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의 백미는 백범(앞줄 왼쪽 두 번째)의 진솔함이다.
우리나라 학계와 출판계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본(定本)이다. 정본은 연구나 인용을 하는 데 가장 믿을 수 있는 본문을 제공하는 서적, 고전 텍스트의 여러 다른 판본 가운데 검토하고 교정해 원본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한 표준이 될 만한 책이다. 어떤 텍스트에 ‘관하여’ 연구한 책을 쓰는 것보다, 그 텍스트의 정본을 만드는 게 몇 십 갑절 더 어렵다.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는 백범일지 정본 텍스트에 성큼 다가선 성과다.

엮은이는 논쟁적인 문제나 시대적 배경 이해가 필요한 내용을 자세히 해설했다. 이러한 깊이 읽기가 58개에 달하며 기존 출간본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원문의 맥락을 설명하는 해설도 132개에 달한다. 예컨대 기존 출간본 주석에는 ‘조선 중기 해서 지방의 유명한 문인 유응두’로 설명돼 있는데, 엮은이는 유응두를 조선 중기 문인이 아니라 대한독립의군부 황해도 대표를 역임한 유학자로 바로잡았다.
백범일지 원문에 나오는 ‘정각에 소위 부문(赴門)-과거장을 개방-을 한다는데’가 기존 출간본에는 ‘정면에 있는 과거장 입구로 선비들이 열을 지어 들어갔다’로 돼 있다. 엮은이에 따르면 이는 정각을 정면으로 잘못 풀이했고, 과거장 문을 개방한다는 뜻의 ‘부문’도 잘못 이해했다. 당시 과거제도는 수험번호와 지정 좌석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다툼이 심했다. 이를 ‘쟁접’이라 하는데, 기존 출간본은 과거제도의 폐단을 묘사하는 백범일지 원문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이렇게 꼼꼼하게 고증하는 엮은이의 관심이 백범 신화화가 아니라 백범을 정확하게 보고 평가하는 데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 관심은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백범일지 첫 문장,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서도 드러난다. 친필원본의 첫 문장은 ‘우리 선조는 안동 김씨로 김자점씨의 방계 후손이다. 김자점씨가 반역죄를 저질러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이다. 이렇게 달라지면서 백범이 보여준 평민의식과 저항의식의 근거가 희박해져버린다. 이런 부분이 백범일지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비판적 백범 읽기를 방해한다.

“젊은 아내 팔아 한 끼 밥 맛나게 먹고 싶다”

이승만에 대한 백범의 인식은 어땠을까?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승만이 설치한 옥중 도서실의 서적을 보고 백범은 ‘이 박사의 손때와 눈물 흔적이 묻은 책을 볼 때마다 책의 내용보다는 배알치 못한 이 박사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들었다’. 백범이 친필원문의 여백에 적어둔 글이다. 백범일지 전체를 통해 이승만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은 없다. 적어도 백범이 일지를 기록한 1920년대 말에는 이승만을 존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특히 하권으로 갈수록 백범은 공산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자주 한다. 엮은이는 백범일지가 매우 정치적인 텍스트라고 지적한다.
서대문 감옥에서 고문받으며 배가 너무 고파 ‘젊은 아내를 팔아서라도 한 끼 밥을 맛나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하는 백범. 안악사건으로 투옥됐을 때 며칠 밤을 새워 자신을 고문하는 일본 경찰을 보고, ‘평소 애국자라고 자부하던 자신은 저렇게 나라를 위해 밤을 새워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반성하는 백범. 그 진솔함이야말로 〈백범일지〉의 백미다.

엮은이가 보기에 백범정신의 백미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허물까지도 숨기지 않고 세상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정신이며, 백범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대가리 싸움을 하지 말고 발이 되라’는 겸허의 정신과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되라는 ‘역수어 정신’이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