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친구로부터 여행자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부터 ‘게스트하우스앓이’를 시작했다. 40대 초반, 회사에서 당장 “자네 내일부터 그만 나와줬으면 좋겠군” 해도 놀라지 않을 부장급 회사원이던 시절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싶었다. 그 바람은 철없던 시절에 디스크자키를 꿈꾸는 것과도 같다. 사람들에게 내가 고른 음악을 틀어주는 것처럼 여행자들에게 내가 꾸민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알라딘에서 게스트하우스 1세대 창업가들의 책을 찾아 읽고 관련 사이트를 뒤졌다. 글로 배운 정보를 토대로 몇 개의 침대를 어느 정도로 가동하면 우리 식구가 먹고살 수 있는지 엑셀 시트를 만들어 아내를 설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순 엉터리 분석이다. 명퇴·조퇴·희퇴(희망퇴직) 등 내 세대가 흔히 겪는 일들을 예로 들어가며 겁도 주었다. 못 미더웠겠지만 결국 아내는 동의해주었다. 인생을 통틀어 아내의 지지는 나의 가장 큰 자산이다.

ⓒ신성철 제공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기존 숙박업소를 인수하여 리모델링한다. 이건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에 패스. 둘째, 외국인 도시민박업이 있다. 70평(231㎡) 이하 규모의 건물에 주인이 같이 살면 외국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만 대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서울 홍대·명동·동대문·북촌, 제주도 같은 곳이 아니면 어려우므로 역시 패스. 셋째, 도시 아닌 지역에서 농어촌 민박업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70평 이하 규모의 건물에 주인이 같이 살면 내·외국인을 모두 받을 수 있다. 내 선택지는 이것뿐이었다.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물려받은 게스트하우스

이때부터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각지를 돌았다. 강릉, 속초, 인천, 남원….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니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서울에서 전세 정도를 얻을 만한 비용으로 가족과 게스트가 모두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찾아낸 곳이 연고 하나 없는 춘천이다.

마침 전 직장 동료가 게스트하우스 1세대였다. 그때 그는 이미 서울 연남동의 1호점을 정리하고 홍대 앞 2호점에 안착한 상태여서 게스트하우스에 대해 A부터 Z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상담하며 많은 걸 배웠다. 2014년 말께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처가로 내려보냈다. 세간은 창고에 보관했다. 아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다자녀 혜택으로 얻은 장기 전세 아파트를 해약하고 전세금을 돌려받아 춘천집 잔금을 치렀다. 비장하고 불길한 음악이 늘 귓가를 굉굉 때렸다. 농협 대출을 받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동안 지인의 집이나 찜질방에서 동가식서가숙했다.

트럭을 빌려 이케아를 다섯 번 드나들며 가구와 침구도 잔뜩 샀다. 2015년 1월, 드디어 공사를 완료하고 처가에 머물던 가족이 이삿짐과 함께 춘천집에 도착했다. 그날의 감격이란…. 2015년 3월 오픈을 목표로 했는데 2월부터 지인들이 방문해주고 손님도 더러 들었다. 특히 끝없이 이어지던 택배 릴레이는 잊을 수 없다. 전 직장 동료들이 살림에 필요한 도구들을 부쳐온 것이었다.

작은 게스트하우스라도 예약받고 청소하고 세탁하고 손님 맞고 차를 내고 조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오롯이 반복된다. 일은 일대로 있으면서 벌이는 적다는 얘기다. 3개월을 운영하고 결산해보니 답이 안 나왔다. 나들이가 많은 5월에도 평일 가동률이 너무 적었다. 밥만 먹고 아무것도 안 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춘천은 4월부터 9월까지 여섯 달은 방문객이 많지만 이후로는 비수기라 혹독하고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대로 2호점을 내 객실을 더 만들기로 결정하고 자리를 물색했다. 마침 이때 강의나 프리랜서 제안이 와서 일단 돈이 들어오는 부업부터 하기로 했다. 나흘은 서울에 머물며 찜질방에서 자고 사흘은 춘천으로 돌아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다. 고단해도 수입이 안정되니 2호점을 자꾸 미루게 되었고 그러던 중 덜컥 입사 제안을 받았다. 아내와 긴 상의 끝에 게스트하우스를 더 키우는 일은 미루고 일을 택했다. 서울에 원룸을 얻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아내가 물려받았다. 그렇게 벌써 아홉 달이 지나간다. 너무나 흔한 아이러니지만 여행에 관한 일을 하면 여행 잘 못하고, 먹는장사 하는 사람은 밥을 굶는다.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고 가족들과 여행 한번 못했다. 그래도 주말마다 경춘선을 타고 가족을 만나러 춘천으로 향했다가 일요일 저녁 쓸쓸하니 서울로 돌아오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다. 매주 여행하는 셈이다. 마당 넓은 전원주택에서 아이들이 개와 뛰놀고 바로 옆집이 학교라 쉬는 시간에 꼬맹이들이 마실을 올 정도다. 아내는 결혼하고 내내 전업주부였는데 게스트하우스 호스트라는 일이 생겼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 헌신한대도 언젠가는 피치 못할 두 번째 은퇴가 결국은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미뤄왔던 2호점을 꼭 내야겠다.

기자명 신성철 (춘천 세그루 게스트하우스)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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