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얼큰하게 취한 어르신들의 젓가락 장단으로, 혹은 각종 운동 경기의 응원가로 기억되는 ‘오동동 타령’의 한 대목이다. 흔히 ‘오동동’을 여흥구쯤으로 여기곤 하지만,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옛 마산시 오동동)이 바로 ‘오동동 타령’이 태어난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스탠드바가 들어설 정도로 떠들썩했던 이곳은 1990년대에 접어들어 도심 상권이 이동하면서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활력을 잃어가는 구도심에 숨을 불어넣으려 2013년부터 지자체와 주민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복합문화공간 ‘리좀’이 들어선 것도 이 무렵이다. 처음에는 공연장, 아틀리에, 해외 예술가의 숙소를 겸하던 건물이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지하 예술영화관, 3층 카페 겸 갤러리, 4층 게스트하우스로 자리를 잡았다.

주중에 카페 일손을 돕는 대학생 1명을 빼면 건물 안의 모든 공간이 하효선(60)·하은수(53)씨 자매의 손으로 운영된다. 영화표 발권부터 게스트하우스 청소까지 자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한 사람이 2~3명 몫을 해내려 정신없이 뛰다 보니 계산 착오로 적자가 나는 날도 있다. 동생 은수씨는 “우리가 ‘멍청하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사비를 털어가며 고집스럽게 운영을 계속하는 이유는 뜻밖에도 소박했다. 고향 마산에 새로운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와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것이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양정민 제공

리좀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연 지는 1년 남짓 되었지만, 자매의 바람대로 젊은 여행객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다. 창원역·마산역·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위치가 일등공신이다. 특히 게스트하우스에서 버스로 10분, 걸어서 20분 정도면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의 홈구장인 마산야구장이 나온다. 그 때문에 여름이면 야구팬 투숙객의 비중이 70~80%를 차지해,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는 밤늦게까지 야구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방학을 맞아 ‘내일로(철도 자유여행 패스)’ 티켓을 이용해 전국 야구장을 순례하는 대학생 야구팬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여름에 리좀을 찾는다면 이들에게 여행 ‘꿀팁’을 전수받아도 좋겠다.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실망은 이르다. 버스로 40~50분이면 창원축구센터와 창원실내체육관에 닿을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제철 해산물 안주가 한 상 가득 올라오는 통술집이 즐비하고, 마산 어시장도 지척이어서 ‘공놀이 끝나고 한잔 똑’ 하기에 최적의 코스다.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여행객이라면 멀리 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 건물 안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지하의 극장(오른쪽 사진)은 50석 남짓한 규모로,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나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게스트하우스 이용객은 관람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5명 이상의 단체(!) 관람객은 일주일 전에 미리 문의하면 상영시간을 조정해주기도 한다.

경상도 아지매의 ‘알파고’급 안내에 ‘걸크러시’ 당했네

영화를 기다리면서 3층의 카페 겸 갤러리에도 꼭 들러보길 권한다.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눈부신 햇살이 건물 안으로 그대로 쏟아져 들어온다. 카페의 한쪽 공간은 연중 미술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가와 작품이 주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서 그림을 볼 수도, 도예 작품이나 조각을 볼 수도 있다.

게스트하우스와 바로 맞닿아 있는 창동예술촌, 부림 창작공예촌은 골목마다 개성이 살아 있는 수공예 공방과 카페가 콕콕 박혀 있다. 여행을 기억하며 수제 비누, 방향제, 열쇠고리, 목공예품 따위의 자그마한 선물을 사기에도 좋고, 알록달록한 벽화 앞에서 SNS 업로드용 사진을 남기기에도 알맞은 곳이다.

리좀 게스트하우스의 운영은 주로 동생 은수씨가 맡고 있다. 상영 중인 영화 줄거리부터 창원 시내 대중교통, 관광 명소 안내까지 무엇을 물어봐도 반응 속도가 가히 ‘알파고’급이다. 태어나서 쭉 수도권에서만 살다 처음으로 마산에 온 여행 초심자는 시원시원한 경상도 아지매의 매력에 제대로 ‘걸크러시’ 당했다.

그러고 보면 게스트하우스 내부도 ‘마산’이란 도시와 ‘마산 사람’들을 꼭 닮았다. 블로그에서 흔히 보던 다른 게스트하우스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침대, 옷장, 책상이 전부인 단출한 방이지만 널찍하고 깔끔해서 내 집이나 내 방처럼 편히 쉬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오동동 타령’은 옛 노래가 되고 ‘서울 명동 다음 마산 창동’이라던 명성도 희미해졌지만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로 이 도시에는 다시 새로운 흥이 차오르고 있다. 혼자라도, 초행이라도 두려움 없이 이 ‘흥’을 만끽하기에 리좀 게스트하우스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

ⓒ양정민 제공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북 14길 24

홈페이지 blog.naver.com/hes2011

체크인 오후 2~10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조식 제공 식빵, 달걀, 버터, 딸기잼, 녹차, 믹스커피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창원시립 마산 문신미술관, 마산 출신의 조각가 문신이 직접 건립해 시에 기증한 미술관. 저렴한 입장료(성인 500원)로 4000점에 가까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옥상 전망대에서는 마산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0자평 예술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흥 부자 대환영

기자명 양정민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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