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내를 지나니 비로소 ‘땅끝’이라 쓰인 도로 이정표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땅끝이라… 초행길이 아닌데도 가슴 한쪽이 살짝 두근거린다.

케이프 게스트하우스는 이곳 땅끝마을에 자리한 유일한 게스트하우스형 숙소다. 여관이나 민박, 펜션 같은 가족 단위 숙소는 많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이곳 하나라는 얘기다.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단비 같은 숙소다. 더 반가운 것은,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어지러운 간판들의 향연으로부터 시선이 일정하게 차단된다는 것. 특히 트윈베드룸과 온돌방 일부는 땅끝마을 앞바다를 향해 드넓게 창이 나 있다. 덕분에 아침이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일출을 감상할 수도 있다니 게으른 여행자에겐 이들 방이 딱 맞지 싶다.

ⓒ시사IN 김은남

숙소가 있는 2층 건물은 다소 바랜 느낌이다. 지은 지 20년이 다 돼가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김석호씨가 땅끝마을에 정착한 것은 1998년. 서울에서 의류 디자이너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탈서울을 감행했다는 그가 해남을 택한 이유는 한 가지. “여행할 때 가장 끌렸던 동네라서”였다. 타고난 방랑벽으로 젊을 적부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만큼 여행자들의 마음을 읽는 데는 자신 있었다. 집을 지을 때 재료는 웬만하면 해남에서 나온 것을 쓰고자 했다. 인근 옥광산에서 나는 돌로 벽을 쌓고, 남해 앞바다에서 삼치 잡을 때 쓰는 대나무 낚싯대로 천장을 장식하는 식이었다. 그 덕분에 숙소 건물은 낡은 듯하면서도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모두가 함께 쓰는 1층 커뮤니티 공간을 비롯해 방마다 걸려 있는 그림 또한 이곳의 미감을 돋우는 데 일조한다. 해남이 좋아서 보길도에 묻혀 사는 현역 화가 윤해남씨와 8년 전 사망한 화가 손기철씨 작품들이다. 자세히 보면 그중 손씨 작품 일부는 사과 궤짝이나 택배상자 같아 보이는 마분지에 덧칠을 한 뒤 그려져 있다. 곤궁하게 살다 간 예술가의 흔적이다.

도솔암에서 내려다본 홍시 빛깔 수평선

함께 묵은 30대 여성의 말마따나 ‘작은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땅끝마을 산책에 나섰다. 땅끝마을은 산책이란 말이 어울리는 작은 동네다. 땅끝 기념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새로 조성된 땅끝 희망공원을 돌아보고, 좀 멀다는 땅끝 전망대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와봐야 한두 시간이면 족하다. 그렇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땅끝마을이야말로 해남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삼을 만한 적지다. 일단 기상에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30분 단위로 땅끝마을과 보길도를 왕복하는 배편을 이용해 섬 여행을 즐길 수 있다(첫배 아침 6시40분, 막배 오후 6시20분).

ⓒ시사IN 김은남

뚜벅이 여행자를 위해 해남군이 개발한 트레킹 코스도 여럿 있다. 땅끝마을에서 출발하는 문화생태 탐방로인 땅끝길(총 43㎞), 삼남길(총 57㎞), 땅끝천년숲옛길(총 52㎞) 등이 그것이다. 장시간 체류하기 힘든 여행자를 위해 김석호씨가 강추하는 코스는 도솔암에서 미황사까지 5㎞ 남짓 걷는 길이다.

그의 말대로 이 길을 걸어보니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세워진 도솔암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광이 일품이었다. 보름달이 뜨는 시기 일몰 시각에 맞춰 도솔암에 오르면 서쪽 바다로 해가 지는 동시에 동쪽 바다로 달이 떠오르면서 수평선이 홍시 빛깔로 물드는 절경도 감상할 수 있다니, 절로 다음번 해남행을 기약하고 싶어진다. 실제로 케이프 게스트하우스 방명록에는 “다시 왔다 간다”라는 글이 간간이 눈에 띈다.

다만 신나는 파티 등을 선호하는 여행자라면 조용한 이곳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말수가 적은 주인장의 캐릭터 또한 여행자에 따라 호오가 갈린다. 그는 말한다. “나를 비우고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라고. 그러니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유유상종. 여행 철학이 비슷한 게스트에게 편안할 숙소다. ●

 

주소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길 43

홈페이지 www.capekorea.com

체크인 오후 4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조식 제공 식빵·달걀·우유·잼, 원두커피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도솔암-미황사 5㎞ 트레킹 코스

20자평 땅끝마을에서 누리는 눈 호강, 마음 호강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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