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러들의 성지 순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KTX 순천역에 붙어 있는 포스터 벽화의 문구다. ‘내일러’는 코레일의 청춘 할인 패스인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기차 여행을 하는 젊은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이 가장 자주 찾는 도시 중 한 곳이 바로 순천이다. 저렴한 여행을 즐기는 내일러들이 몰려들면서 덩달아 순천시의 게스트하우스 산업도 발전했다.

순천에서 ‘추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조순익씨를 지난해 만났을 때 “3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때 순천시의 게스트하우스는 3곳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60곳이 넘는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곳까지 합치면 숫자는 더욱 늘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조씨처럼 ‘청년창업’의 형태로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곳이 많았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용히 성장하던 순천의 게스트하우스들이 철퇴를 맞았다. 현행법상 ‘도시민박’으로 분류되는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에게만 숙박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내국인이 숙박할 수 있는 도시형 게스트하우스는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나 한옥 체험 장소로 인정받은 곳뿐이다. 여관 등 기존 ‘일반숙박업’으로 등록한 곳에서 이름을 ‘게스트하우스’로 내거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도시민박으로 허가받은 게스트하우스가 내국인 손님을 받는 것은 불법이다(도시가 아닌 농어촌 민박형 게스트하우스는 내국인 숙박이 허용된다).

ⓒ시사IN 장일호

이런 규정을 모른 채 만들었다가 단속을 당하는 곳들이 많다. 특히 주변 숙박업소들이 민원을 제기해 단속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순천의 경우는 15곳가량만 게스트하우스 영업이 가능해졌다. 60여 곳이 성업하던 지난해와는 사정이 딴판이다. 실제로 여행 마니아들에게 추천받던 순천의 한 게스트하우스는 단속이 심해진 뒤 홈페이지에 “이곳은 도시형 민박으로 외국인만 이용이 가능하다”라는 안내문을 새로이 내걸었다.

이런 단속에 대한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의 대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고 한다. 일단 ‘금수저’형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추세다. 곧 지금까지 해오던 게스트하우스를 버리는 대신 부모한테 돈을 빌리거나 부모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기존 숙박업소를 인수하는 데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업소를 리모델링해 새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면 법적인 시비도 비껴갈 수 있고, ‘규모의 경제’도 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반면 가진 게 없는 ‘흙수저’형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은 이도저도 못한 채 게스트하우스를 접거나 관련 법이 정비되기만을 기다리는 상태다. 내년 6월 공유민박 양성화 관련법이 개정되면 주인이 함께 거주하는 주택에서 내·외국인 숙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연간 120일 이내에서만 내국인 숙박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걸림돌이기는 하나, 소규모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은 여기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는 제주·부산·강원에서 법 개정안이 시범 적용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많이 하는 차량 도심 투어도 불법 시비에 오르내린다. 여행업 등록을 하지 않고 관광 차량을 운영하면 현행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업 등록을 하고 관광 차량을 운영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단속이 강화되면서 ‘도심 투어’를 포기하는 게스트하우스도 늘고 있다.

ⓒ시사IN 고재열

게스트하우스들이 이처럼 법적 규제에 묶여 다양한 어려움을 겪자 나름의 자구책도 등장했다. 게스트하우스들이 연계해서 여행사를 함께 차리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하여 게스트하우스 협동조합(공정여행문화협동조합) ‘마블’이다. 보드게임 ‘부루마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마블’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현재 전국 25곳의 게스트하우스가 이곳에 속해 있다. 마블은 회원사 게스트하우스 이용자들에게 동일한 배지를 나눠주고 할인 혜택도 함께 제공한다.

체인형 게스트하우스도 성업 중

‘게스트하우스 성지’였던 순천이 기울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부산은 게스트하우스가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부터는 공유민박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법적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만큼 앞으로 더 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나리라 보인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해운대 지역에만 게스트하우스가 70곳 정도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해운대 지역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과거에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 주인장은 “초창기에는 사실상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시설이 별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침대당 3만5000원을 받아도 손님이 몰렸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시설도 개선되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나타나고 있는 것이 게스트하우스의 산업화 양상이다. 부산에서는 ‘숨 게스트하우스’ ‘팝콘 게스트하우스’ ‘티스테이 게스트하우스’ ‘24시 게스트하우스’ 등 체인화된 곳을 여럿 볼 수 있다. 본점에서 게스트하우스에 맞게 인테리어 공사를 해주고 시스템을 구축한 다음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고 직원을 뽑아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창업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다. 체인형 게스트하우스는 방마다 욕실과 화장실을 두는 등 전반적으로 편의 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편이다. 대신 소규모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개성은 아무래도 빈약하다.

또 하나 나타나는 양상은 민박집이나 여인숙을 하다가 게스트하우스로 명패를 바꿔 단 곳이 많다는 것이다. 해운대역 인근의 민박집 골목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굿데이 메이트’ ‘소풍 게스트하우스’ ‘수아 게스트하우스’ 등 현재 게스트하우스 6~7곳이 들어선 상태다.

이렇게 게스트하우스가 많아지면서 기존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비수기 평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해운대 비즈니스호텔의 바다 전망 객실이 평일 5만원 내외다. 2인실 비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게스트하우스가 극복하기 힘든 가격이다”라고 말했다. 남들 보기에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는 직업이 한가할지 몰라도 당사자들은 필사적인 생존 경쟁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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