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독트린.’ 미국 유명 월간지 〈애틀랜틱〉 4월호에 실린 오바마 대통령 심층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제프리 골드버그라는 기자가 쓴 이 기사는 오바마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해하는 데 최고의 지침서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 공약대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고, 불가능해 보이던 이란과의 핵 협상도 무난히 타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쿠바와 55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 정상화를 이룬 것도 결코 작은 성과라 하기 어렵다. 시리아 및 이슬람국가(IS) 사태와 관련해 군사개입이라는 ‘연루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제력을 보인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오바마의 전략적 유연성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미국적 가치의 확산이라는 민주당의 전통적 노선을 존중하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놀랍게도 그는 대외정책 수립에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스코크로프트는 ‘미국은 국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내에서 국익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공화당 주류 현실주의자다. 그런 현실주의적 유연성이 오바마의 외교적 성과를 담보해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북한 핵 문제다. 솔직히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 오바마 취임 이후 북한은 세 차례 핵실험과 수차례에 걸친 로켓 및 탄도미사일 실험 발사를 감행했다. 미국의 경고와 독자 제재, 그리고 유엔 안보리를 통한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제 북한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되었다. ‘핵무기 없는 세상’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누차 강조해온 오바마 대통령 처지에서 볼 때 초라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이유로 오바마의 무관심을 들 수 있다. ‘오바마 독트린’을 가장 체계적으로 소개했다는 골드버그 기자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한 문장도 없다. 시리아·IS·이라크·리비아·쿠바·기후변화·중국의 부상 등을 핵심 쟁점으로 언급하면서도 정작 북한이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발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이 주목하지 않은 북한 핵 문제가 쉽게 풀릴 리 만무하다.

무능과 무대책도 문제다. 오바마 독트린에 따르면 이란·쿠바와 그러했듯이 미국은 자신과 동맹의 국익 신장을 위해서라도 북한과 더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하에 대화와 협상을 회피해왔다. 그건 현실주의가 아니다. 물론 중요한 대목마다 판을 깨는 북한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불신과 짜증도 이해할 만하다. 2009년 4월5일 오바마 취임 초기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시점에 로켓을 발사하고 연이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는가 하면, 2012년 2월29일의 합의를 잉크도 마르기 전에 파기한 북한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내를 가지고 대화를 지속했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현실주의적 협상도, 개입주의적 공세도 취하지 않고 어중간한 ‘전략적 인내’라는 무정책의 정책을 펴면서 북한에 시간만 벌어줬다.

북한이 미국에 보낸 ‘미포착’ 시그널

지난 4월28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방송사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무력으로 북한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대규모 인명 손실과 바로 지척에 있는 우리의 동맹 한국 때문에 무력행사를 할 순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포괄적이고도 강력한 대북 제재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해 비핵화의 길로 나선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무기한 대북 제재? 그럴수록 북한은 도발적으로 나오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무력 충돌의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건 현명한 대안이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무지와 정보 실패도 문제다. 북한을 과소평가하고 북한 붕괴론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간에 공유되고 있는 대북 인식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한 북한 체제의 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북핵 문제 해결은 너무나 아전인수 식이다. 또한 북한은 수차례 미국 측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핵 문제 해결을 희망하는 시그널을 보내왔지만 미국은 이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이렇게 보면 오바마와 박근혜, 두 지도자는 닮은꼴이다. 그래서 걱정이 더 크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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