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경찰은 시위 진압을 더 공격적으로 하겠다며 경찰기동대를 창설했다. 사실상 ‘백골단의 부활’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찰이 폭주하고 있다. 촛불집회에 나가자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도, 모래주머니를 나른 시위자도, 차를 끌고 나와 경적을 울린 시위자도 모조리 잡아넣겠다며 기세등등하다.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경찰기동대를 창립하고 시위대를 ‘공격’하는 시범까지 보였다. 내부에서조차 과속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의 강경 일변도다.

그러다 결국 사고도 냈다. 7월29일 경찰은 조계사를 나서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량을 불심검문했다. 조계사에서 농성 중인 촛불집회 관련 수배자가 빠져나가는지 확인한다는 이유였다. 명동성당이 농성장으로 쓰인다고 김수환 추기경 차량을 검문한 꼴이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장 차량이라는 사실이 수차례 전달되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조계사 측은 “경찰이 막말을 했다. 총무원장 차라면 더 확인해야 한다, 총무원장이라고 별수 있냐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후통첩’ 받고도 ‘경내 진입’ 계획 세워

위태로운 순간은 이전에도 있었다. 경찰은 7월26일을 전후로 조계사에 진입해 농성 중인 수배자들을 연행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작 이틀 전인 7월24일 조계종 주지회의는, 정부가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역사적 결단’을 내리겠다며 정부를 압박한 바 있다. 조계종의 ‘최후통첩’에 경찰이 ‘경내 난입’으로 응답하는 꼴이 될 뻔했다는 얘기다. 이런 기조가 일선에까지 전달된 결과가 충무원장 차량 검문이다.

경찰이 왜 이렇게 강경해졌을까. 7월22일 한진희 전 서울경찰청장이 촛불집회에 엄정 대처하지 못했다며 전격 경질된 이후 ‘충성 경쟁’에 불이 붙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고위층의 의중이 분명해진 그때부터 분위기가 말도 못하게 변했다. 잡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다 잡아넣겠다는 기세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경찰은 ‘모래주머니를 운반’한 최 아무개씨(45)를 사진에서 식별해낸 경찰관 표창을 검토하겠다고 7월25일 밝혔다. 무리한 수사를 제재하기는커녕 권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사IN 윤무영불교계가 뿔났다.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검문에 항의하는 스님과 불교도들.
사실 확인도 않고 “법적 대응” 으름장

경찰 내부의 주도권이 상대적 온건파인 정보 라인에서 강경파인 경비·수사 라인으로 넘어가자 경찰이 강경 드라이브를 건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내부에서 ‘정보는 빠져라’는 소리가 나온다. 고위층부터가 정보 라인의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러면서 ‘1000명이든 2000명이든 잡아들여라’고 나서는 경비·수사 라인 목소리만 커져가는 상황이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경찰의 정보 라인은 사실상 움직일 여지가 많지 않았다. 특히 광우병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의 핵심 멤버였던 안진걸 조직팀장이 6월25일 연행된 뒤로는, 대책회의와 경찰 정보 라인 사이에 그나마 남아 있던 채널마저 끊겼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안진걸 팀장의 연행을 두고 대책회의는 경찰이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채널이 전부 끊어졌다. 경찰 정보 라인이 성과를 못 내니까, 시간이 갈수록 내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연일 이어지는 경찰의 ‘공세’가 일시 현상이 아닐 것임을 짐작게 하는 말이다.

경찰의 기고만장한 태도 또한 문제가 됐다. 국제앰네스티에 보여준 고압적 자세는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앰네스티가 촛불집회 진압 관련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한 7월18일 바로 이튿날인 7월19일, 경찰은 그 발표가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되지 않았거나,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는 반박 자료를 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앰네스티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경찰이 낸 반박 자료야말로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표 참조).

 
경찰이 낸 반박 자료는 모두 네 가지 사례에 대해서다. 이 중 세 가지는 경찰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점검하지 않고 섣불리 반박 자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진압을 당하다가 팔이 부러진 여성을 두고 “진료 차트에 이상이 없다고 되어 있다”라고 경찰은 주장했지만, 〈시사IN〉이 취재에 나서자 진료 차트가 아닌 응급실 의사의 말만 참고한 것이라고 물러섰다. 게다가 확인 결과 이 여성의 진단서에는 ‘우측척골간부골절’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경찰은 확인도 하지 않고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변한 것은 물론,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확인하지도 않은 진료 차트까지 들먹인 셈이다.

두 번째 사례는 더욱 황당하다. 31세 만화 편집자 아무개씨는 지난 6월1일 오전 8시 인도에 서서 30분간 집회를 구경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그런데 앰네스티가 연행 시점인 6월1일 오전 8시를 6월8일로 잘못 기록하자, 경찰은 8일에 그러한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앰네스티가 허위 사실을 꾸며낸다고 공격했다. 전화 한 통이면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앰네스티 흠집내기에 나선 것이다. 경찰은 “그런 남자가 실재한다면 지체없이 고소하라”고 기세등등하게 항의했지만, 이 피해자는 “이미 고소했다. 그런 기초적인 사실도 파악 못하면서 무슨 반박 자료를 내나”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세 번째 사례 역시 엉뚱한 사람을 조사해 반박 자료를 낸 데다가, 그나마 경찰이 조사했다는 사람조차 30시간 동안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김희진 사무국장은 경찰의 태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경찰이 국내에서 하던 버릇대로 그냥 해버리니까, 국제 기준을 기대하는 우리는 당황스럽다.”

“주도권 잡았으니 불교계만 잘 달래자”

‘과속’을 경고하는 파열음이 여기저기서 들리는데도, 경찰은 기어를 바꿔넣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7월30일, ‘백골단’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찰기동대 창립식에 직접 참석해 기동대 간부에게 일일이 ‘금일봉’까지 쥐어주었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도 7월29일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불교계만 잘 정리하고 가면 된다는 분위기다. 그나마 총무원장 차량 검문 사건도 우발적 사고 정도로 여긴다. 어떻게든 불교계만 달래면, 촛불집회의 동력이 고갈된 상태니 주도권은 경찰이 잡은 상황이다”라는 전망을 내놨다. 무차별 연행, 무더기 구속이라는 경찰의 ‘반격’이 계속되리라는 얘기다.

하지만 상황이 경찰의 바람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당장 국제앰네스티 정식 보고서가 9월 중 발간되면 경찰은 국제 망신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마구잡이식 ‘촛불 수사’가 언제 여론의 역풍을 맞을지도 알 수 없다. 불교계는 거듭되는 종교 편향 사례에 분노가 쌓일 대로 쌓인 상태다. ‘불교계만 잘 정리하고 가면’이라는 경찰의 대전제부터 흔들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을 상대로는 기세등등한 반면 정권의 요구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경찰의 모습이야말로 두고두고 스스로의 어깨를 누를 짐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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