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 최대 크라우드 펀딩 쇼였다. 3월31일 공개된 테슬라의 새 전기차 ‘모델 3’는 예약 개시 하루 만에 25만 대, 4월19일 기준으로 40만 대를 팔아치웠다. 1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조원 매출을 미리 확보했다. 사전 예약을 하려면 1000달러(약 115만원)를 테슬라에 예치해야 한다. 제품은 내년 말에나 받을 수 있고, 한 사람이 최대 2대만 주문 가능하다. 그런데도 한 달이 안 되는 사이 테슬라가 전 세계 열성 소비자로부터 끌어들인 현금만 4억 달러 이상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살아 있는 아이언맨’으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가 그 중심에 있다. 그는 10대 때 일찍이 인류의 미래를 혁신할 것으로 인터넷·우주 진출·청정에너지를 꼽았고, 평생에 걸쳐 세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인터넷 결제에 주목해 페이팔을 성공시킨 그는, 다음으로 우주 진출을 위해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스페이스X는 연이은 로켓 발사 실패 끝에 지난해 12월 우주에 나갔던 로켓 발사체를 그대로 회수하는 데 성공했고(세계 최초), 올해 4월8일에는 바다 위에 뜬 바지선 위에 로켓을 수직 재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테슬라를 창업해 무려 10년 이상 시장의 불신과 싸운 끝에, 결국 압도적 성능의 친환경 전기차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태양광 발전을 이용한 진공 초고속 열차인 하이퍼루프 개발을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AP Photo테슬라의 새 전기차 ‘모델 3’(위)는 예약 개시 하루 만에 25만 대를 팔았다.

일론 머스크의 기상천외한 행보는 애플의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제품이나 회사의 브랜드보다 더 강력한 CEO의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맨 뒤 ‘하나 더(one more thing)’라는 멘트에 이어질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기대하며 밤잠을 설치던 애플 마니아들과, 출시도 되지 않은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에 선뜻 1000달러를 결제해버리는 테슬라 팬은 닮았다.

CEO와 그가 이끄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팬덤이 생성되기 위한 선결 조건이 있다. 팬덤은 온갖 개인적 역경과 비즈니스의 난관을 극적으로 돌파해가며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는 선구적 기업가에게 깊이 감화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경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일반 제품보다 성능이 압도적으로 우수하거나, 심미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려 했기에 이를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기 위한 ‘덕질’을 즐기게 된다.

이런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가는 과거의 장인(匠人)에 견줄 만하다. 완벽한 청자(靑磁)가 나올 때까지 B품 자기를 끊임없이 망치로 내려치던 도공이나, 인(寅)이 네 번 겹치는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만 나올 수 있다는 사인검(四寅劍)을 벼리던 대장장이가 그러하다. 이들 또한 ‘덕후’다.

‘덕후’ 감성을 매개로 결합하는 기업가와 소비자

장인형 기업가의 제품과 서비스엔 기능의 편익을 뛰어넘는 정서적 편익이 배어든다. 소비자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때의 사용자 경험(UX)뿐 아니라, 소비하는 행위(CX) 자체에서 느끼는 가치 몰입을 즐기고, 브랜드가 내뿜는 아우라에 응집되어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비즈니스를 탄탄히 지탱한다. 이들의 ‘덕질’은 다분히 종교적이기도 하다.

기업가와 열성 팬은 ‘덕후’ 감성을 매개로 결합한다. 이들은 기업가가 진정성(authenticity)과 고유의 캐릭터를 고수하는 한, 도덕적인 스캔들이나 비즈니스 실패로 치명상을 입더라도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혼외자 문제나 이사회 축출 등으로 구설에 올랐던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팟과 아이폰이라는 극적인 반전이 가능했던 이유다.

한국에서는 “그 사람이 대표이기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기업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겪은 역경과 장인정신만은 세계 어느 기업가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이들이 주변에 많다. 이들이 질곡과 같은 ‘헬조선’의 시장 환경을 뚫고, 혁신을 이끌어낸 장인적 기업가, ‘아이언맨’으로 우뚝 서게 되길 응원한다.

기자명 이종대 (옐로데이터웍스 전략담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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