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에서 한국 애들이랑 낙타 사파리를 갔거든요. 저는 사막에서 캠프파이어를 하고 쏟아지는 별을 맞으며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듣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근데 같이 간 한국 애들이 글쎄 빅뱅의 댄스음악을 트는 거예요. 너무 싫더라고요.” 인도 우다이푸르의 어떤 식당에서 의도치 않게 엿들은 옆자리 한국 남녀의 대화 한 대목이다. 이 말을 한 여행자는 낙타 사파리를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운치 있고 내향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인 반면, 대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 애들’은 낙타 사파리를 신나는 액티비티이자 파티로 받아들였다.

여행 친구를 물색할 때는 그 사람이 자신과 개방성이나 외향성에서 비슷한지를 따져보는 편이 안전하다. 하지만 우리는 성격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하고만 여행해야 하는 것일까? 나와 성격과 취향이 일치하지 않는 연인·가족·친구와는 여행을 같이할 수 없는 것일까? 낙타 사파리를 망쳐버린 근본 이유가 과연 성격 차이였을까? 내향인과 외향인이 뒤섞인 여행자들이 자이살메르의 타르 사막에서 모두 행복한 여행을 할 방법은 없었을까?

여행 동반자들 간의 성격 차이는 생각만큼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동반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를 절충하거나 공유하여 좋은 여행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낙타 사파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오늘 밤에 뭐 하고 싶으세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에 대한 아주 간단한 소통과 절충을 거쳤다면 이들 중 누구도 여행이 불만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존중과 소통이 뒷받침될 경우 나와 성격·욕구·취향이 상당히 다른 가족, 친구, 동료, 이방인 그 누구와도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이루어낼 수 있다.

ⓒEPA이국적인 풍광과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고도 여행지에서는 동반자와 얼굴 붉힐 일이 종종 벌어진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심리학자들이 동반자들 간의 의사소통 방식과 갈등 해소 방법 등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여행 동반자 관계에 힌트를 주는 여러 이론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부부간 관계에 대한 연구는 여행 동반자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로 여행 동반자들이 커플이나 가족인 경우가 많아서 부부 관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고, 둘째로 여행 동반자란 한번 여행을 시작하면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꼭 붙어 있어야 해서 본질적으로 부부나 가족과 유사한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하면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이 친구와 싸우지 않고 여행을 잘 끝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질문은 본질상 매우 유사하다.

최성애 박사는 부부 상담의 대가 존 가트먼의 연구와 상담 기법을 발전시켜 한국의 부부에 적용해온 손꼽히는 연구자이자 상담가이다. 최 박사에 따르면 불행한 부부의 특징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않고 최대한 크고 파국적인 규모로 부풀어 관계를 망칠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불행한 부부는 이런저런 견해 차이와 크고 작은 감정의 골을 해결하지 않고 곪을 때까지 내버려둔다. 불행한 여행 동반자도 서로의 성격과 욕구와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갈등을 방조하며, 결국 “여기서부터는 따로따로 가자. 귀국 비행기가 18일 10시인 건 알지?”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암 덩어리를 키우고만 있는 사람들이다.

둘째, 불행한 부부는 싸움을 시작했다 하면 마음에 담았던 말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쏟아낸다. 불행한 여행 동반자들도 서로 감정이 끝까지 악화된 뒤에야 마음에 담았던 말을 그대로 쏟아붓는다. “넌 3년 전에 베이징에서도 너 먹고 싶다는 오리만 먹느라 나는 마사지도 못 받게 하고, 2년 전 홍콩에서도 너 가고 싶다는 레이디스마켓이랑 하버시티에서 내 발 부르트게 쇼핑이나 하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뭐? 료칸 오고 싶다고 해서 왔더니, 노천탕이 좁아? 장난해?”

셋째, 불행한 부부는 싸움을 멈출 줄 모르고 싸움이 끝난 뒤 화해할 줄도 모른다. 불행한 여행 동반자도 브레이크를 거는 방법을 몰라서 사소한 문제와 다툼이 장기간 싸움으로 발전하도록 서로 싸움을 키우기만 한다. 넷째, 불행한 부부는 서로의 ‘영향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잘 나타내는 말로는 “너 할 일이나 해!” “시끄러워!” “알아서 해!”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말들은 상대가 나에게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는 아집과 적대감이 반영된 말이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게 “내가 짠 계획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어떨까?

마지막으로, 불행한 부부는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지배한다. 이런 경우는 겉으로 드러나는 싸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 부부가 느끼는 불행은 싸움하는 부부 못지않게 끔찍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다른 이들은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그냥 꾹 참아버리는 여행 동반자 관계라면 그 누구도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비난·방어·경멸·담쌓기의 결말

행복한 부부는 불행한 부부의 다섯 가지 특성과는 정반대 특성을 가진다.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 하고, 앙금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는 게 아니라 말을 하기 전 상대의 감정을 한 번 더 헤아려보며, 싸움에 브레이크를 걸 줄 알다. 또한 서로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우위를 행사하지 않고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한다.

이처럼 여행 동반자들은 행복한 부부가 보이는 다섯 가지 관계의 특징을 갖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네 가지 아주 질 나쁜 언행이 있다. 비난·방어·경멸·담쌓기다. 이 네 가지 언행을 보이는 부부는 90% 이상이 이혼에 이른다고 한다.

‘비난’이란 타인의 인격을 비하하는 언행을 뜻한다. 우울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우리가 스스로 “항상” “모든 일에 대해” “내 성격 특징 때문에” 실패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말하는데, 비난은 타인이 “항상” “모든 일에 대해” “너의 그놈의 고칠 수 없는 깊은 내적 특징 때문에” 일을 잘못하고 있다고 욕하는 것이다. “넌 매번 여행만 오면” “넌 쇼핑을 하건 식도락을 하건” “넌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었길래”라는 말들이 비난의 기관차다. 이 기관차 뒤에 무슨 말이 따라오건 말이다.

‘방어’란 비난에 이어 나타나는 행동으로, 역공 또는 희생자 되기로 구분할 수 있다. 역공이란, 한마디로 네가 나를 욕하면 나는 너를 더욱 아주 심하게 욕해준다는 것이고, 희생자 되기란 본인이 억울했던 일을 몽땅 쏟아놓으며 자기는 잘못이 없고 정말 문제가 심한 것은 너라고 주장하는 행동이다. 비난과 방어의 주고받기는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부인하고 문제의 원인을 전적으로 상대에게 돌리는 파국적 관계 방식이다.

‘경멸’이란 상대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고 여행을 해본 적이 있어야 뭘 하지” “오늘 밤에 바에 가겠다고? 네가? 뭐하러?” 따위 말이 동료 여행자의 마음을 찢어놓는 경멸에 해당한다. ‘담쌓기’란 서로 간의 생각과 감정의 소통을 끊어버리고, 상대를 존중하거나 이해하거나 설득하려는 시도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혼자 실컷 떠들어봐라’ 하는 생각, 대화를 거부하거나 아예 대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리는 행동 등은 비난이나 경멸보다 얌전해 보일지 모르지만 종말의 시간을 앞당기기로는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낸다.

최성애 박사는 비난 대신 부드러운 요청과 감사의 말을, 방어 대신 인정을, 경멸 대신 호감과 존중의 표현을, 담쌓기 대신 대화를 하라고 권유한다. 이런 행동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왕도이므로, 자연히 여행 동반자의 관계와 여행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먼저 시작해서 서로의 ‘감정통장’을 넉넉히 채워주며 관계를 발전시키자. 행복한 여행이 따라올 것이다.

※ 이번 호로 ‘김명철 박사의 여행심리학’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김명철 (심리학 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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