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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희가 어버이연합 실세가 된 이유

추선희 사무총장은 사실상 현재의 어버이연합 설계자이자 핵심 인사다. 그가 잠적했다고 알려진 이후 어버이연합의 활동은 눈에 띄게 뜸해졌다. 청와대 커넥션 등 어버이연합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6년 05월 24일 화요일 제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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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추선희가 어버이연합 실세가 된 이유


어버이연합 고소장엔 방송인 유병재와 이상훈도

 

지난 5월2일 오후 2시30분. 이종문 어버이연합 부회장이 전화로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 강연하고 있는 게 추(선희 사무)총장이야.” 그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1분여 동안 고성의 강연을 들려주었다. 이날은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잠적’했다고 알려진 지 아흐레째였다.

급히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갔다. 하지만 추선희 사무총장은 강연을 마치고 자리를 떠난 뒤였다. 이종문 부회장은 “추 총장은 잠적한 적이 없다. 휴대폰 3개를 다 없애서 연락은 안 되지만 사무실에는 종종 나온다. 나흘 전에도 얼굴을 봤다”라고 말했다. 전화 없이 강연 일정을 어떻게 잡는지 기자가 묻자 “(추 사무총장) 본인이 사무실에 나오는 날이 강연일이다”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어버이연합의 대표는 심인섭 회장이다. 하지만 추선희 사무총장이 실세로 통한다. ‘돈줄’을 쥐고 있어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억원 넘게 지원한 ‘벧엘선교복지재단’ 계좌도 추 사무총장의 차명 계좌로 알려져 있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전경련 지원금으로 “노인들에게 무료급식 사업을 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추선희 사무총장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은 ‘추선희 없는 어버이연합’의 행보다.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서울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어버이연합 집회가 열렸다. 그런데 4월에는 단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추 사무총장이 잠적하자, 집회도 뜸해진 것이다. 심인섭 회장은 “추선희 사무총장이 없으면 집회를 열 수 없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전경련이 5억원 넘게 지원한 ‘벧엘선교복지재단’ 계좌는 추선희 사무총장(위)의 차명 계좌로 알려졌다.  
ⓒ시사IN 신선영
전경련이 5억원 넘게 지원한 ‘벧엘선교복지재단’ 계좌는 추선희 사무총장(위)의 차명 계좌로 알려졌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5월8일 창립됐다. 회장은 몇 차례 바뀌었으나, 사무총장은 11년째 추선희 한 사람이 맡았다. 창립 초기 사무총장직의 ‘무게’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이강성 어버이연합 초대 회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추 사무총장은 처음에 주로 잔심부름만 맡았다”라고 말했다. 모임 주축의 나이가 70~80대다 보니, 상대적으로 젊은 추선희 사무총장에게 몸 쓰는 일을 맡겼다. 이 전 회장이 밝힌 10여 년 전 추 사무총장의 업무는 “강연 장소에 의자나 돗자리 깔기, 쓰러지는 노인들 부축하기” 따위였다. ‘돈 관리’도 담당했지만, 당시 어버이연합의 재정은 회원들이 모은 ‘커피값’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 심부름꾼’이 실권을 쥔 것은 이강성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부터다(2009년 사임했다는 보도가 있으나, 이 전 회장 본인은 2006년 11월까지만 재직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이 물러난 뒤, 추 사무총장은 ‘안보 강연’을 수익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창립 초기 안보 강연에 나선 이들은 무료 강연, 그러니까 일종의 재능기부를 했다. 이렇게 재능기부자들이 있어야 간혹 강연이 열렸다. 추 사무총장은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안보 강연을 매일 열게 하고, 연사에게 강연료를 지급했다. 강사료를 기업 지원금으로 유치하는 방식도 추 사무총장이 기획했다. 기업 지원금 유치에 반대하던 이 전 회장이 물러나자 밀어붙인 ‘추선희표’ 정책이다.

어버이연합 초대 회장 “모임이 저렇게 됐나?”

추선희 사무총장이 주도하면서 어버이연합은 초창기와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이강성 전 회장은 지금의 어버이연합이 애초 설립 취지와 딴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버이연합 전신인 ‘나라사랑노인회’는 교육사업 단체였다. 종묘공원에 있던 노인들에게 신문을 읽어주던 게 주된 활동이었다. 재작년 어버이연합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 관련 보도 규탄을 위해) KBS에 쳐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임(어버이연합)이 저렇게 됐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보수 단체들도 추선희 사무총장이나 어버이연합 활동 방식과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 추 사무총장이 ‘롤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는 “추 사무총장과 함께 일했던 것은 예전 이야기다. 최근에는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10년 넘게 보수 단체 활동을 해온 한 인사는 “추선희 사무총장은 너무 정파적이고 과격해서 상종을 안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사실상 현재의 ‘어버이연합’ 설계자이자 실무자이며 핵심 인사다. 관제 시위의 배후나 청와대·국정원 커넥션 등 모든 의혹의 열쇠는, 홀로 자금을 관리하고 구체적 활동을 기획해온 그가 쥐고 있다. 지난 4월21일 경실련의 검찰 수사 의뢰를 시작으로, 시민단체들의 관련자 고발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4월26일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보름이 넘도록 추 사무총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내킬 때마다 종로 사무실에서 안보 강연을 한 뒤,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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