캅카스(코카서스) 산맥 남쪽에 자리 잡은 조지아(옛 그루지야)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동유럽의 스위스’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스위스 사람들도 조지아에 여행을 많이 온다. 이유는 이렇다. 알프스 풍경 사진에서 포토숍으로 케이블카와 호텔 등을 지우면 캅카스의 풍경이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은 조지아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한다.

위치상 터키의 동쪽, 이란의 북쪽에 자리한 조지아는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한 뒤 1991년 독립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캅카스 3국으로 분류된다. 조지아는 러시아의 문호들이 앞다퉈 칭송했던 곳이기도 하다. 막심 고리키는 조지아의 철도 기지창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첫 작품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했다. 그는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그곳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이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만들어놓았다”라고 말했다. 조지아는 막대한 빚을 지고 도망 온 톨스토이가 주둔군 신분으로 복무했던 곳으로 나중에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여러 편 쓰기도 했다. 장기간 조지아를 여행했던 러시아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 음식은 하나하나가 시와 같다’라고 칭송했다.

조지아에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프랑스처럼 풍부한 와인이 있고, 이탈리아처럼 맛있는 음식이 있으며, 스페인처럼 정열적인 춤과 음악이 있다. 여행 좀 다녀본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조지아다.

조지아는 오감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조지아 여행은 길면 길수록 좋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조지아를 둘러보아야 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꼭 들러야 할 곳을 꼽았다. 트빌리시, 시그나기, 보르조미, 카즈베기 이 네 곳이다.

ⓒ시사IN 고재열카즈베기 산 중턱의 게르게티 삼위일체 교회에서 바라본 설경.

트빌리시의 교회들, ‘조지아다움’을 보여주다

조지아 여행을 트빌리시 구도심(올드 트빌리시) 산책으로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교회부터 가장 중요한 교회까지 주요 시설들이 구도심에 몰려 있어 걸어다니며 두루 볼 수 있다.

조지아정교는 기독교 계열인데, 교회 건물이 인상적이다. 교회는 가장 ‘조지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지아는 페르시아(이란), 오스만튀르크(터키), 제정러시아(러시아)에 둘러싸인 나라였다. 중국과 일본의 숱한 외침을 받았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지아인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있는 기독교 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강한 세력이 나오면 언제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 조지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 한 것이 바로 조지아정교였다. 조지아인들은 조지아를 구성하는 세 요소로 조지아정교와 조지아어 그리고 와인을 꼽는다. 페르시아, 오스만튀르크 등 당대의 강대국들이 침입해왔을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교회를 둘러싼 성 위에서 맞았다. 캅카스 산맥 깊숙이 피란을 가면서도 먹을 것 대신 교회의 성물을 챙겼다.

ⓒ시사IN 고재열조지아 전통춤은 탭댄스처럼 경쾌하고 플라멩코처럼 정열적이다.

조지아정교는 외세에 가장 많이 탄압받았음에도 그 특징은 관용이다. 관용은 교회 밖으로 확대된다. 어렵게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온 조지아인들은 다른 종교에도 관대하다. 조지아인의 83% 정도가 조지아정교를 믿고, 10%는 이슬람교, 2%는 아르메니안정교, 그 외 가톨릭과 신교, 유대교 등을 믿는다.

트빌리시 구도심 산책은 메테히 다리를 건너 므크바리 강 언덕에 있는 메테히 교회에서 얼추 마무리된다. 무려 37번이나 다시 지어진 이 교회는 조지아정교 수난의 상징이다. 옛 소련 시절에는 감옥과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교회 옆에는 트빌리시를 세운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이 구도심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메테히 다리를 다시 건너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 요새에 오르면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다. 요새에서 내려오면 폭포로 가는 협곡이 있다. 폭포는 크지 않지만 협곡 위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이 볼거리다. 협곡 입구에는 벽돌무덤 단지처럼 생긴 유황온천 지대가 있다. 가족 욕실도 있어서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구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트빌리시 벼룩시장도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진귀한 골동품이나 옛 소련 물품이 많아서 물건을 고르는 재미가 유별나다.

트빌리시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전통음식을 먹으면서 전통춤과 전통음악 연주를 관람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므크바리 강을 따라서 이런 곳이 50여 곳이나 있다. 조지아 전통춤은 마치 탭댄스를 보는 것같이 경쾌하고 스페인 플라멩코처럼 정열적이다. 전통음악(Polyphony)은 안데스산맥의 노래들처럼 멜로디가 신비로운데 그중에는 우리의 아리랑과 후렴구가 비슷한 노래도 있다.

조지아 와인 마시고 ‘새’가 되는 즐거움

트빌리시 다음으로 여행할 곳은 와인의 고장 카헤티와 그 오른쪽에 위치한 시그나기 지역이다. 트빌리시에서 카헤티로 가기 위해서는 1900m 내외의 텔라비 구릉을 넘어야 한다. 이 구릉을 넘어서면 카헤티 평원과 캅카스 산맥의 설산이 보이는데 풍광이 일품이다.

카헤티 지방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조지아 와인의 특징은 일단 포도의 종류가 다양하다. 조지아에서 기르는 포도는 565종이나 된다. 카헤티에는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은데 그중 트윈셀라(Twin’s Cellar)라는 와이너리에 들렀다.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곳으로 정통 크베브리(qvevri) 와인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크베브리 와인은 으깬 포도를 넣은 점토 항아리를 땅에 묻어 발효시킨다. 정통 크베브리 와인은 화이트 와인으로 금빛이 난다. 조지아 지역은 와인이 최초로 발원한 곳으로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베브리 와인은 대체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가격에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맛’을 제공한다.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납품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와인도 많다.

ⓒ시사IN 고재열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조지아 와인.
ⓒ시사IN 고재열전통 음식 츠와디.

트윈셀라에서 정통 조지아 주도를 배웠다. 조지아인들은 ‘와인 3잔은 곰(bear)이 되게 만들고 그다음 3잔은 황소(bull)가 되게 만들고 그다음 3잔은 새(bird)가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취하면 스스로 잔을 내려놓아야 한다.

트윈셀라와 같은 와이너리는 보통 식당을 겸하는데 여기서는 ‘츠와디’라는 돼지고기 꼬치구이를 맛보았다. 츠와디는 포도나무 가지를 태운 숯으로 구워야 제맛이 나는데 소금간만 하는데도 돼지고기의 풍미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이 바라보이는 평원에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시그나기는 천혜의 요새다. 중국의 산해관처럼 동쪽의 이민족들이 조지아를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어서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프스의 관문 구실을 했던 벨린초나 지역과 형세가 비슷하다. 요새 도시였던 시그나기는 이제 낭만의 도시다. 풍경이 예뻐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 통에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24시간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교회도 있다. 시그나기는 또한 카펫 장인들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조합이 있다. 낭만의 도시 시그나기의 명소는 ‘꿩의 눈물(Pheasant’s tears)’이라는 와인바다. 미국인 화가가 운영하는 이 바는 카헤티 지역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한 병 사지 않을 수 없다.

스탈린 고향이나 들렀다 갈까

알프스에 ‘에비앙’이 있다면 캅카스에는 ‘보르조미’가 있다. 보르조미 생수는 조지아의 가장 큰 수출품 중 하나다. 보르조미 생수가 나오는 남캅카스 보르조미 지역은 제정러시아 시절 황실의 휴양지이기도 했다. 온천 때문이다. 산은 추운데 물은 따뜻해 침엽수와 활엽수가 교차하는 숲이 형성되어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하다. 지금도 조지아에서는 아이가 천식을 앓으면 부모가 이곳에 데려와 요양을 한다.

보르조미로 가는 길에 스탈린의 고향 고리 가 있다.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다. 이 스탈린에 대한 조지아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나이 든 세대는 한국의 ‘박정희 향수’처럼 스탈린 향수가 있다. 중공업 육성정책으로 조지아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스탈린과 소비에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스탈린을 싫어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아 청년들을 징발해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아인 70만 명 정도가 징집되어 그 중 35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스탈린 집권 기간 동안 희생당한 조지아인이 5만 여 명이고 시베리아 등에 유형을 당한 사람도 15만 명에 이른다. 스탈린은 스스로를 조지아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미운털이 박혔다. 스탈린에 대한 반감은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반러시아 감정으로 이어졌다. 조지아 청년 중에는 외국어로 러시아어를 하는 경우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나 독일어보다 적다.

ⓒ시사IN 고재열보르조미 계곡에서 캠핑을 즐기는 조지아인. 근처에 온천도 있다.

조지아인들의 대표 휴양지인 보르조미 계곡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이 많다. 보르조미 고지대에는 스키 리조트도 있는데 이곳 역시 주로 어린이 스키 캠프가 진행되는 저렴한 리조트다. 스키 리조트로 올라가는 협궤열차도 볼거리다. 조지아로 가족여행을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한다. 이곳에서는 계곡 트레킹을 추천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온천이 있고, 온천 주변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 계곡 옆에서 캠핑을 즐기고 온천에서 목욕을 한 다음 돼지고기 꼬치구이 츠와디를 만들어 먹는 조지아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카즈베기에서 건진 ‘인생샷’

카즈베기 산이 있는 북동부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은 조지아 여행이 완성되는 곳이다. 만약 카즈베기 산을 가보지 않았다면 조지아를 제대로 여행한 것이 아니다. 캅카스는 여러 신화의 배경인데, 카즈베기 산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산이다.

카즈베기로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 바로 트빌리시 전에 조지아의 수도였던 므츠헤타다.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조지아정교의 중심이다. 조지아정교의 역사가 집대성된 스베티스코밸리 교회가 있다.

카즈베기로 가기 위해서는 므츠헤타를 지나 해발 2000m가 넘는 즈바리패스를 넘게 된다. 빙하 녹은 물이 눈 사이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캅카스를 점령하라’는 의미로 ‘블라디캅카스’를 캅카스 산맥 북쪽에 세운 러시아는 캅카스 산맥을 넘는 ‘밀리터리 하이웨이’라는 군사도로를 냈다. 이 길이 지금 산업도로와 관광도로로 쓰인다. ‘밀리터리 하이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에서 나온 석유를 흑해로 옮기는 송유관을 볼 수 있다. 산유국을 옆 나라에 둔 덕분에 조지아는 석유와 전기를 싼값에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도시가스가 산골짜기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에너지 상황이 좋다.

ⓒ시사IN 고재열조지아정교 교회는 전쟁 때 조지아인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카즈베기는 풍광이 압도적이다. 평범한 사람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카메라를 어디다 들이대도 작품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나 네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 이상으로 꼽는 곳이 바로 카즈베기다. 카즈베기 산이 있는 자바헤티 지역은 알프스 마테호른 산 밑의 체르마트 마을을 연상케 한다.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디자인 호텔로 유명한 룸스호텔이 있다. 카즈베기 산 반대편 언덕에 자리 잡아 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디자인 호텔에 등록될 정도로 고급 호텔이지만 1박 가격이 13만~15만원으로 시설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해발 5047m 카즈베기 산에서 꼭 올라야 할 곳이 있다. 게르게티 언덕에 있는 삼위일체 교회다. 해발고도가 2000m가 넘는 이 교회는 전쟁이 났을 때 조지아정교의 성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조지아인들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처음 교회 터를 물색할 때 ‘독수리가 고기를 묻어두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지아정교의 경건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게르게티 언덕에서 찍은 사진이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줄 것이다.

※이 기사는 조지아 관광청의 취재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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