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이 열린 4월13일 저녁. 서울 모처에 2030 청년들이 모였다. 지역 선거를 직접 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당원, 시민단체 활동가, 카페 주인, 출판사 편집자, 방송인 등 직업이 다양했다. 원내 정당은 물론 녹색당 지지자와 무당파까지 정치 성향도 가지각색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한국 사회의 정치 발전을 꿈꾸는 젊은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밤늦게까지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었고, 그 내용을 〈시사IN〉에 보내왔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해 〈시사IN〉에서 진행한 ‘20대 총선 복면 뒷담화’의 형식을 빌렸다. 이들의 표현도 되도록 날것 그대로 실었다.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 직후)

김실망(김): 종로에서 오세훈이 진다고? 차이가 꽤 나는데? 강남을도 초접전이네. 전현희가 누구야? 대박. 심상정도 압도적이고. 부산·경남에서 더민주가 7곳에서 우세하다니. 강남·송파에선 더민주가 3곳 우세. 와! 진짜 정권 심판 쩐다.

물개정(물): 남양주에서 조응천도 이기네. 여론조사에서 안 잡히는 게 있어.

오드리햇반(오): 지식인들이 대중을 우습게 알지만 사실은 대중이 더 지혜롭다는 거. 이런 거 보면 참 멋있지?

절대끈기(절):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압도적으로 나오네? 진짜 이해가 안 됨. 스스로 고립되겠다는 말 아냐?

: (경남 김해을 이만기 후보의 ‘저는 세 번 떨어졌습니다’라는 자막을 보며) 저 분이 옛날에 열린우리당으로 나왔던 것 알아? 씨름이었으면 뒤집기가 가능하겠지만.

ⓒ연합뉴스4·13 총선 당일의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위)는 기존 전망과 달라 많은 유권자를 놀라게 했다.

: 정병국 의원은 이기네. 새누리당 안에서 개혁파인데, 붙었으면 좋겠다.

레고머리(레): 이재오 의원 지역구(서울 은평을)는 아직 미개표야. 그런데 더민주와 정의당이 단일화되면서 이재오 의원이 이번에 힘들 거라는 소리가 있던데? 서청원 의원은 이번에 되면 8선이야. 그럼 32년 동안 국회의원 하는 셈. 진정한 직업 정치인.

: 기독자유당 정당 투표 득표율이 2.66%? 정당 투표 3% 넘으면 비례대표 한 석 얻잖아. 내가 지역에서 선거를 뛰어보니까 알겠더라고. 기독자유당 선거운동 조직이 장난 아니야. 동성애 차별금지법 막아야 한다며 엄청나게 열심히 하더라고. 이분들 동성애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진짜 큰 것 같아. 게다가 새누리당 극우 보수 쪽에서 넘어오는 이들도 있을 테고.

: 기독자유당이 있고 기독당도 있네? 둘이 단일화했으면 3% 넘었을 텐데(웃음). 지난번에 서울역에서 녹색당 후보 유세에 참석했는데, 기독당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리를 보면서 “쟤네가 동성애 합법화 이야기하는 놈들이야”라며 막 노려보더라. 무서웠어.

여소야대(여): 이준석 후보가 안철수 대표에게 안 되는구나. 비록 새누리당이라도 기성세대 정치인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 이준석 후보가 안철수 대표랑 붙지 않았으면 결과가 더 나았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던데, 내 생각은 달라. 오히려 안철수랑 붙어서 저 정도 오른 걸 수도 있어. 손수조도 2012년 총선 때 부산에서 문재인이랑 붙어서 그만큼 표를 얻은 거라고 봐.

ⓒ연합뉴스4월14일 부산 지역의 더민주 당선자 5명이 부산 충혼탑을 참배한 뒤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로봇(로): 그러고 보니 후보자들이 모두 40대 이상이야. 청년 정치 어쩌고 그동안 말은 참 많았는데 다 어디로 간 걸까? 2012년에만 해도 청년 문제가 시대의 화두인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왜 국회의원 후보자 중에는 청년들이 보이지 않는 걸까? 뭔가 좀 씁쓸하다.

: 그런데 정말 기독자유당이 녹색당이나 노동당을 제치고 비례대표 한 석 얻게 되는 건가. 내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빨갱이들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기독교만도 못하단 말인가”라고 한 줄 논평 올렸어.

: 국민의당 진짜 대단하네. 정의당도 처음부터 야권 연대 생각하지 말고 독자 노선으로 밀고 나갔어야 했던 게 아닐까.

: 서울 송파병 김을동 의원. 똑똑한 여자는 밉상이라고 하더니 오히려 남인순 후보한테 지고 맙니다.

: 그런데 뉴스에서 자꾸 국민의당 돌풍을 ‘녹색 바람’이라고 부르네. 녹색 바람은 녹색당 것 아니야?

: 안철수 대표는 ‘극까’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 극까가 뭐냐면 극렬하게 까는 사람들(웃음). 물론 그런 사람에게는 반대로 극렬하게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 그런데 국민의당이 저렇게 선전하는 건 안철수의 힘이 아니라,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의 힘이 아닌가 싶은데?

: 내가 호남향우회 분을 만나서 물어봤어. 이번 선거에서 누굴 찍을 거냐고. 그랬더니 그쪽은 전략이 딱 짜여 있더라고. 국민의당 전략은 호남 싹쓸이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에 후보를 내서 더민주를 떨어뜨리는 거였대. 그런데 그 전략이 절반만 먹혔네. 수도권에서는 더민주가 선전했으니까.

: 확실히 이번 선거는 좀 달라졌어. 대구에서 김부겸이 된 걸 봐도 그렇고 이제는 기존 정치권에서 생각하던 정치공학 같은 것들이 허물어지는 거지. 호남 사람들은 자기들이 수도권에서 키를 쥐고 있다고 봤을 텐데 꼭 그렇지도 않잖아. 시대가 점점 바뀌고 있어.

: 그런데 호남의 지역 정서는 외부에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것 같아.

(밤 11시30분쯤 당락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

: 더민주가 부산에서 5석을 얻다니! 호남을 잃고 부산을 취했네. 이번만은 민심이란 게 참 대단하다는 걸 알겠어.

네버스탑토킹(네):정의당 최종 비례대표 의석 3석? 아, 한 석만 더…. 잠이 안 온다.

4차원(4): 박주민 변호사(서울 은평갑)도 됐구나. 박주민 후보 캠프 자원봉사자 중에 상당수가 세월호 유가족이었어. 박주민 후보 캠프에 갈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나더라. 국회에 가서 꼭 잘했으면 좋겠다.

: 은수미 의원은 진짜 안 되나? 너무 슬프다.

: 박용진 후보는 붙었군. 2000년 민주노동당 때부터 서울 강북을 지역에 출마했으니까 16년 만이네. 진보 정당에서 민주당으로 간 지 4년 만에 국회 입성. 잘됐다.

: 어떤 사람이 단체 카톡방에 “왜 정의당은 안 되고 국민의당은 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올렸어. 누군가 “조직화된 표와 조직화되지 않은 표의 차이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조직된 호남표를 다 가져온 반면, 정의당은 조직화된 표가 없었다. 게다가 정치혐오층도 국민의당으로 많이 갔다”라고 답했어. 그런데 말이야, 정치혐오층의 표가 왜 국민의당으로 가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날마다 정치 욕하던 사람들 중에도 이번에는 국민의당 찍겠다는 사람들이 진짜 많았어. 내 친구들도 국민의당이 뭔가 새로워 보인대. 아 진짜ㅋㅋㅋ 납득 안 된다.

기자명 정리·김경미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