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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사라진 교실에서 동생은 깊이 울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재학생 학부모와 교육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단원고 기억교실 영구 보존 요구를 철회했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2016년 05월 25일 수요일 제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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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양(17)은 오빠 동혁군의 책상에 자신이 만든 컵케이크를 올려두었다. 상자 속에 담긴 여자, 남자, 하트 모양 케이크는 1년 넘게 있었다. 그 옆에는 오빠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도보행진에 나섰던 지난해 1월, 가족끼리 찍은 사진 액자가 놓여 있다. 2015년 4월16일과 2016년 4월16일, 오빠에게 쓴 부치지 못한 엽서도 그대로였다. 예원양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남긴 편지도 있었다. ‘예원이를 통해 오빠를 기억하고 있어요.’

동혁군의 유품에는 지난날이 배어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예원양이 오빠의 일기장에 남긴 편지는 전부 ‘오빠, 안녕!’으로 시작한다. ‘오빠랑 같은 학교에 입학했어’ ‘벌써 내가 오빠 나이가 됐어. 이제 오빠랑 같은 3층에서 공부해. 나 어제 2학년이 됐어’ ‘오늘은 화이트데이야’ ‘오늘 3학년 졸업식이야. 오빠도 같이 졸업하면 좋을 텐데, 졸업할 수 없으니까… 오빠의 졸업식이 아니라 겨울방학식으로 생각할게. 학교에서 내 옆에 있어줘’ ‘언니, 오빠들이 쓰던 교실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면 좋겠다’.

예원양은 단원고 2학년4반 희생자 동혁군의 동생이다. 오빠 대신 단원고를 다니겠다며 부모의 반대에도 일부러 같은 학교에 진학했다. 매일 오빠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쉬는 시간이나 수업 후에는 꼭 오빠를 보러 갔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고 김동혁군의 동생 예원양(위)은 매일 오빠를 보기 위해 일부러 단원고에 진학했다.  
ⓒ시사IN 이명익
고 김동혁군의 동생 예원양(위)은 매일 오빠를 보기 위해 일부러 단원고에 진학했다.

지난 4월, 아빠 김영래씨(45)가 예원양에게 놀라지 말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어른들이 교실을 정리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예원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가 단원고 교실에 있으니까 입학한 건데….”  다른 학교와 달리 한 달 앞당겨 졸업식을 치른 단원고는, 2학년 ‘기억교실’의 존치 여부를 놓고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이 대립을 벌여왔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중재에 나섰다. 지난 2월28일 ‘단원고 기억교실 관련’ 회의를 시작한 이후 4월 중순께 협의를 완료할 예정이었다.

예원양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교실을 붙잡고 있는 것도 유가족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신입생을 뽑을 텐데, 교실이 부족하잖아요. 올해도 교무실이나 컴퓨터 실습실을 교실로 만들었거든요. 신입생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유가족인 동시에 재학생인 예원양은, 친구들과 신입생을 먼저 염려했다.

교실 이전 논의가 완료된 마당에 동혁군의 유품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 없었다. 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편지나 사진을 잃게 되거나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일 수 있으니 가족이 챙기자고 의견을 냈다. 예원양은 단기방학이 시작된 다음 날인 5월6일, 2학년4반 첫째 분단의 셋째 줄, 오빠의 책상에 놓인 유품을 손수 정리했다. “이게 다 무슨 짓이에요? 오빠 물건 갖다놓을 때는 언제고, 이젠 다시 가지고 가고.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그냥 오빠만 있으면 되는데, 세월호가 터졌을 때부터 이게 정상적인가….” 예원양은 온몸을 떨며 깊이 울었다. 컵케이크와 액자, 편지 등을 조심스럽게 가방에 담았다.



5월9일 오후 2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4·16 안전교육시설 건립을 위한 협약식’이 열렸다. 협약서에는 7개 기관·단체가 단원고 교육정상화를 위해 상호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4·16 안전교육시설의 건립 및 운영, 단원고 학교 운영 참여협의체 구성 등을 협약했다. 단원고의 기억교실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옮겨서 보관한 후 4·16 안전교육시설이 건립되면 이전하기로 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교실의 영구 보존 요구를 철회하고 재학생 학부모와 교육청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교실 잃은 희생자들, 생활기록부에는 ‘제적’

협약식이 열리던 그 시각, 한 유가족이 자녀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하면서 희생자 246명이 제적되고 미수습자 4명이 유급된 사실을 발견했다. 단원고는 지난 1월21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의 학적을 처리하고자 하니 처리 지침을 시달해달라며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학적처리 협조요청’ 공문을 경기도교육청에 보냈다. 경기도교육청은 나흘 뒤인 1월25일, ‘내부 결재를 통해 제적 처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유가족들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단원고 현관에 유가족 50여 명이 모여서 제적 처리 무효를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땅바닥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다음 날인 5월10일 오후 9시40분께, 재학생 일부 학부모와 유가족이 충돌했다. 재학생 학부모가 기억교실에 들어가 생존 학생이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를 꺼내려고 시도하면서다. 10여 분간 거센 충돌 끝에 유가족 2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 간 충돌이 오가는 동안 학교와 교육청은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유가족은 이날, 자녀의 교실에 매트와 담요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2학년 교실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기억교실 이전 충돌에다 제적 문제까지 겹치자, 일부 유가족 사이에서는 협약 내용을 파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한 유가족은 “돌아오지 못한 학생이 네 명, 선생님이 두 분이 있다. 최소한 이들이 돌아왔을 때 학교를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도리마저 저버리고 양보했는데, 그 결과가 고작 이 모양이다. 모든 일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 유가족은 “교실이 없으면 잊힐 텐데… 유가족이 잊히도록 타협한 건 아닌지 자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5월11일 단원고 희생자에 대한 제적 처리를 취소하고 학적 복원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기억교실 이전을 위한 협약식이 열리는 가운데 일부 유가족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억교실 이전을 위한 협약식이 열리는 가운데 일부 유가족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어른들 간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을 때,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은 단기방학과 무관하게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노숙 중인 유가족을 보고, 노란 리본을 떼어내는 재학생 학부모를 마주쳤다. 단원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재학생은 무슨 죄일까? 자기 학교에서 부모님들이 서로 싸우고 우리 의견은 묻지도 않고…. 유가족이든 재학생 부모든 그냥 다 이해가 안 간다.”(5월12일, 유가족과 재학생 학부모는 면담을 갖고 충돌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예원양은 자신이 단원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점점 힘들다고 했다. 엄마·아빠가 단원고 땅바닥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누워 있는 광경을 보며 2014년 4월의 체육관이, 5월의 청와대가, 6월의 국회가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오빠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진학했지만 학교는 오빠의 흔적을 지웠다. 오빠가 아니었다면 가지 않을 학교였다. 여전히 오빠가 학교에 있는 것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원양은 “이제는 잘 모르겠다…”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던 예원양은, 참아내지 못한 울음에 온몸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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