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스웨덴을 본받자고 나섰다. 4월22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주장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재정 관련 최고 기구로서 내년도 예산 편성의 기본 골격과 중장기 재정 개혁 방안을 정하는 회의다.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라더니 마침내 대통령이 스웨덴형 복지국가로 가자는 걸까?

아니다. 대통령이 주목한 건 스웨덴 ‘복지국가’가 아니라 ‘재정 건전성’이다. 근래 많은 나라들이 재정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스웨덴은 재정 상태가 양호하고, 장기 세대 간 회계에서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고 평가받는다. 스웨덴이 지닌 복지국가 상징성이 부담스럽지만 집권 4년 사이 재정 적자액이 126조원에 달하는 박근혜 정부로서는 재정 건전성을 부각시킬 수만 있다면 스웨덴 카드라도 꺼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했다. 재정수지가 무려 GDP의 11%에 달하고 국가 채무도 늘어갔다. 이에 보수당·사민당 정부 가릴 것 없이 고강도 재정 개혁에 나섰다. 복지·경제·행정을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정부 지출을 줄이고, 이러한 개혁을 제도화하기 위해 재정 준칙도 마련했다. 그 결과 스웨덴은 1998년부터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는데, 연금 개혁까지 성사시켜 재정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나라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스웨덴에서 본뜨려는 게 바로 재정 준칙이다. 정부의 채무 한도를 설정하는 채무 준칙,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 아래로 두는 지출 준칙, 재정 수반 법률을 입안할 때 반드시 재원 조달 방안을 첨부하는 ‘페이고(Pay-go)’ 제도 등을 담은 (가칭)재정건전화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출을 강력하게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다.

과연 스웨덴 사례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우선 재정 규모가 너무 다르다. 1990년 스웨덴 정부 총지출은 GDP 60%, 복지 지출은 GDP 30%였다. 현재 한국의 정부 총지출은 GDP 32%로 당시 스웨덴의 절반에 머물고 복지 지출은 GDP 10%로 3분의 1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경우 재정 규모에서 조정 여지가 있었고, 개혁을 거친 결과도 정부 총지출은 GDP 50%, 복지 지출은 GDP 28%로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스웨덴이 택한 처방을 수입하자고? 허약한 아이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꼴이다.

미래는 어떤가. 정부는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므로 엄격하게 지출을 통제하지 않으면 재정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국회예산정책처(국회예산처)도 국가 채무가 현재 GDP 40%에서 2060년에 170% 수준까지 이른다고 전망한다. 물론 지출 급증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효과를 거둔다 해도 한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복지 지출은 상당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21세기 인구 환경에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조세 정의와 복지 증세 없이 ‘스웨덴처럼’은 불가능

문제는 세입이다. 재정은 지출과 세입의 짝이기에 지출 증가가 불가피하다면 세입 확대에 나서야 한다. 2013년 한국 조세부담률이 GDP 18%로 OECD 평균 25%에 비해 7%포인트, 금액으로는 약 100조원이 부족하다. 매년 중앙정부가 수십조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교육청과 지자체에 교부금을 늘려주지 못해 갈등을 초래하는 근본 이유도 빈약한 세입에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중장기 재정을 전망할 때 세입을 현행 수준으로 가정한다. 이러한 셈법에선 당연히 재정은 불안해지고 국가 채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처 분석에 따르면, OECD 평균 수준으로 조세부담률을 상향하면 2060년에 국가 채무가 GDP 90% 이내로 낮아진다(현재 OECD 평균 GDP 115%).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려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스웨덴(GDP 33%)에 이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OECD 평균에는 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진정 스웨덴에서 배워할 건 재정의 재정다움이다. 한 해 GDP의 절반을 재정으로 확보하고, 우리보다 복지 지출이 거의 3배, 조세부담률이 2배에 육박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을 닮아가려면 가장 중요한 건 세입을 확충해서 재정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조세 저항을 모르느냐고? 이 저항은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보다는 형평성 있게 거두지 않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이고, 과세 형평성과 지출 투명성을 바라는 ‘정의’의 표현이다. 국민과 함께 전향적으로 세금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이제라도 대통령은 ‘조세 정의와 복지 증세를 위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국민에게 제안하라.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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