 가능성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비박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 같은 정세를 반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5선(경기 여주·양평)인 정병국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오히려 잘됐다. 새누리당이 더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라면서 전국위 파행 덕분에 당의 쇄신 방향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비박계에서 차기 당권 주자로 꼽히는 정 의원을 19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5월19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5월17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가 결국 무산되었다.
곪아 터질 게 터졌다. 4·13 총선을 통해 새누리당은 심판을 받았다. 심판의 요인이 무엇인지 진단해야 하는데, 오히려 진단의 대상들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차라리 잘됐다. 이번 파행으로 청산해야 할 대상과 청산을 주도할 사람이 구분되었다. 향후 쉽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국위 무산 직후 친박계에서는 연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누가 누구더러 나가라고 하는가. 지금은 혁신할 수 있는 명분이 명확해졌다. 차라리 초기 단계에서 이렇게 그들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스스로 청산의 대상이라는 것을 자인하게 됐다.

새누리당이 당장 개선해야 할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당·청 관계다. 이게 첫 번째다. 당의 정체성과 존재감이 없으니 매번 청와대에서 지시받은 사항만 가지고, 여야 협상에 나섰다. 협상력도 떨어지고, 정국이 올스톱 됐다. 결국 19대 국회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게 됐다.

당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청와대 책임도 큰 것 아닌가?
당이 청와대를 바꿀 수는 없잖나. 최소한 우리가 일방적으로 지시받는 정당은 되지 말아야 한다. 당에서 뭘 하려면 청와대에 물어보고 나서야 다시 당으로 하달됐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도 어렵게 된 것이다. 여당으로서 제 기능을 하게 되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여당과 대통령은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데, 책임이 전부 대통령에게 쏠려버렸다. 결국 그 책임의 ‘결과’ 이번 선거에서 참패했다.

친박계 당선자 숫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분들도 다들 민심이 어디 있는지 잘 알 것이다. 지금은 처음 들어와서 각자 자기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곧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것이고 민심에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사IN 조남진 정병국 의원은 “친박이 자기 이권만을 위해서 목소리 낸다면 암적인 존재와 같다”라고 비판했다.

친박계가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 있을까?
선거 패인과 당 문제점을 평가한 후, 전당대회에서 친박이든 누구든 당원과 국민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계파가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직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고 힘을 발휘하는 데 계파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그룹의 이권을 위해서만 목소리를 낸다면 암적인 존재와 같다.

친박이 이권을 좇는 결사체라고 보는 것인가?
친박계 논리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건데, 지금 박 대통령이 실패하고 있잖나. 그럼 빨리 노선을 바꿔야지. 결국 대통령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들 이해관계 때문에 대통령 옆에서 호가호위하는 것 아닌가.

정진석 원내대표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본질은 당·청 관계 개선과 계파 청산인데 곁가지 문제에만 반발하고 있다. 특정 계파를 청산하자는데 친박을 안배하면 이게 청산이 되겠나? 청산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구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방향을 잘 잡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천막당사 입주식을 열었다. 정병국 의원(왼쪽 두 번째)은 소장파와 함께 박 대표 체제를 지원했다.

분당 얘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건 분당이 되기를 바라는 세력이 하는 얘기다. 분당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태껏 보수 진영에서 분당된 사례가 없었다. 보수 세력 성향상 분당을 용납하지 않는다. 성공한 예가 없다. 심지어 2002년에 박근혜 대통령도 탈당했다가 다시 들어왔다.

새누리당 총선 패배 원인을 꼽자면?
누적되어왔던 당·청 관계 속에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국민은 당에서 뭘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 취직이 안 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이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는데, 당이 하는 꼴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폭발했다. 19대 국회에서 정책적으로 뭐가 된 게 없잖나. 나중에 임기 끝나고 박근혜 정부에서 한 일이 뭐냐고, 성과물을 내놓으라고 하면 뭘 내놓을 것인가.

대통령의 임기도 채 2년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여야 간 합의에서도 적당하게 줄 건 주고,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건 지키면서 관철시켜야 변화를 이끌 수 있는데, 협상 자체가 안 됐잖나. 그래서 당·청 관계가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2004년 당시 ‘천막당사’를 주도했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 위기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천막당사 시절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 당시에는 당내 싸움의 대상, 척결 대상이 뚜렷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얘기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선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아 어렵다. 그래서 이번 파행처럼 전선이 명확해질수록 당이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본색이 다 드러나야 한다. 아직 새누리당이 더 뜨거운 맛을 못 봤다. 지금 전국위에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당시 천막당사에도 반대했던 이들이다. 그 사람들이 당 주인처럼 행세하면서 나가라 마라 얘기를 어떻게 하나. 그때 천막당사를 치고 박근혜 의원을 대표로 옹립하려 삼고초려한 게 누군데.

아직 새누리당 내 차기 대권 주자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는 사람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 정권 재창출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 대권 주자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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