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되면 꼭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수업을 한다. 그 수업의 마디마디마다 늘 긴장과 두려움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1997년 정부가 이미 ‘국가기념일’로 인정한,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항쟁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인데도 말이다. ‘광주’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긴장하고 두려워하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런데 학교는 그렇다. 그 ‘작은 일’에도 용기를 내야 한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같이 사는 지구별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참담했다. 속절없이 죽어갈 어린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게다가 그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할지 말지가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마침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토론 단원을 공부할 때여서 우리는 모둠별로 모여 앉아, 이라크 파병에 대해 찬반 토론을 했다.

내 수업 방식은 늘 그렇듯이 다양한 ‘팩트’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왜 이것이 논란이 되는지 간략히 설명한다. 토론이 끝나기 전까지 교사의 개인적 의견을 전하지 않는다. 물론 수업을 마무리할 때는 ‘사견’임을 전제로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정리하곤 한다. 이라크 파병 토론 수업도 그렇게 진행했다. ‘파병을 찬성한다’고 결론을 내린 모둠도 몇 나왔지만 그 토론 과정을 존중했다. 토론이 미숙해 보여도, 발표하고 내용을 공유하는 단계에서 모자라는 부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아이들의 그런 생명력을 믿고 지켜보았다.

ⓒ박해성 그림

그런데 이 수업을 문제 삼아 당시 관리자들이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나는 교과서의 관련 단원과 학습활동에 나온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친구들과 토론해보자’라는 부분을 보여주면서 교육과정상 어떤 문제도 없음을 주장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쟁이 옳지 못한 일임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반전(反戰)을 가르치는 일이 잘못된 일인가?”라고 묻자, 관리자 중 한 명은 “우리나라가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인데,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반대한다면 반전이 곧 반미다. 당신은 반미 수업을 한 것이다”라면서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큰소리를 치는 그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어린 학생들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그들은 두려웠던 게 아닐까.

‘계기 수업’은 정말 중요하다. 딱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을 수업에 녹여내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학생들 일생에 중요한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계기 수업을 교과부, 교육청, 학교 관리자, 일부 학부모는 싫어한다. 아이들이 ‘딴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 갖지 말기를, 그저 공부만 하기를, 어른들이 잘못한 일에 비판의식을 갖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노란 리본을 나누려는 학생들도 저지당해

그들이 생각하는 ‘자율적인 학생’은 자율적으로 알아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이고, 어른들이 한마디 지시를 내리면 나머지도 알아서 척척 하는 학생이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그 일의 잘잘못을 헤아릴 줄 아는 학생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계기 수업을 하지 말라고, 결재받지 않은 수업을 하면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지난 4월 ‘세월호 2주기’ 때도 그러했다. 세월호 참사를 가르치겠다는 교사도, 직접 만든 노란 리본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슬픔을 함께 나누겠다던 학생들의 제안도 저지당했다.

교육 당국은 임용한 교사의 교육철학을 신뢰하고 그가 교단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교사가 교단에서 부도덕하고 불법적이고 반역사적이며 비윤리적인 내용을 가르쳤다면 그 사안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거쳐 절차에 따라 징계하면 된다.

그런데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일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언급하는 일이 반역사적이고 비윤리적인가?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아직도 광주를 가르치지 못하게 막는 걸까.

올해도 이 ‘광주민주화운동’ 수업을 두고 여기저기 학교가 시끄럽다. 교육청에서 마련한 수업마저도 문제 삼는 현실은, 광주가 흘린 피로 이룬 민주주의가 아직도 미완성임을 실감하게 한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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