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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양적완화’ 논쟁 들여다보니


한국형 양적완화=코빈식 양적완화?


한국 최초 양적완화 주창자, 정부여당 비판

 

조선업 구조조정 초읽기… 엇갈린 시선

 

 

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사진)이 주창해온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는 외형적으로 ‘한국형 양적완화’와 비슷하다. ‘조준폭격식 돈 풀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의 양적완화는 기껏 시중은행의 현금 보유고만 늘려줬을 뿐이다. 그 돈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가진 계정 내에 머물러 있거나, 주로 금융시장으로 흘러가 주가를 높이고 부유층만 살찌웠다. 가계·기업 등 실물경제 부문에는 닿지 못했다.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는 문자 그대로 중앙은행이 푸는 돈을 민중에게 직접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대안 정책이다.

코빈이 설립하겠다는 ‘국립 산업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이 그 수단이다. 돈의 흐름은 단순하다. 국립 산업투자은행(이하 산업은행)은 교통 시스템 현대화, 서민용 주택, 초고속 종합정보통신망, 교육시설 등의 건설 프로젝트(사실상 영국 정부의 공공사업)를 기획한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현금을 찍어내서, 산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한다(양적완화). 산업은행은 이렇게 조달한 돈으로 기획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양적완화로 발행된 돈이 임금이나 중간재 매입 비용 등으로 영국 실물경제에 흘러간다. 완료된 프로젝트들은 영국 경제를 고숙련·하이테크 구조로 바꾸는 데 기여한다. 이전의 양적완화에서 금융권 내에 머물렀던 돈이 ‘바깥세상’으로 용솟음치게 되는 것이다.

ⓒAP Photo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

그런데 노동당이 집권하면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가 실현될 수 있을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2009년 발효된 유럽연합의 ‘미니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정부의 공공사업에 쓸 돈을 직접 발행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곧바로 중앙은행에 인수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코빈 당 대표, 켄 리빙스턴 전 런던 시장 등 노동당 지도자들은 꿋꿋하다. 특히 켄 리빙스턴은 BBC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BOE는 ‘은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만 자금을 공급해왔다. 그 돈을 정보통신망이나 교통 시스템 현대화에 쓰면 왜 안 된다는 건가?” 하고 반문한다.

다만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가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을 어느 부문에 투입할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노동당 코빈 당 대표에게 ‘민중에 대한 양적완화’ 구상을 설득한 리처드 머피 교수(런던시티 대학)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신화에 불과하다’며 BOE의 간부들을 비웃는다. “BOE 총재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영국 정부의 소망을 거부한다고? 그러면 집에 가야지!”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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